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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 ‘조왕경’ 권장하는 스님

기자명 이제열

“불자에게 부엌 신을 모시라니요”

스님이 불자에게 조왕경 권유
무속성격 강한 경전은 부적절
불교 발전 저해하는 ‘걸림돌’

서울 조계사 주변의 불교용품점에 들렀다. 오래전 출판된 불서 한권을 찾을 수 있을까 해서였다. 용품점 안에는 한 여성불자와 비구니스님이 있었다. 두 사람이 용품점에 함께 온 일행은 아닌 것 같았다. 잠시 후 그 불자가 “집안에 우환을 없애려면 무슨 경전을 읽어야 좋을까요?”하고 주인에게 물었다. 그는 “나보다는 스님께 직접 여쭤보는 게 좋겠네요”하면서 스님을 바라봤다.

스님은 그 불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집안에 우환이 많고 평온하지 못하면 ‘조왕경’을 읽으세요. 조왕님을 모시지 않아 그럴 수 있습니다. 조왕님을 정성껏 위하면 재물도 들어오고 부부금실도 좋아지며 집안이 잘됩니다.” 그러면서 조왕에 대해 이런저런 설명을 했다. 그 불자도 스님의 말에 마음이 동했는지 “스님이 말씀하시니 그리해보겠습니다” 하면서 주인에게 ‘조왕경’ 한권을 달라고 부탁했다.

스님의 답변을 지켜보던 나는 씁쓸하지 않을 수 없었다. ‘조왕경’은 조선후기에 만들어져 확산된 책으로 병굿이나 신굿을 지낼 때 이용된 경전이다. 어느 경전이든 시대의 필요성에 의해 만들어졌겠고 가치가 아예 없을 수 없겠지만 21세기에 굳이 민간신앙과 습합된 경전을 소개하는 것은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나는 스님에게 정중히 말했다. “스님, 불교를 잘 모르는 신도가 길을 물으면 바르게 답하셔야지 요즘 같은 시대에 웬 ‘조왕경’입니까? 조왕을 모시지 않아 집안이 평온치 않다니 그게 어느 경전에 나오는 말씀입니까? 많고 많은 경전 가운데 무속 관련 경전을 권하시다니 스님답지 않습니다.”

그러나 스님은 이렇게 말했다. “보아하니 공부 좀 하신 분 같은데 웬 구업을 지으십니까? 조왕님한테 벌 받아요.” 그 말에 어처구니없어 내가 “그런 조왕 있으면 당장 나오라고 하시지요. 조왕신 머리를 목탁 채로 후려 칠테니….” 하고 되받았다.

상황이 이렇게 흘러가자 옆에 있던 불자는 어쩔 줄 몰라 했다. 그때 용품점 주인이 나섰다. “공부하신 관점이 서로 다르시니 그쯤 하시고 용건들을 보셨으면 합니다.” 나는 주인의 말을 받아들여 스님에게 인사하고 불교용품점을 나왔다.

1700년 한국불교는 시대에 따라 다양한 모습을 띠었다. 그것을 부정적으로만 볼 수는 없다. 실제로 30~40년 전만 해도 마을입구마다 서낭당이 있었고 뒷산에는 산신당이 있었다. 온갖 신들도 많았다. 집안에도 신들이 어찌나 많은지 매년 안택이라는 이름으로 굿 비슷한 것을 할 때면 갖가지 신들을 불러 정성을 드리곤 했다. 우선 집터를 지키는 터줏대감이 있는가하면 안방을 지키는 성주신령, 화장실을 지키는 측귀, 문간을 지키는 문간대장부, 굴뚝을 지키는 굴뚝장군, 우물을 지키는 용왕대신, 아궁이를 지키는 병정동자가 있었다.

이 가운데에 조왕신은 부엌을 지키는 신으로 좌우에 담시역사와 조식취모라는 부하 신을 거느린 제법 서열이 높은 신이다. 사람의 먹거리와 재산을 관장하는 만큼 과거 궁핍한 시대에 두려움의 대상이었다. 그런 시대에 불교도 이런 민간신앙을 외면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그러나 현대사회에서 이를 곧이곧대로 믿기는 어렵다. 세상은 상전벽해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크게 변했다. 머지않아 30층 빌딩 크기의 우주선이 달나라에 도착하고, 인공지능 로봇들이 거리를 활보하게 될 것이다. 그런데 불교 신앙형태는 이에 걸맞게 변화했을까? 아직도 방편과 전통이라는 이름 아래 불교는 미신적인 행태를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 엄연한 현실이다.

그 많던 신들은 인간들의 무관심 속에 서서히 잊혀져갔다. 신보다 무서운 것이 사람의 마음이다. 사람들이 믿지 않으면 신들도 더 이상 맥을 추지 못했다. 그런데 불교는 이런 신들을 붙들고 있다. 그게 불교 발전의 걸림돌이자 시대에 역행하는 일임을 깨닫지 못한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이제열 법림선원 지도법사 yoomalee@hanmail.net

 

[1495호 / 2019년 7월 3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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