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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 셋손 슈케이의 ‘원후착월도(猿猴捉月圖)’

기자명 김영욱

형상·집착 벗어나 진실된 자신 보라

달 건지고자 했던 500 원숭이
형상 집착해 결국 다 죽게 돼
하늘 위 달만 오직 진실할 뿐
집착에서 벗어나라는 가르침

셋손 슈케이 作, ‘원후착월도 병풍’, 1570년, 종이에 먹, 화면 전체 157.5×348㎝. Metropolitan Museum of Art.
셋손 슈케이 作, ‘원후착월도 병풍’, 1570년, 종이에 먹, 화면 전체 157.5×348㎝. Metropolitan Museum of Art.

月磨銀漢轉成圓(월마은한전선원)
素面舒光照大千(소면서광조대천)
連臂山山空捉影(연비산산공착영)
孤輪本不落靑天(고륜본불락청천)

‘달이 은하수에 갈려 점점 둥글어지고 흰 얼굴에서 빛을 흩뿌려 대천세계를 비추는구나. 팔 이은 원숭이들 헛되이 달그림자 잡고자 하나 외로운 둥근 달은 본래 하늘에서 떨어지지 않았네.’ ‘석문의범(釋門儀範)’ 중 관음예문(觀音禮文).
“큰일이야! 하늘의 달님이 물에 빠져서 죽어가고 있어. 세상이 어두워지지 않게 어서 꺼내드려야 해!” 

대장 원숭이의 외침이 숲의 정적을 깨웠다. 후두둑 후두둑, 얽키고 설킨 나무를 헤치며 주변의 원숭이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모두 대장 원숭이가 가리킨 방향으로 시선을 보내니 달님이 물에 빠져 깨져가고 있었다. 대장 원숭이는 어쩔 줄 모르는 원숭이들에게 서로 팔을 잡아 거리를 늘려가면 달님을 잡을 수 있다고 제안했다.

조동종의 선승이자 화가인 셋손 슈케이(雪村周繼, 1504~1589)는 달님을 잡기 위한 원숭이들의 모습을 화면에 옮겼다. 부들부들한 털로 덮인 원숭이들이 제 나름대로 달님을 구출하기 위해 노력 중이다. 어떤 원숭이는 넘실거리는 파도 위에 솟아난 암석에 의지하여 한 손을 뻗고 있지만, 달님과의 거리는 여전히 멀기만 하다. 나무 둥치와 나뭇가지를 잡은 원숭이들도 보인다. 그리고 넝쿨이 감긴 나뭇가지를 꼭 붙든 원숭이의 팔에 의지한 대장 원숭이가 최대한 팔을 내려 달님을 잡으려 한다.

셋손이 그린 원숭이들은 중국 승려 목계(牧谿)가 그린 원숭이 도상의 영향을 잘 보여준다. 그의 그림이 일본에 전해진 뒤로 선화를 즐겨 그렸던 선승화가들은 그 도상을 소중히 여겼다. 그들은 그 도상을 즐겨 그렸고 자신의 화면에 능숙하게 풀어놓았다. 셋손이 숨결을 불어넣은 화면 속 원숭이들도 매우 자연스럽고 활달하기만 하다.

원숭이들은 결국 달님을 잡아 올렸을까? 이 이야기가 담긴 ‘마하승기율(摩訶僧祇律)’을 보면, 서로 팔을 연결한 500마리의 원숭이들은 자신들을 지탱하고 있던 나뭇가지가 부러져 모두 물에 빠져 죽게 된다. 원숭이들이 잡고자 했던 달의 형상은 거짓된 깨달음을 상징한다. 오직 하늘에 있는 달만이 진실한 깨달음인 것이다. 이는 형상에 대한 집착과 소유에 대한 우리의 착각이 허망하다는 이치를 일깨워준다.

부처는 늘 제자들에게 자신의 가르침을 물을 건너는 여느 뗏목처럼 여기라고 말했다. 이처럼 법(法)도 오히려 버려야 마땅한 것인데, 형상은 또한 오죽하겠는가. 그러기에 모든 형상은 허망한 환상일 뿐이니 그 형상에 집착하지 말라고 한 것이다. 원숭이들이 이 진리를 알았다면, 하늘의 달을 보고 물에 비친 달을 잡으려 하지 않았을 것이다.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 역시 저 원숭이들과 다를 바 없다. 우리는 잠시 두 손을 내려놓고 지켜볼 줄도 알아야 한다. 그래야만 형상의 집착에서 벗어나 내 삶이 보이고, 내 마음이 열리는 것이다.

김영욱 한국전통문화대 강사 zodiacknight@hanmail.net

 

[1492호 / 2019년 6월 12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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