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로 만난 범어사 만세운동  
전시로 만난 범어사 만세운동  
  • 이경순
  • 승인 2019.06.17 13:26
  • 호수 149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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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상반기, 전국 각지에서 3·1운동 100주년을 기념하는 다양한 전시와 행사가 있었다. 그중 불교계의 3·1운동을 본격적으로 다룬 전시가 부산에서 개최되었다. ‘저항×2-범어사 3·1운동과 명정학교’라는 전시였다. 이 전시는 범어사 성보박물관과 부산근대역사관이 3·1운동 100주년을 기념하여 마련한 공동기획 특별전(2019년 3월1일~6월9일)이었다. 이 전시는 부산 범어사의 3·1운동에 대해, 그동안 잘 알려지지 않았던 만세운동의 배경과 인물들을 짚어 볼 수 있는 전시였다. 전시는 이제까지의 범어사 만세운동과 관련된 연구성과를 충실히 반영하면서, 당시의 기록들을 망라하여 범어사의 만세운동을 입체적으로 그려 볼 수 있도록 기획되었다. 

이 전시에서 눈에 띄는 점은 범어사 만세운동의 배경으로서 범어사 교육기관인 명정학교와 지방학림, 그리고 이후의 불교전문강원을 주목한 것이다. 오성월의 원력으로 1906년 세워진 명정학교와 1916년 범어사 지방학림의 역사가 전시에서 생생히 드러났다. 1919년 당시 범어사 만세운동을 주도한 인물들은 명정학교와 지방학림 출신이었다. 1900년대 이래 불교계에 팽배한 교육열, 본사들이 주도하여 세운 지방학교와 지방학림들이 결국 불교계의 근대 민족의식을 일깨우는 산실이자 만세운동의 진원지가 되었음을 범어사로부터 확인할 수 있었다. 또한 전시에서는 범어사 만세운동의 주역들이 다수 소개됐다. 1919년 3월에 있었던 범어사 만세운동은 경성에서의 만세운동 직후 급파된 김법린과 김상헌의 추동과 명정학교와 지방학림 학생들의 조직적인 움직임으로 성사될 수 있었다. 이 전시에는 김법린의 생애를 보여주는 다채로운 자료가 수록되었다. 

또한 전시도록에는 김영규·차상명·허영호·이근우·박정국·윤상은·김상기·양수근·황만우·오긍상·김재호·박재삼·지용준·오병준 등 범어사 만세운동 참여자의 행적을 추적하여 그들의 사진과 유물을 실었다. 그동안 이름으로만 남았던 만세운동 참여자의 얼굴을 드러내고 삶을 복원하는 뜻깊은 자료이다. 이 전시의 마지막에는 범어사 만세 운동을 뒤에서 도운 후원자들이 열거되었다. 19세기 말 이후의 범어사가 선찰대본산이자 민족불교의 수호사찰로서 역할을 할 수 있게 한 오성월, 그리고 한용운, 백용성도 소개되었다. 이 전시는 이렇게 범어사 만세운동의 산실인 범어사 명정학교라는 배경으로부터 시작하여 만세운동과 관련된 인물들을 고루고루 조명하며 관람자의 시각을 확장시켜주었다. 

한편, 이 전시와 전시도록은 100년 전 범어사의 모습을 사진과 유물을 근거로 친근하게 느낄 수 있게 해주었다. 100년 전 명정학교 졸업사진 속 학생들은, 빛바랜 사진 속이지만 앳된 철부지의 얼굴을 하고 있으면서도 위풍당당한 기개가 엿보였다. 범어사 불교전문강원 학생들의 여름 한 낮 해수욕 사진은 단번에 눈길을 끈다. 그들은 평소 금정산 깊은 산속에서 엄숙히 수행하는 학승들이었지만, 여름의 한 순간만은 활기찬 웃음을 모래사장에 퍼뜨리는 뜨거운 청춘이었을 것이다. 또한 오성월 대선사의 주지 명함과 낡은 명함집은 대선사의 손때 묻은 일상의 물건을 접한다는 색다른 감회를 준다. 

무엇보다 만세운동에 참여했지만 잘 알려지지 않았던 범어사의 인물들을 한 명, 한 명 역사의 뒤안길에서 호명한 점은 이 전시의 장점이자, 불교계 3·1운동의 연구 과제를 일러주는 나침반 같았다. 얼굴도, 생애도 일려지지 않은 만세운동의 불교인들, 근대불교사의 수많은 인물들을 연구와 전시로 되살리고, 시대의 불교상을 입체적으로 복원하는 일이 무엇보다 필요한 일임을 다시 한번 깨닫게 해주었다. 앞으로 각 사찰의 만세운동에 대한 연구와 전시가 활발해질 수 있게 되길 기대한다.

이경순 대한민국역사박물관 학예연구사 glib14@korea.kr

 

[1493호 / 2019년 6월 19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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