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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 삶의 그릇

기자명 임연숙

현재 당면한 삶의 모습·바람 표현

작가와 엄마라는 다른 무게감
서로 땋여져 하나의 모습으로
민화 전통에 현대적 색감 도입
구성 달리해 새로운 조형 추구

홍미림 作 ‘삶의 그릇’, 한지에 채색, 113×162cm, 2016년.
홍미림 作 ‘삶의 그릇’, 한지에 채색, 113×162cm, 2016년.

오래전 해외여행 중에 들른 미술관에서 아주 인상 깊게 본 작품이 있다. 제목이 ‘mother’인 작품이었다. 커다란 입체 작품 위에 엄마가 일상적으로 만나는 오브제들이 가득 붙어있었다. 아이들 장난감, 국자, 냄비, 그릇, 청소용구, 젖병, 엄마의 낡은 옷, 포대기 등…. 특히 아이들 장난감들이 엄청나게 붙어있었다. 가물가물한 기억이지만, 작품설명과 제목을 볼 필요도 없이 보는 순간 그냥 그 자체가 ‘엄마’였다. 여자, 여성이 아닌 엄마가 되는 일은 동서가 다 비슷한 모양이다. 

홍미림 작가의 여러 작품 중 눈에 들어온 이 그림을 보는 순간 오래전 보았던 그 작품이 떠올랐다. 비슷한 느낌의 동양 버전이랄까. 아이들의 창의력을 키우는 데 도움이 된다는 블록은 아이가 커도 버릴 수 없는 아이의 손길과 추억이 담긴 대표적인 장난감이다. 치워도 치워도 끝없이 쏟아져 내리는, 그래서 쫓아다니며 치워야 하는 품목이다. 작가는 아직 어린 아이를 키우는 중인가 보다. 하지만 그 시기가 한 때인 것처럼 지금 작가가 느끼는 자신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어 이런 식의 화면을 구성하는 것 또한 그리 길지 않은 짧게 지나가는 소중한 시간들일 것이다.

작품은 민화, 그 중에서도 책가도를 연상하게 한다. ‘민화(民畵)’의 의미가 민간에서 무명의 작가에 의해 그려진 민속화라는 개념보다 더 넓은 개념으로 채색기법으로 양식화하여 그린 그림까지 포함하는 광의의 의미로 볼 때, 책가도는 무명의 화가가 제작했다기보다 화원화가 수준의 실력 있는 화가들이 그린 그림이다. 조선시대 말 청나라풍의 그릇이나 화병 등을 포함하여 서책과 서책을 보관하는 상자 등을 그림으로 표현하여 소장가의 취미나 생활의 수준을 드러내거나, 각각의 물건에 염원을 담는 상징성의 의미를 담기도 하였다. 동양에서의 정물화 장르이면서도 독특한 면을 보여주는 그림이다. 

이 삶의 염원을 담는 것처럼 작가는 전통의 색감에 자신의 삶의 모습을 표현하고 있다. 작가라는 무게감과 엄마라는 무게감은 다른 성격의 것이지만 한편, 두 가닥의 끈은 서로 땋여져서 결국 하나의 모습을 낳는다. 홍미림 작가의 작업방식도 그러해 보인다. 민화라고 하는 전통적 그림의 방식을 현대화하면서 고즈넉한 옛 색이 아닌 현대적 색감을 도입하고 구성도 옛 방식이 아닌 새로운 조형을 추구하고 있다. 여기에 자신과 가장 가까운 물건들을 더하면서 진솔하게 작가 자신의 내면을 더 들여다보고 표현하려고 하는 모습이 느껴진다. 

사람의 됨됨이를 표현할 때 ‘그릇이 크다’ ‘그릇이 작다’고 말하곤 한다. 삶을 어떤 그릇에 담느냐는 것도 자신이 선택할 수 있다. 그렇더라도 무조건 크거나 화려한 것만이 좋은 것은 아닐 것이다. 홍미림 작가의 ‘삶의 그릇’ 시리즈는 현재 당면하고 있는 삶의 모습과 바람과 기원을 함께 표현하고 있다. 작가만의 개인적인 이야기라기보다는 보는 이의 모습이기도, 이야기이기도 하다. 스스로 자신의 모습과 미래에 대해 자문자답해 보게 하는 그림이다.  

임연숙 세종문화회관 예술교육 팀장 curator@sejongpac.or.kr

 

[1495호 / 2019년 7월 3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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