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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야사의 귀의와 번스타인

기자명 김준희

클래식 대중화 이끈 노력서 붓다 ‘전도선언’ 연상

유태인 집안에서 태어난 수재
광범위한 활동으로 업적 남겨
붓다 제자 ‘야사’도 부잣집 자제
가진 것 내려놓은 혁신적인 삶

리허설 중인 번스타인.

지휘자 레너드 번스타인(1918~1990)은 예술, 종교, 문화, 인종, 종교 등 모든 면에서 20세기의 르네상스인이라고 할 만큼 광범위한 활동을 펼쳤다. 구스타프 말러의 교향곡 전곡을 세계 최초로 레코딩하여 전세계적으로 말러 열풍을 일으킨 것이 가장 인상적인 업적 중 하나다. 또한 클래식 음악가로서 최초로 뮤지컬 ‘웨스트사이드스토리’를 작곡해 브로드웨이에 입성하였다. 

번스타인은 이 작품으로 어렵고 진부하다고 여겨지는 클래식 음악에서 벗어나 새로운 음악을 미국 전역에 널리 알리는 기회를 만들며 흥행에도 성공했다. 특히 남녀 배우가 부르는 ‘Tonight’은 브로드웨이 역사상 가장 많은 사랑을 받은 곡 중의 하나로 우리나라에서도 상당히 자주 연주된다. ‘로미오와 줄리엣’의 현대판이라고 할 수 있는 이 작품은 단순히 두 남녀의 사랑 이야기를 다루는데 그치지 않는다. 빈민가, 갱단, 이민자들의 생활 등 1950년대의 미국 사회의 다양한 모습을 담고 있다. 

붓다의 여섯 번째 제자인 야사는 원래 바라나시에서 가장 부유한 거상의 아들이었다. 그는 붓다와 마찬가지로 부유하고 풍족한 어린 시절을 보낼 수 있었다. 야사는 친구들과 함께 매일 같이 무녀와 악공을 불러 연회를 즐겼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여느 때처럼 연회를 즐기고 난 후 새벽녘 잠에서 깨어 회랑을 나갔다가 충격에 휩싸이게 된다. 밤새 그와 함께 있었던 아름다운 자들이 다음날에는 상당히 추한 모습으로 변해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그 길로 집을 나와 녹야원 근처를 헤매며 괴로움에 울부짖었다. 마침 붓다는 최초의 다섯 비구를 깨달음의 길로 인도한 뒤, 녹야원 근처에 머물고 있었다. 붓다는 야사가 새벽에 집에서 뛰쳐나온 날, 그가 헤매고 있던 숲에서 새벽 경행을 하고 있었다. 

야사를 만난 붓다는 그에게 차제설법(보시를 실천하고, 계율을 지키면 천상에 태어난다는 가르침)을 하여 그가 인과의 이치를 이해했을 때, 사성제의 가르침을 설하였다. 야사는 붓다를 만난 지 몇 시간 지나지 않아 곧 깨달음을 얻게 되었다. 야사는 부모님의 허락을 받고 출가하여 붓다의 여섯 번째 제자가 되었다. 야사의 아버지 역시 붓다의 첫 번째 재가 남자제자(우바새)가 되었고, 어머니와 누이 또한 최초의 재가 여자제자(우바이)가 되었다. 

아잔타 석굴 제1굴의 벽화 ‘야사의 출가 장면’.

야사의 출가 소식을 들은 그의 친구들 54명은 야사를 되찾고자 붓다를 찾아가게 되지만, 붓다의 가르침을 듣고 이들 역시 출가하게 된다. 이로서 바라나시 근처의 귀족 자제들이 집단 출가하는 전대미문의 일이 벌어지게 되었다. 그들 모두 붓다의 가르침을 듣고는 오래지 않아 깨달음을 얻어 아라한이 되었다. 경전에서는 이것을 ‘세상에 61명의 아라한이 존재하게 되었다’라고 기술하고 있다.  

번스타인은 어렸을 때부터 다양한 경험을 했던 수준 높은 유태인 집안의 수재였다. 하버드 대학에서 경영학을 전공했지만, 재학 중 작곡은 물론 음악평론 잡지에 글을 쓰는 등 음악활동을 계속해 왔다. 18, 19세기 음악에서 벗어나 불협화음, 무조성 등 새로운 시대의 음악에 대한 관심과 ‘미국만의 새로운 음악’에 대한 열망도 가졌다. 

그는 특별히 아론 코플랜드의 음악을 좋아했고, 그의 ‘피아노 변주곡’을 즐겨 연주했다. 또 코플랜드의 음악을 소재로한 '인종적 요소가 미국 음악에 끼친 영향'이라는 음악에 관한 졸업논문도 썼다. 그는 논문에서 지역, 인종, 계급, 종교를 초월하여 하나로 묶는 ‘새롭고 중대한 미국 민족주의’를 제시할 수 있는 유기적이고 새로운 음악을 제안했다. 국민들에게 어떤 방향성을 제시 할 수 있는 음악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학부를 졸업하고 커티스 음악원에서 음악공부를 전문적으로 하게 된 번스타인은 지휘, 작곡, 관현악법 그리고 피아노 수업까지 받게 되었다. 특히 1976년 뉴욕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를 이끌고 로열 알버트 홀에서 ‘거쉰의 랩소디 인 블루’를 지휘와 피아노 솔로를 동시에 맡아 레코딩 할 정도로 피아노 실력도 뛰어났다. 그가 지휘자로 데뷔를 할 수 있었던 것은 1943년 발터 부르너의 대타로 무대에 서게 되었을 때였다. 하지만 50년대 중반, CBS 방송국의 음악 프로그램에 출연해서 뉴욕 필의 지휘를 맡으면서 본격적으로 인정받는 지휘자 반열에 들게 되었다.

그의 가장 뛰어난 업적은 당시 폐쇄적인 엘리트 위주의 문화 속에서 소수의 선택된 자들만 즐기던 클래식 음악을 대중 앞으로 끌어내는데 앞장선 것이다. ‘번스타인의 청소년 음악회 시리즈(Young People's Concerts)’는 CBS를 통해 미국 전역으로 방송되었으며, 그는 순수 예술과 대중예술 모두를 아우르는 미국을 대표하는 지휘자로 발돋움 했다. 이후 번스타인의 청소년 음악회를 벤치마킹하여 많은 이들이 클래식 음악에 친숙해질 수 있는 ‘해설이 있는 음악회’ 등이 기획되었다.

번스타인은 다른 지휘자들과는 달리 연습 시작 전에 단원들과 간단한 대화도 나누는 격의 없는 모습을 보였다. 특히 단원들의 건강이나 대소사 등을 챙기면서, 단원들의 직장 상사가 아닌 음악적 동료로서 그들을 대했다. 비엔나 신년음악회에 초청받아 비엔나 필과 요한 슈트라우스의 왈츠를 연주하게 되었을 때, 첫 박자만을 지휘하고 오케스트라의 관객석 앞으로 걸어 나온 일화는 너무도 유명하다. 왈츠의 본고장 오스트리아 비엔나의 음악가들과 청중들이 본인보다 훨씬 더 음악을 잘 알 것이라는, 단원들과 청중에 대한 예의를 표현한 것이었다.

청소년들을 위한 음악회 DVD 표지.

번스타인이 청소년 음악회에서 소개하고 코플랜드가 직접 지휘한 ‘평범한 사람을 위한 팡파레(Fanfare for the Common Man)’를 들어 보자. 훗날 코플랜드의 교향곡의 한 악장의 주제로 쓰이기도 했던 이 팡파레는 원래 2차 세계대전의 희생자들을 위로하기 위해 작곡되었다. 장엄한 관악기의 선율로 시작하는 이 곡이 초연 되었을 때 많은 사람들은 그 힘차고 강렬함에 반하게 되었고, TV쇼의 시그널이나 드라마의 배경음악으로 쓰이는 등 대중에게 매우 친숙한 곡이 되었다. 번스타인은 이 곡을 비롯한 코플랜들의 작품을 기회가 될 때마다 미국 청중들에게 소개했다.

음악에 대한 진지한 접근과 사회구성원으로서의 책임감, 다양하고 폭넓은 교육과 철학적 사고, 거기다 대중을 사로잡은 세련된 화법과 친근한 이미지까지 가진 음악가였던 레너드 번스타인. 그의 연주와 여러 활동은 기존의 딱딱한 클래식 음악계의 분위기와는 거리가 멀었다. 대중에게 클래식을 알리고자 자기 자신을 내려놓는 제스처를 취한 유태인 집안의 엄친아가 20세기 미국을 대표하는 지휘자로 거듭나는 모습은, 명문가와 사회 지도층의 자제들이 일제히 출가를 하여 붓다의 제자가 되었던 일화와 붓다의 전도선언이 연상된다. ‘인간과 천신을 비롯한 모든 생명의 이익과 안락’을 위해 포교를 실천하고, 진리를 설할 때 반드시 알기 쉽고 간결하게 설명하며, 뭇사람들에게 존경받는 행위를 당부하는 붓다의 전도선언을 떠올려본다.

김준희 피아니스트 pianistjk@naver.com

 

[1492호 / 2019년 6월 12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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