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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2. 설일체유부와 경량부의 지식론 ③

다르마의 실체는 삼세에 걸쳐 항상 존재한다

법체 있어야 여러 현상 있고
인식도 법체 존재해야 가능
기억 작용은 기억 대상 관념
삼세에 걸쳐서 실재하기 때문

설일체유부의 5위75법이라는 ‘다르마이론’은 초기불교에서 일체법을 5온․12처․18계로 분류하던 방식을 유위(有爲)와 무위(無爲)의 다양한 다르마로 해체하여 인식과 존재나 인과론 등의 여러 문제들을 설명하는 매우 독특한 체계이다. 유부의 다르마이론은 법의 실체성, 즉 ‘다르마가 삼세에 걸쳐 실체적으로 존재하고(三世實有), 그 본체는 항상 존재한다(法體恒有)’는 아공법유(我空法有)의 실재론적 사고를 드러내기 때문에 비판의 표적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유부가 제시하는 법의 의미는 그렇게 단순하지 않은 듯하다. 

‘구사론’에서 세친은 ‘다르마(法)는 고유한 특징(自相, svalakṣaṇa)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다르마’라고 정의한다. 이때 고유한 특징(自相)은 공통적 특징(共相, sāmānyalakṣaṇa)과 대별되는 개념으로 일종의 인식론적인 이해방식을 나타낸다. 예컨대 전5식 등의 지각은 자상을 대상으로 삼고, 의식 등의 추리는 공상을 대상으로 삼는다. 그런데 유부의 교리체계를 집대성하고 있는 ‘대비바사론’에서는 다르마가 ‘자성(自性, svabhāva)을 지니고 있는 것(任持自性)’으로 정의되고 있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때 자성은 사물의 존재방식을 나타내는 존재론적인 이해방식을 나타낸다. 이런 점에서 다르마에 대한 유부와 세친의 이해방식에는 사상적 변천이나 다소 관점의 차이가 엿보인다.

한편 다르마는 유식학파나 중관학파 등의 대승적인 관점에서는 자성이나 자상을 거의 동일한 의미로 간주하기 때문에 문맥에 따라 인식론적 본질이나 존재론적 본질로 해석되기도 하지만 별다른 차이는 없다. 하지만 아비다르마의 단계에서는 다르마를 존재론적 본질로 보는지? 아니면 인식론적 본질로 보는지에 따라 미묘한 차이는 있다고 본다. 여하튼 유부가 제시하는 ‘5위75법’이라는 다르마 체계에서 다르마는 우리의 인식주관과 매우 긴밀한 관계를 가지는 것으로 이해된다. 여기서 다르마를 존재론적인 실체로 볼 것인가? 아니면 인식론적인 실체로 볼 것인가? 라는 문제는 유부의 다르마이론을 이해하는데 매우 중요하다.

사실 유부는 인식은 대상이 없이 일어날 수 없다는 인식론적인 관점을 지닌다. 아울러 유부는 식은 형상을 가지지 않기 때문에 대상을 그대로 반영한다는 무형상지식론의 입장을 표방한다. 이런 점에서 유부는 ‘삼세실유 법체항유’를 주장하고 있다. 법체가 있어야만 여러 현상이 있을 수 있고, 또한 인식도 법체가 항상 실체로서 존재하는 경우에만 가능하다는 입장이다. 여기서 법체는 단순히 존재론적 실체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고, 인식의 인과관계 속으로 들어오는 요소적인 성질로도 이해된다.

예를 들면 유부의 무형상지식론의 입장에서 기억의 작용은 기억의 대상인 관념이 삼세에 실체적으로 존재할 때 설명가능하다. 즉 유부의 관점에 따르면, 기억의 현상은 의근과 기억의 대상인 관념(法境), 의식이 동시에 나란히 존재해야만 설명할 수 있다. 왜냐하면 의식이 없이 의근만으로는 대상을 파악할 수 없는데, 의근은 과거법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기억의 대상인 과거의 관념은 어떻게 존재하는가? 그것은 잠세태로서 존재하는 것인가? 또는 잠세태는 식의 대상이 될 수 있는가? 유부는 작용성을 지닌 것은 현세태인 식(識)이기 때문에 잠세태인 대상은 식에 항상 노출되어 있어야 하고, 식은 이러한 대상을 투영해서 인식할 수 있게 된다. 

‘삼세실유 법체항유’의 이론은 유부의 인식론적 이해방식이나 무형상지식론 등과 통합적으로 이해될 때 법체는 식이나 무루혜와 관련된 영역으로 유추된다. 이런 점에서 유부의 다르마이론은 보다 열린 시각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김재권 능인대학원대학교교수 marineco43@hanmail.net

 

[1495호 / 2019년 7월 3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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