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 용탕이야기
44. 용탕이야기
  • 이제열
  • 승인 2019.07.08 16:57
  • 호수 149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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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용인데 왜 용탕 만들겠나”

무협지 인물 같은 스님들 방문
신통력 자랑하려다 되레 당해
말 한마디로 굴복시킨 건 대단

모선원 설립자 스님이 출가하기 전 약 4년 동안을 직접 시봉한 일이 있다.(그 후로도 6년간 모시면서 가르침을 받았고 상임법사로 재직했다) 당시 스님의 직함은 대한불교회관 원장이었고, 내 역할 중의 하나는 원장님을 친견하겠다고 찾아온 분들을 안내하는 일이었다.

눈이 펑펑 쏟아지는 어느 겨울날 사무처에서 연락이 왔다. 스님들이 찾아오셨으니 원장님께 모시고 갔으면 좋겠다는 것이었다. 서둘러 사무처로 내려가 보니 체구가 건장한 네 명의 스님들이 절 마당에 눈을 맞으면서 서성이고 있었다. 인상적인 것은 그 스님들의 형색이었다. 보통 스님들과는 달리 검은 장삼을 걸쳤고 기다란 수염을 내려뜨리고 있었다. 거기에다 한 스님은 긴 퉁소를 비껴들었고 다른 스님은 큰 주장자를 쥐었다. 또 다른 스님은 알이 굵직한 염주를 손에 들고 서있었다. 영락없는 무협영화에서나 나올 듯한 모습이었다.

나는 그 스님들에게 다가가 절에 찾아온 용건을 물었다. 그러나 한 스님이 “여기 원장님이 공부가 깊다고 해서 법거량을 하러 왔소”라고 답했다. 일단 나는 세 스님을 모시고 대기실로 안내했다. 그 스님들은 소파에 앉아 접견실 분위기를 살펴보았다. 잠시 후 원장님이 접견실로 내려왔고 나는 세 스님을 원장님께 안내하고 방문 목적을 간단히 설명 드렸다.

원장님은 “저처럼 못난 사람을 만나러 오셨다니 감사합니다”라며 먼저 인사를 건넸다. 그런데 한 스님이 원장님의 인사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이곳 불교회관 훈화가 참으로 좋습디다” 하더니 불교회관 십대훈화를 줄줄이 외웠다. 방금 전 대기실에 걸린 액자의 내용을 단번에 암기했던 것이다. 이는 원장님의 기상을 제압하기 위함이었고 자신들의 수행력이 출중하다는 것을 드러내려는 의도였다.

하지만 그들의 이런 행동은 원장님과의 몇 마디 대화에 와르르 무너졌다. 불교회관 십대훈화를 외우는 스님을 바라보면서 원장님은 “스님들께서는 혹 개구리탕을 만들어 보셨는지요?” 그러자 한 스님이 “아무렴 여부가 있겠습니까?” 했다. 원장님이 다시 “그럼 뱀탕도 만들어보셨겠구려?” 하자 “그야 당연하지요” 하고 대답했다. 원장님은 “그렇다면 용탕도 만들어서 먹어 보셨겠네요?”하고 묻자 “아! 용탕 안 먹고 돌아다니겠나?”고 자신 있게 대답했다. 하지만 세 스님의 이런 답변은 원장님의 한방으로 끝장이 나버렸다.

원장님이 갑자기 손바닥으로 탁자를 내려치면서 그 스님들에게 말했다. “그렇다면 당장 용탕을 만들어 여기 모든 사람들에게 먹여보시지!” 세 스님은 원장님의 갑작스런 태도와 기개 앞에 당황한 모습이 역력했다. 허를 찔린 사람들처럼 아무런 대꾸도 못한 채 원장님의 얼굴만 멍하니 쳐다봤다. 옆에서 지켜보는 사람들이 민망할 정도로 망신을 당했던 것이다. 그들의 퉁소가 꺾이고, 주장자가 부러지고, 염주알이 흩어지는 모습을 보였다.

나는 세 스님을 객실로 인도했고 몇 시간 후 차를 대접하기 위해 다시 세 스님을 찾았는데 그때까지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했는지 서로 대화조차 않은 채 눈을 감고 앉아만 있었다. 알고 보니 세 분은 승복을 입었지만 불도를 닦는 스님들이 아니었고 단군교에서 수행하는 이들이었다.

나는 원장님께 개별적으로 이렇게 물었다. “그렇다면 원장님께서는 용탕을 해드셨습니까?” 그 때 원장님은 내게 이렇게 답변했다. “내가 용인데 무슨 용탕을 만들겠나?” 당시 나는 원장님의 그 말을 대단하다고 여겼고 스승으로 모신 것에 대해 큰 자부심을 일으켰다.

불교의 초점은 번뇌의 극복이나 마음의 청정에 있는 것이지 어떤 부사의한 능력, 즉 일종의 신통술법에 있지 않다. 그 스님의 사상이 옳고 그른지를 떠나 말 한마디로 타종교 수행자들의 아만을 굴복시킨 점은 대단하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이제열 법림선원 지도법사 yoomalee@hanmail.net

 

[1496호 / 2019년 7월 10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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