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13. 해질 무렵, 노을 ① - 동은 스님

기자명 동은 스님

“노을 같은 삶은 찬란한 여운을 남기는 삶이다”

노을하면 생각나는 어린왕자
외로울 때 그 노을 보았다지

작은별서 지내는 어린왕자나
출가수행자들은 비슷한 처지

​​​​​​​어느 해 여름인가 해제 직후
무슨 망상들었는지 차 빌려
노을여행하려 2번 국도 종주 

그림=허재경
그림=허재경

“있잖아, 몹시 슬퍼지면 해 지는 모습을 좋아하게 돼.” 

생 떽쥐베리가 쓴 ‘어린왕자’에 나오는 구절이다. 나는 언제부턴가 ‘노을’하면 어린왕자가 생각났다. 어린 왕자가 사는 별은 워낙 작아서 고개만 서쪽으로 돌리면 언제든지 노을을 볼 수 있다. 그런데 외로울 때만 보던 그 노을을 어느 날 외로움이 사무쳐 하루에 마흔세 번이나 바라본다. 그렇게 외로웠냐는 질문에 아무런 대답이 없었던 어린왕자, 친구라곤 장미 한 송이밖에 없는 별에서 어린 왕자가 느낀 그 외로움, 고독…. 

외로움과 고독은 비슷한 것 같지만 다르다. 외로움이 환경이 주는 것이라면 고독은 내가 선택하는 것이다. 어찌 보면 출가 수행자나 작은 별에서 혼자 지내는 어린왕자나 외로움과 고독을 평생 친구처럼 안고 살아가야 하는 것은 비슷하다. 그 외로움과 고독의 잘 어울리는 벗이 바로 노을이다. 일몰이 외로움의 친구라면 노을은 고독의 보상이다. 무문관 수행시절, 그 철저한 고독 속에서 화두와 씨름할 때 저녁 무렵 하늘가에 번진 노을 한 자락을 보며 얼마나 위안을 얻었는지 모른다. 나는 노을을 참 좋아한다. 타고 다니는 자동차도 이름을 ‘노을’이라 붙였고 좋아하는 음악 시리즈도 ‘노을’ 몇 번으로 나가며 웬만한 의미 있는 것에는 노을이 빠지지 않는다.  

오래 전 이야기다. 어느 해 여름, 선방 결제 정진 중 좌복에서 무슨 망상이 들었는지 해제가 되자마자 자동차를 하나 빌려 만행 길에 나섰다. 아직 한낮에는 뜨거운 태양이 내리쬐는 8월, 나는 오래 전부터 미뤄왔던 숙제를 하나 해보기로 했다. 바로 ‘노을여행’이었다. 일전에 목포에서 파주까지 1번 국도를 종주해 본 나는 이번에는 동쪽 끝 부산에서 서쪽 끝 목포까지 이르는 2번 국도를 횡단해 보기로 했다. 계획은 간단했다. 해가 질 무렵에 출발해서 서쪽 하늘에 노을이 물드는 것을 보며 어둑해질 때까지만 달리는 것이었다. 그리고 숙소를 잡고 쉬다가 저녁 무렵 다시 출발하기로 했다. 

노을여행이라, 가슴이 설렜다. 마치 어린왕자가 노을이 사라지면 의자를 몇 걸음 더 옮겨 다시 노을을 보듯이, 하루치 노을을 보고나면 다음 날 다시 노을이 피는 시간에 출발하며 어린왕자가 된 듯 그 마음을 조금이나마 느껴보기로 한 것이다. 어떤 날은 처절하리만큼 붉은 노을이 온 하늘을 물들인 적도 있었고 어떤 날은 잠시 나타났다가 금방 사라지기도 했다. 이 멋진 여행에 배경음악이 빠지면 재미가 없지 않은가. 그 무렵 한창 즐겨 듣던 ‘티켓 투 더 트로픽스(Ticket to the tropics)’와 ‘스패니시 하트(Spanish Heart)’를 여행도반으로 삼았다. 정열적으로 연주하는 음악을 들으며 달리노라면 마치 노을 속으로 그대로 빨려 들어가는 듯했다.

목포까지는 거의 일주일이 걸렸다. 더 이상 앞으로 나갈 수 없는 바다에 이르러 캄캄해질 때까지 노을의 시작과 끝을 바라보았다. 숙제를 하나 마쳤다는 뿌듯함과, 알 수 없이 밀려드는 외로움을 온 가슴으로 느끼며 노을여행은 끝이 났다. 그리고 그날은 어린왕자 꿈을 꾸며 차 안에서 잠을 잤다. 나는 과연 무엇 때문에 매일 불타는 노을을 바라보며 길을 달렸는가? 삶이 고단했는가? 아니면 어린왕자 만큼이나 슬펐는가? 

‘풍류는 혼자 누리되 다만 꽃과 새의 동참은 허용한다. 거기에다 안개와 노을이 찾아와 공양을 한다면 그건 받을만하다.’ 장조(張潮)가 쓴 중국 청대 수필의 백미인 ‘유몽영’에 나오는 글이다. 안개와 노을의 공양이라. 이 얼마나 멋진 표현인가. 사실 안개와 노을은 매일 수행자들에게 공양을 올리고 있지만 나는 과연 그 공양을 받을만한 자격이 있는지 모르겠다. 다만 늘 노을을 마음에 두고 있는 것으로 부끄러움을 대신할 뿐이다. 

노을과 만행. 내 삶은 이 두 가지를 빼고 나면 별로 남는 게 없다. 그만큼 노을을 찾아 온 산하를 돌아다녀 이젠 어느 곳에 가면 어떤 노을이 좋은가도 대충 알고 있다. 노을도 계절에 따라 조금씩 그 느낌이 다르다. 봄 하늘에 물든 노을은 마치 새색시 볼에 물드는 홍조 같다. 그러나 뿌연 하늘과 온 산하를 불태우는 꽃빛으로 인해 부끄러움 잘 타는 봄 노을은 보기가 쉽지 않다. 여름하늘 노을은 뜨겁다. 낮 동안 해가 부지런히 대지를 데우고 난 뒤끝이라 노을마저도 덩달아 그래야 하는 줄 알고 따라 한다. 운이 좋으면 정말 장엄한 일몰과 노을을 볼 수 있는 때가 여름 저녁이다. 

가을 노을은 왠지 쓸쓸하다. 추수가 끝난 빈 들녘 위에 스러지듯이 피어오르는 노을은 우리네 삶을 관조하게 하는 마력을 뿜어낸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노을은 겨울 하늘에 피어난 노을이다. 내 영혼을 맑혀주는 여러 가지 인연들이 있지만 그 첫 번째가 바로 이것이다. 겨울 하늘은 무엇보다 티 없이 맑아서 좋다. 그 시리도록 푸른 하늘가로 번져 나오는 노을은 가만히 보고만 있어도 금방 눈물이 괼 정도다. 아마 내 평생 이루기는 힘들겠지만 어린 왕자처럼 외로움이 사무치는 날 노을이 피어오르는 시간에, 지구를 하루에 딱 한 바퀴 도는 비행기를 타고 서쪽으로 날아 겨울 하늘에 핀 노을을 하루 종일 보고 싶다. 

노을 같은 삶은 여운을 남기는 삶이다. 그 사람이 머물다 간 자리에 남는 찬란한 노을 같은 여운. 온 하늘을 덮다가 마침내 영혼까지 차지해버리는 사람. 인류 역사가 시작된 이후 노을만큼 사람들의 영혼을 울리게 하는 것은 없을 것이다. 사람들은 왜 그토록 노을을 찾으며 의미를 부여하는 걸까. 노을이 아름다운 것은 그 속에서 자신을 불태우고 있는 태양이 있기 때문이다. 마치 보살이 중생들을 위해 성불을 미루고 보살행을 하는 것처럼 말이다.

“행복은 저녁노을이다. 누구에게나 보이지만, 사람들은 고개를 돌려 다른 쪽을 바라보기에 그것을 놓친다.” 

마크 트웨인이 한 말이다. 매일 피고 지는 노을이지만 우리는 이 기적 같은 장관을 볼 마음의 여유를 잊고 산다. 그대, 무엇이 그리도 바쁜가? 오늘 저녁 퇴근길 차 안에서, 혹은 아파트 베란다에서 따뜻한 차 한 잔 들고 노을을 맞이해보라. 이 삶이 바로 기적이다.

동은 스님 삼척 천은사 주지 dosol33@hanmail.net

 

[1495호 / 2019년 7월 3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 이 기사를 응원해주세요 : 후원 ARS 060-707-1080, 한 통에 5000원

저작권자 © 불교언론 법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광고문의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하단영역

매체정보

  •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 19 르메이에르 종로타운 A동 1501호
  • 대표전화 : 02-725-7010
  • 팩스 : 02-725-7017
  • 법인명 : ㈜법보신문사
  • 제호 : 불교언론 법보신문
  • 등록번호 : 서울 다 07229
  • 등록일 : 2005-11-29
  • 발행일 : 2005-11-29
  • 발행인 : 이재형
  • 편집인 : 남수연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재형
불교언론 법보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