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8. 만델라의 권위
118. 만델라의 권위
  • 김정빈
  • 승인 2019.06.25 10:35
  • 호수 149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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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해자까지 끌어안은 도덕적 고결성이 원천

대통령에 당선 된 이후 만델라
진실과 화해위원회 결성 조사 
인권 탄압한 가해자들 용서해
권위는 보편적인 진실서 나와 
그림=육순호
그림=육순호

대부분의 아프리카 국가들이 그러하듯이 남아프리카 또한 백인들이 이주해 오면서 근대화가 시작되었다. 아프리카에 풍부하게 매장되어 있는 금과 다이아몬드를 채굴하기 위해 이주해온 백인들은 흑인을 노예로 부렸다. 시간이 흘러 노예 제도는 없어졌지만, 백인이 흑인의 노동력을 착취하는 면에서는 달라진 것이 없었다. 남아프리카에서 흑인들은 같은 일을 하고도 백인에 비해 4분의 1밖에 안 되는 적은 임금을 받았다.

1945년부터 남아프리카 백인 정부는 인종 분리정책을 시행했다. 그 정책은 아파르트헤이트(apartheid)라는 이름의 법으로써 정당화되었는데, 백인들은 그 법이 성서에서 유래한다고 강변하였다. 구약성서에 나오는 바벨탑 설화를 가져와 유대교와 기독교인들의 신인 야훼의 징벌로 인간이 종족별로 흩어졌으며, 따라서 인종을 분리하는 정책은 응당하다고 그들은 주장했다.

1918년 넬슨 만델라(Nelson Mandela )는 이런 상황에 처해 있는 템부족 추장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1942년에 대학에서 법률학 학위를 취득한 후에 올리버 탐보와 함께 변호사 사무실을 열었다. 당시 흑인들은 아프리카 민족회의(ANC)라는 기구를 만들어 백인들과 맞서 투쟁하고 있었고, 그들은 그 연명에 참여했다.

백인 정부의 흑인에 대한 차별은 더욱 심해졌다. 변호사인 만델라가 법정에서 변호를 하기 전 백인 판사로부터 “변호사 증명서를 보여달라”는 요구를 들었다. 만델라가 “증명서를 소지하지 않았다”고 답하자 백인 판사는 그 이유를 들어 개정을 거부하고 만델라를 법정에서 내쫓았다. 흑인들에게는 참정권이 없었고 그래서 자신들의 대표자를 의회에 보낼 수도, 자신들이 지지하는 국가 지도자를 뽑을 수도 없었다.

만델라는 사회적으로 존중받는 법률가였지만 법원 안에서는 때때로, 법원 밖에서는 대체로 존중받지 못했다. 어느날 만델라는 자동차를 운전하고 가다가 두 차 사이에 차가 끼어 움직이지 못하는 백인 여자를 도와 준 적이 있었다. 그 부인이 만델라에게 6펜스 동전 하나를 주자 만델라는 사양했다. 그러자 백인 부인은 “1실링을 원하는 게지. 하지만 나는 절대로 너에게 1실링은 주지 않겠어”라고 소리를 지르더니 동전을 던진 후 차를 몰고 떠났다.

ANC는 처음에는 비폭력 방법으로 저항했지만 백인들이 흑인들의 민권운동을 극심하게 탄압하자 1961년에 ‘움콘토 위 시즈웨(민족의 창)’이라는 무장 단체를 창설하고 만델라를 그 지도자로 선정했다. 그는 그 조직에서 ‘검은 별봄맞이꽃’이라는 암호명으로 활동하다가 1962년 경찰에 의해 체포되었다.

삶에 적극적이고 열정적이었던 그는 감옥에서도 자기계발과 인권투쟁을 그치지 않았다. 시대의 변화에 뒤처지지 않기 위해서도 감옥 밖에서 일어나고 있는 변화를 여러 소식통을 통해 감지하였으며, 지치고 낙망해 있는 감옥 안의 함께 있는 동료 인권운동가들을 고무, 격려하였다.

만델라는 남아프리카의 흑인들은 물론 모든 세계인들로부터 지지를 받았다. 사람에게는 남에게 침해받아서는 안 되는 기본적인 인권이 있으며, 흑인 또한 사람이라는 것은 세계의 모든 사람들이 인정하는 가치이다. 극소수 사람들을 제한한 모든 사람들이 남아프리카에서 벌어지는 탄압정책을 비판하였고, 그 때문에 남아프리카는 올림픽에 출전하지 못하기도 했다.

1990년 내부의 투쟁과 외부의 압력을 더이상 견디지 못하게 된 남아리카의  클레르크 총리는 만델라를 석방하였다. 이후 만델라는 곧바로 ANC의 부의장이 되었고, 다음 해에는 오랜 동료인 올리버 탐보를 이어 의장에 취임했다. 그는 곧 백인 정부와의 협상에 들어갔으며, 수많은 어려움을 극복하고 마침내 만민평등의 정신에 입각한 민주헌법을 마련할 수 있었다.

1994년, 새로운 헌법에 의해 시행된 다민족 총선에서 흑인들은 처음으로 투표권을 행사했다. ANC는 대승을 거두었고, 만델라는 대통령에 취임했다. 그는 곧 ‘진실과 화해 위원회’를 구성하여 아파르트헤이트 시절에 일어난 인권 침해에 대해 조사했다. 조사가 끝나자 만델라는 가해자들을 용서함으로써만 남아프카의 미래가 있음을 설득하여 국민적 동의를 얻었다. 이 공로를 인정받아 만델라와 클레르크는 1993년 노벨평화상을 수상했다. 

2013년에 만델라가 세상을 떠났을 때, 세계의 수많은 지도자들이 이 위대한 인물을 추모했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과 지미 카터, 조지 부시, 빌 클린턴, 버락 오바마 등 전직 미국 대통령, 시진핑 중국 국가 주석, 아베 신조 일본 총리, 티베트의 영적 지도자 달라이라마 등이 입을 모아 그의 헌신적인 삶에 찬사를 보냈다.

1998년에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은 남아프리카를 방문하여 만델라가 27년간 지낸 로빈섬의 감옥을 찾았다. 그날 만델라는 자신이 거기에서 겪은 경험을 말하는데, 미국의 한 보도 매체는 “그 말을 듣는 클린턴의 모습은 마치 선생님의 말씀을 듣는 초등학생 같았다”고 전했다. 미국의 현직 대통령을 초등학생으로 만들어버린 만델라의 권위, 그 ‘권위’는 ‘권세’와 다르다. 권세는 미국 대통령 쪽이 만델라에 비해 100배나 될 정도로 컸다. 하지만 만델라에게는 평생에 걸쳐 추구해온 윤리적, 도덕적인 고결함이 있었다. 옳은 것을 추구하는 불굴의 정신, 평등과 자유라는 인간의 보편가치를 추구함에 있어서 그가 보인 고도의 성실성, 그의 권위는 그로부터 나온 것이다.

신(神)을 말하는 종교와 법(法, Dharma)을 말하는 종교가 있다. 전자는 자주 ‘신의 권세’를 말하지만, 법을 말하는 불교는 ‘법의 권위’를 말한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법은 무엇인가. 법은 인간으로서의 바른 길이며, 그리하여 법은 곧 가치이다. 그 가치는 자유, 평등, 행복 추구권 등 기본권에 기초해 성립한다. 이 기본권을 종교 교리의 일종으로 본다면 이 교리를 믿는 종교인의 수는 불교, 기독교, 이슬람교, 힌두교 등 세계적인 종교들의 신자를 합친 수보다 많다.

법을 말하는 교리는 신을 말하는 교리보다 기본권 교리에 가깝다. 법은 인간을 피부색으로 분별하지 않으며, 남녀로도 분별하지 않고, 어른과 아이로도 분별하지 않는다. 인간을 오온(五蘊)으로 분석하는 부처님의 교설 중 색, 수, 상, 행, 식이라는 다섯 모임에서 색은 다만 색일 뿐 거기에는 흑인, 백인, 황인의 색은 없고, 이는 나머지 네 온(蘊) 내지 다른 모든 면에서도 그러하다.

문제는 이렇듯 절대적인 평등정신에 기초해 있는 불교계에 돈과 명예, 권력 등을 자랑삼는 권세 추구자들이 많다는 점이다. 세속적인 힘에 의지할 것인가,  내적 도덕률에 의지할 것인가? 내적 도덕률 면에서, 입만 열면 법을 말하는 종교 지도자들의 거의 대부분이 넬슨 만델라에 멀리 미치지 못한다는 사실이 우리를 슬프게 한다.

김정빈 소설가 jeongbin22@hanmail.net

 

[1494호 / 2019년 6월 26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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