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 불생불멸에 대한 오해-하
42. 불생불멸에 대한 오해-하
  • 이제열
  • 승인 2019.06.25 10:12
  • 호수 149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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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만 앞세우면 본래 의미는 훼손

대승에선 모든 존재가 ‘공’
불생불멸도 공의 연장선상
소승 생멸관 비판 위한 것
과학 적용 대단히 주의해야

대승에서는 존재의 실상을 공으로 파악한다. 불생불멸, 불구부정, 부증불감도 공의 연장선상에 있다. 그런데 이런 가르침을 과학적 잣대로만 해석하면 불교를 유견(有見)에 떨어지게 한다. 이는 불교가 매우 합리적이고 과학적 종교라는 이미지를 대중들에게 심어줄 수 있을지는 몰라도, 그 교설이 안고 있는 본래적인 의미는 퇴색할 수밖에 없다.

대승의 모든 교리들은 소승의 법성을 비판하고 이를 극복하라고 가르친다. 특히 반야경은 소승교의 가르침들을(여기서 소승교는 초기불교의 가르침들이다) 억제하는 지양교(止揚敎)로서 설법에 큰 차이를 보인다. 그중 불생불멸의 교설은 모든 것이 생멸한다는 소승의 견해를 타파하고 공의 입장에서 모든 존재의 실상에는 어떠한 정해진 법칙이 없음을 역설한다.

불구부정과 부증불감도 소승의 사식설(四食設)과 관련된 가르침이다. 소승에서는 중생들이 취하는 먹거리에 네 가지가 있다고 말한다. 단식(段食), 촉식(觸食), 사식(思食), 식식(識食)이 그것이다. 여기서 단식은 음식을, 촉식은 접촉을, 사식은 의도를, 식식은 의식을 각각 취하는 것을 일컫는다. 중생은 단순히 입으로만 음식을 먹는 것이 아니라 접촉과 의도와 의식들을 먹고 산다는 것이다.

초기불교 경전인 ‘맛지마니까야’에 이렇게 서술돼 있다. “벗들이여, 어떠한 것이 자양분이고, 어떠한 것이 자양분의 발생이고, 어떠한 것이 자양분의 소멸이고, 어떠한 것이 자양분의 소멸에 이르는 길인가? 자양분에는 네 가지가 있는데 이미 생겨난 뭇 삶의 생존을 위하고 다시 생겨나게 될 뭇 삶의 이익을 위한 것이다. 네 가지란 어떠한 것인가? 거칠거나 미세한 물질적인 자양분[段食], 두 번째는 접촉의 자양분[觸食], 세 번째는 의도의 자양분[意思食], 네 번째는 의식의 자양분[識食]이 있다.”

그러면서 이러한 네 종류의 먹거리들 모두가 중생의 욕망과 갈애에 의존하면서 중생의 번뇌를 더욱 자라게 만든다고 한다.

“갈애가 생겨나므로 자양분이 생겨나고 갈애가 소멸하므로 자양분이 소멸한다. 자양분의 소멸에 이르는 길이야말로 여덟 가지 고귀한 길이니 곧 올바른 견해, 올바른 사유, 올바른 언어, 올바른 행위, 올바른 생활, 올바른 정진, 올바른 새김, 올바른 집중이다.”

중생들은 네 가지 먹거리들에 탐착하는 속성이 있지만 궁극적으로 이들 먹거리는 줄이고 없애야 할 대상들이라는 것이다. 네 가지 먹거리들을 취하면 번뇌가 더욱 늘게 되고 마음이 혼탁해져 괴로움이 더해진다. 이때 네 가지 먹거리들을 줄이고 없애는 구체적인 방법으로 팔정도가 설해진다. 팔정도를 닦으면 먹거리들이 소멸해 번뇌가 없어지거나 줄어들게 되고 마음이 청정해져 모든 고통으로부터 벗어난다는 것이다.

그러나 대승은 이 같은 소승의 가르침과는 전혀 다른 입장을 취한다. 그것은 중생과 모든 법이 본래 공하여 실체가 없기에 중생들이 네 가지 먹거리들을 취한다 해도 본질에 있어 결코 더러운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마찬가지로 팔정도를 닦아 번뇌가 소멸하더라도 깨끗한 게 아니라는 것이다. 불구부정의 의미는 여기서 찾아야 한다. 또한 팔정도의 실천에 의해 네 가지 먹거리들을 감소시키거나 소멸시키더라도 중생 자체가 공하고 네 가지 먹거리들이 공하기에 실상에 있어서는 번뇌가 늘어나거나 줄어드는 것은 아니다. 중생의 번뇌 역시 공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불생불멸 불구부정 부증불감의 교설은 사식설 및 번뇌와 관련한 가르침과 연결되어 있다. 따라서 부증불감의 교설은 대승경전에 명시된 부처님의 설법에서 이해해야 한다. 과학적 지식을 동원해 불법에 적용시키는 일은 대단히 주의해야 한다. 자칫 부처님의 가르침이 훼손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제열 법림선원 지도법사 yoomalee@hanmail.net

 

[1494호 / 2019년 6월 26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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