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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배주의적 불교사관

  • 데스크칼럼
  • 입력 2019.06.24 13:21
  • 수정 2019.06.25 05:54
  • 호수 1494
  • 댓글 5

부정적 견해 팽배하지만
불교 현존 자체가 기적
긍정적 불교사관도 필요

불교에 이해가 깊을수록 근현대 한국불교사를 긍정적으로 보는 이들은 거의 없다. 불교학자들조차도 대부분 비판 일변도의 시각을 견지하고 있다. 그렇게 볼 이유는 충분하다. 일제강점기 불교계의 친일행위를 비롯해 1950~60년대 독신승과 대처승의 극렬한 다툼과 법정소송, 불교종단의 군사정권 예속, 1990년대 말까지 계속됐던 스님들간 폭력사태, 자기중심의 기복화 된 불교신앙, 비구·비구니 차별과 문중 대립, 깨달음 지상주의와 교학 외면, 만연된 금권·흑색 선거, 불투명한 사찰 재정 등도 그렇다. 이런 문제들은 불교가 근현대기를 거치며 나타났던 엄연한 사실이고 불교사를 긍정적으로 볼 수 없도록 만드는 직접적인 요인들이었다.

그러나 관점을 바꿔보면 2019년 6월 현재 대한민국에 불교를 신앙하는 이들이 800만명 가까이 된다는 것은 놀라운 기적이라 할 수 있다. 알다시피 불교는 조선시대 내내 온갖 착취와 수모를 견뎌야 했다. 그 세월이 500년이다. 천민 취급 받던 스님들에 대한 냉대와 깔봄은 1960~70년대까지 끈덕지게 이어졌다.

혹자는 불교를 신봉하는 일본 영향으로 한국불교가 혜택을 받았다고 주장하나 근거는 미약하다. 메이지유신 이후 일본 내에서 제2의 종교로 전락한 일본불교계는 자신들의 생존을 위해 제국주의 정책에 적극 부역해야 했다. 그런 일본불교계가 진정성을 갖고 한국불교계를 도왔다기보다는 식민지 정책 협력이나 일본문화를 뿌리내리기 위한 의도로 보는 게 타당하다. 그렇기에 한국불교의 전통을 지키려는 측면에서 보면 일본불교 자체가 거센 시련이었다.

조선시대 산중으로 밀려났던 불교계는 신도가 적고 재정기반이 튼실하지 못했다. 때문에 서구식 교육·의료시설 마련이 쉽지 않았다. 외국 선교사의 특권과 자본에 힘입은 개신교와 가톨릭에 비교할 일이 아니었다. 이는 현대교육과 의료시설의 큰 격차를 가져왔고 불교계로서는 더 열악한 조건으로 내몰려야 했다.

해방됐다고 여건이 나아진 건 없었다. 오히려 미군정과 이승만 정권은 노골적으로 기독교 부흥 정책을 편 반면 불교계에는 분란을 부추겼다. 군사정권도 불교계를 철저히 정치적으로 이용했다. 훗날 자신이 불자라며 백담사에 숨어든 전두환은 군홧발로 법당에 난입했으며 수많은 스님들을 잡아가 고문하는 법난을 일으켰다. 일요일마다 방송에서 특정 목사의 설교를 허용한 것과는 대조적이었다.

군사정권이 막을 내리고 들어선 김영삼 정권도 기독교 중심의 편향을 서슴지 않았다. 이런 분위기는 김대중·노무현 대통령 시기에 뜸하다가 이명박 정권 때 정점으로 치달았다. 지금 문재인 대통령 역시 독실한 가톨릭 신자로 인사와 정책에 있어 자신의 종교를 반영한다는 비판들이 적지 않다.

언론도 오랜 세월 불교계에는 극히 부정적이었다. 지금이야 덕망 높은 스님들이 간간히 지면에 등장하지만 1990년대 초까지도 부정적인 기사들이 절대다수였다. 세상의 창인 언론이 불교를 부정적으로 보도하니 그것을 읽는 대중들이 불교를 좋게 보기 어려웠을 것이 분명하다. 1970~80년대 거셌던 민족주의 열풍도 불교계로서는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았다. 이 땅에서 1600년 역사를 함께 했음에도 불교는 인도종교라고 치부하는 분위기가 팽배했다.
 

이재형 국장

그런 시대를 거치며 조선시대 내내 엄청난 영향력을 행사였던 유교와 일제강점기 최대 신자를 자랑하던 천도교, 보천교가 몰락했다. 그렇다면 불교는 수많은 악조건을 견디며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었던 걸까. 근현대 불교를 다룬 수많은 논문이 있지만 이 같은 당위적인 사실에 주목하고 이를 구명한 논문은 찾아보기 어렵다.

우리 불교학계는 그동안 나무에만 시선을 맞추고 정작 숲은 외면해왔는지 모른다. ‘큰스님’을 다룬 글에서는 극찬이 익숙하지만 정작 근현대불교를 거시적으로 바라보는 관점은 긍정성을 상실한 패배주의적 혹은 자학적 불교사관이 아닌지 진지하게 성찰할 일이다.

mitra@beopbo.com

 

[1494호 / 2019년 6월 26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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