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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어있음의 여유

기자명 만당 스님

현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일상의 단면을 떠올려 본다. 모두들 너무 바쁘다. 어떤 사람들은 할 일이 많아 바쁘게 몸을 움직이며 살고, 어떤 사람들은 몸은 한가하나 마음이 바쁘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마음 가운데 욕망과 바람을 쌓아간다. 그리고 그 욕망을 충족하기 위해서 바쁘게 움직이고 추구해 나간다. 그러나 이 사회는 모두의 욕망을 충족할 만큼의 자원을 가지고 있지 않다. 자원은 유한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사회는 크고 작은 욕망과 바람이 충돌하고 끝없는 갈등과 대립이 반복적으로 일어나서 그칠 기약이 없다. 인류역사는 과거에도 그랬고, 현재도 그러하며, 미래에도 그러할 것이다. 그렇다고 비관적 입장에 빠져서 손 놓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욕망의 충돌을 해소하고 갈등과 대립을 극복하여 살만한 세상을 만들기 위해 지혜를 모아 노력해 나가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유한한 자원을 공평하게 분배할 수 있는 합리적 사회제도를 잘 갖추어야 한다. 

다음으로 중요한 것은 사람들의 끝없는 욕망을 비워내도록 이끌어야 한다. 욕망을 비우지 못하더라도 욕망을 줄여나가야 유한한 사회자원으로 분배의 만족을 이끌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사람들 마음속에 일어나는 욕망을 비워낼 수 있도록 이끄는 역할을 하는 것이  종교와 종교인들이다. 그것이 종교와 종교인들의 존재 이유라고 할 것이다. 그런데 현시대의 종교들은 발전 지향주의에 빠져서 각 종교단체와 구성원들이 더 바쁜 것이 현실이다. 그러면서 각 단체들의 욕망을 계속해서 키워나가고 분출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사람들의 욕망을 비워내서 이 사회의 갈등과 대립을 해소하여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드는데 노력해야 할 종교단체와 종교인들이 오히려 사람들에게 발전주의와 우월주의에서 비롯된 욕망에 빠져서 갈등과 대립하는 모습을 보여서는 안 된다. 이러한 종교인들을 보는 신도와 일반 시민들은 무엇을 보고 배우겠는가. 

이 시점에 부처님의 가르침을 떠올려 보게 된다. 부처님께서는 일생을 관통하여 우리들에게 비워내는 삶의 모습을 보여줬다. 그리고 45년간 ‘비어 있음’ 즉 공에 대해서 말씀하셨다. 왜 그러셨을까. 본래 실상이 그러하고, 그 비어 있음을 체득하여야 욕망을 비워서 각자는 해탈의 길에 들어갈 수 있고, 이 인류사회는 갈등과 대립이 해소되어 살만한 세상이 될 것이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지금 우리들의 모습은 어떠한가. 모두들 너무 바쁘다. 욕망을 비워 마음의 행복을 이루도록 이끌어야 할 종교단체들마저도 발전과 경쟁우월 콤플렉스에 빠져서 바쁘기 그지없다. 온통 거꾸로 뒤바뀌어서 종교가 갈등과 대립을 유발하고 있으니 더 큰 문제이다. 모든 종교인들은 자신의 모습들을 되돌아보고 크게 반성해야 한다. 그리고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와 종교를 위한 종교단체가 아닌, 사람들의 행복을 실현하고 사회의 갈등과 대립을 해소하는데 기여하는 종교의 사명과 역할을 수행하도록 해야 한다. 

우리 모두가 욕망을 비워내고, 그 빈 마음자리를 자비와 지혜로 채운다면, 이 사회는 아직도 살만한 세상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마음의 욕망을 비우기 위해 공을 말한다고 해서 소극적, 수동적, 회피적, 염세적 자세로 살아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공은 허무와 다르다. 공한 그 마음에서 모든 지혜가 나오고 무량한 대자비행이 펼쳐지는 것이다. 각자 자신을 비워내면, 일체와 하나로 부합하여 수용해 들이지 못할 것이 없기 때문에 차별 없는 지혜와 자비행이 나오고, 그래서 가장 적극적, 능동적, 주체적, 이타적 보살행이 펼쳐지는 것이다. 우리들 모두 발전주의라는 함정에서 벗어나, 비어있음의 여유를 찾고 본연의 역할에 충실해질 수 있기를 희망해 본다. 그러할 때 진정한 존재의 가치가 발현될 수 있을 것이다.

만당 스님 영광 불갑사 주지 manndang@hanmail.net

 

[1496호 / 2019년 7월 10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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