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계종 법계위원 무관 스님
조계종 법계위원 무관 스님
  • 정리=주영미 기자
  • 승인 2019.07.01 16:22
  • 호수 149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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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행복한가’를 점검하고 관심 가질 때 행복은 발견됩니다”

80년 살아도 행복 느끼는 시간은
고작 20일 불과한 게 우리 현실
불교는 행복하게 살기 위한 종교
행복 위해서는 스스로 점검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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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을 찾기위해서는 무엇에든 
마음 모아 집중해야 비로소 가능
나와 가족, 마주하는 주변인들과
관계 돈독하게 하는 지혜도 필요
무관 스님은 “나를 남처럼 생각하고 남을 자신처럼 생각하는 지혜를 갖춘다면 일상에서 쉽게 감정에 휘둘리지 않게 된다”고 강조했다. 

그동안 ‘대방광불화엄경(大方廣佛華嚴經)’의 내용을 한 달에 한 번 큰스님들의 법문을 통해 들어오셨습니다. 오늘은 십회향품(十廻向品)의 열 가지 가운데 마지막이 되겠습니다. 마지막을 입법계무량회향(入法界無量廻向)이라고 합니다. ‘법계’에 들어가는 한량이 없는 회향, 그래서 ‘화엄경’을 간단하게 이야기하면 한마디로 법계가 됩니다. 

법계라고 하는 말에서 법은 시간을 초월하는 것을 이야기하고 계는 공간을 뛰어넘는 것을 이야기합니다. 바꾸어 이야기하면 시간은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있고, 공간은 동, 서, 남, 북, 상방, 하방, 중방 등 여러 방위가 있습니다. 공간을 자세히 표현하면 36방위라고 합니다. 즉 법계라고 하는 말은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어서, 초월해서 이 세계에 가장 오래도록 영원히 머물러 있는 것을 표현하는 것입니다. 

우주 만류는 본체와 현상으로 말합니다. 본체는 이치이고 진리이고 자연적으로 순환하는 법칙입니다. 현상은 삼라만상, 나무 하나와 물방울 하나 그리고 모래 한 알까지 일컫습니다. 본체과 현상은 보이지 않는 것과 보이는 것이며 이 모든 것들이 한량이 없이 넓고 크고 끝이 없고 제한이 없으므로 영원한 것이라고 표현합니다. 

법은 크게 진리와 현상과 질서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법의 체는 진리입니다. 두 번째 법의 상은 삼라만상 모든 것을 포함하는 모습을 갖췄다고 하여 현상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세 번째 법의 쓰임새는 질서입니다. 제가 앞서 법은 시간으로 과거, 현재, 미래를 다 포함한 것이라고 했습니다. ‘화엄경’ 십회향 가운데 마지막인 입법계무량회향의 법 하나만 갖고 해석하더라도 다양하게 여러 가지로 해석이 됩니다. 

불교는 인생을 행복하게 살아가기 위한 종교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행복이란 돈을 쥐듯이 손으로 쥘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행복하기 위해서는 자신 스스로 지금 행복한가 하는 것을 점검해야 합니다. 그냥 뜬구름을 보면서 행복을 바라는 것이 아니라 ‘지금 나는 행복한가’를 항상 점검해야 합니다. 그리고 스스로 평생 깨닫는 것입니다. 그래서 불교는 깨달음의 종교라고 합니다. 무엇을 깨닫는가? 바로 지금 행복한가, 하지 않은가를 살펴보고 점검해서 현실 속에서 깨닫는 것입니다. 그것을 깨달으면 지금 행복하지만 넋 놓고 생각하지 않으면 결코 행복할 수 없습니다. 

조금 전 행복하기 위해서 불교를 믿고 행복을 깨닫기 위해서 불교를 믿는다고 했습니다. 학자들이 통계를 내어보니 사람들이 평생 잠을 자는 시간이 26년이나 된다고 합니다. 하루 평균 6시간을 잔다고 할 때 80세까지 산다고 계산하면 26년이 된다는 것입니다. 또 일하는 시간이 21년이 되고, 먹고 마시는 시간이 9년 정도 된다고 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즐겁고 행복하다고 느끼는 시간은 과연 얼마나 될까요? 학자들의 말에 따르면 평생 행복하다고 느끼는 시간이 1년도 아니고, 한 달도 아니고, 평생 20일 정도 된다고 합니다. 이것은 우리가 행복에 대해 관심을 갖는 시간이라고 고작 20일이라는 것일 수 있습니다. 우리는 늘 행복을 추구하면서도 행복에 대해 얼마나 관심을 갖지 않고 살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행복하려면 관심을 가지고 스스로 점검을 해야 합니다. 그런데 ‘행복’ ‘행복’이라고 입으로는 말하면서도 관심을 갖지 않고 살펴보지 않기 때문에 행복한 순간도 지나쳐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통계에 의하면 또 우리가 화내는 시간이 평생 동안 무려 5년이나 된다고 합니다. 뿐만 아니라 좋아하는 사람을 기다리고 무엇이 이루어지길 기다리는 시간이 3년이라고 합니다. 불교에서는 성 안내는 그 얼굴이 참다운 공양구라고 했는데 성질만 부린 시간만 따져도 5년이니까 얼마나 긴 시간입니까? 

범어사에 와서 법회 보는 시간, 법문 듣는 시간을 합쳐봐야 2시간 반에서 3시간입니다. 화내는 시간은 5년이나 됩니다. 그런 것을 생각해 보면, 우리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행복을 점검하려면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선방에서 참선하는 것도 첫 번째가 관심입니다. 마음을 모으는 것이 화두입니다. 화두를 갖고 집중해야만 깨달음을 얻을 수 있습니다. 행복도 마찬가지입니다. 관심을 갖고 행복에 집중해야만 얻을 수 있습니다. 관심을 갖고 수시로 점검하지 않으면 행복은 나의 것이 아닙니다. 하늘의 뜬구름과 같습니다. 

참선도 관심이며 경을 읽는 것도 관심이고 관세음보살 부르는 것도 관심입니다. 그 관심을 하나로 집중해야 성취가 있지 관심이 집중되지 않으면 성취가 없습니다. 관심이 집중되는 것을 삼매라고 합니다. 세속에서도 책을 열심히 보는 것을 독서삼매라고 합니다. 불교에서 나온 말이 세속화된 셈입니다. 

우리는 무엇을 하든지 집중해서 해야 합니다. 이것을 ‘화엄경’에서 ‘입법계무량삼매’, 법계에 한량없는 그런 세계에 들어가는 그런 삼매를 증득하는 것을 회향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회향은 세 곳으로 한다고 했습니다. 보리에 회향하고 실제에 회향하며 중생에 회향합니다. 그 세 가지 회향하는 것이 내 것을 얻기 위함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옛날에 젊은 친구 하나가 현명한 노인 한 분을 찾아갔습니다. “앞으로 살아가는데 귀감이 될 수 있는 말씀 한 가지만 해주십시오.” 그러니까 그 노인네가 젊은 사람이 찾아와서 보통 사람은 잘 묻지 않는 ‘앞으로 살아가는 데 귀감이 될 말’을 물으니 기특해서 이렇게 말씀하셨다고 합니다. “너 자신을 남처럼 생각하라.” 

여러분, 무슨 의미인지 아시겠지요? 그 말의 의미는 항상 자신에게 좋은 일이 있거나 나쁜 일이 있더라도 자신을 남으로 생각하니까 좋거나 괴로울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좋은 일을 당했거나 나쁜 일을 당했거나 감정에 휘둘리지 않는 것입니다. 

그랬더니 그 젊은 사람이 “좋은 감정이나 나쁜 감정에 휘둘리지 않고 항상 편안한 마음을 갖도록 하라고 말씀하신 것 같습니다”고 말합니다. 그러자 노인네가 “똑똑하다”고 하면서 다시 “남을 자신처럼 생각하라”고 두 번째 당부를 했다고 합니다.  

첫 번째는 자신을 남처럼 생각하지만 두 번째는 남을 자신처럼 생각하라고 했습니다. 이렇게 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다른 사람이 고통을 받으면 도와주려고 하지 않겠습니까? 나의 일이니까 당연히 남을 도와주려고 할 것입니다. “아 그 말씀은 다른 사람을 공경하라는 말씀이겠습니다.” 다시 젊은이가 대답했습니다. 노인은 ‘생각보다 훨씬 똑똑하네’라고 생각하면서 “남을 남처럼 생각하라”고 세 번째 이야기를 했습니다. 

두 번째 이야기가 다른 사람을 공경하는 것이 근본이었다면, 세 번째는 다른 사람을 남처럼 생각하니까 다른 사람이 나에게 잘해주기를 바라지 않아도 됩니다. 하지만 대부분 사람은 결혼하면 남편은 아내가 잘해주기를 바라고, 아내는 남편이 잘해주기를 바랍니다. 잘해주지 않으면 성질나고 바가지를 긁습니다. 남을 남처럼 생각하라는 말을 잘 기억해주시기 바랍니다. 그 노인은 다시 “자신을 자신으로 생각하라”고 마지막 당부를 했습니다. 

우리는 오늘 십회향품 마지막 입법계무량회향을 공부했습니다. 오늘 지나고 나면 다음 초하루부터는 ‘십지품’ 초지부터 들어갑니다. 오늘은 시간과 공간에 대한 것이 법계라고 배웠습니다. 그것을 줄이면 법성(法性)입니다. 법성은 바로 나와 남의 관계입니다. 그러니까 여러분에게 지금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과 자신의 옆에 있는 사람, 그리고 나와 마주한 사람과의 관계에서부터 돈독히 해야 한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나의 옆에 있는 사람을 존중할 줄 알고 그러면서도 그 사람에게 특별히 바라는 마음을 갖지 말아야 합니다. 

나를 남처럼 생각하고 남을 자신처럼 생각하고 남을 남처럼 생각하고 자신을 자신으로 생각하는 마음가짐으로 살아간다면, 우리는 항상 부처님의 법대로 잘 사는 현명한 불자가 될 것입니다. 이것으로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정리=주영미 기자 ez001@beopbo.com


이 내용은 지난 6월3일 금정총림 범어사(주지 경선 스님) 보제루에서 봉행된 ‘53선지식 천일 화엄대법회’에서 조계종 법계위원 무관 스님이 ‘십회향품-입법계무량회향’을 주제로 설한 법문입니다.

 

[1495호 / 2019년 7월 3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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