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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북미회담과 화쟁

기자명 법장 스님

판문점 세 정상에게서 보살심을 느끼다

화쟁과 회통은 서로간에 생긴 
오해와 다툼 풀고 화해하는 것 
남북미 세 정상 만남도 이같아
차이 인정하는 계기에 박수를

한국전쟁 이후 처음으로 미국의 대통령이 비무장지대(DMZ)에 있는 판문점에서 북한의 지도자와 만나서 함께 남북경계선을 넘었다. 누구나가 꿈꾸던 일이 눈앞에 펼쳐진 것이다. 만남 전날까지만 해도 반신반의하던 사람들이 많았으나 당일 날 오전 우리 대통령의 발표를 통해 실제로 그러한 일이 있을 것이라는 소식에 우리를 비롯한 전 세계가 이목을 집중하고 설렘과 기대 속에서 역사적 광경을 함께 공유하였다. 두 나라 지도자의 만남은 처음에는 벅찬 감동으로 다가왔으나 이내 덤덤한 기분으로 바뀌었다. 무언가 화려하고 갖추어진 만남이 있을 거라는 세간의 기대와 달리 두 정상의 만남은 우리가 오랜만에 반가운 사람을 만나는 듯한 기분의 그것이었다. 그리고 이어진 대화와 둘의 행동은 참으로 친근했고 가슴 따뜻한 기분을 전해줬다.

어쩌면 이렇게 화려하지 않고 당연한 듯이 이루어지는 만남이 그들이 그리고, 우리가 원하던 모습이었을지도 모른다. 다만 우리는 그 동안의 긴 시간동안 생겨난 많은 관념들 때문에 오히려 더욱 갖추어지고 형식에 맞추어 대화와 만남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물론 국가의 대표가 만나는 자리에는 충분한 격식이 필요한 것이지만, 그 동안의 오해와 다툼을 해소하고 서로에게 손을 내밀어 다가서기 위해서는 오히려 이러한 다소 준비되지 않은 돌발적인 만남이 필요했던 것 같다. 또한 이러한 자리를 대담하게 준비하고 북한과 미국의 정상을 판문점에까지 잘 인도해준 우리 문재인 대통령도 그 자리의 공로자다. 한 나라의 대표로서 다소 위험할 수도 있는 제안에 통일을 염원하는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자신의 지위를 내려놓는 듯한 희생정신으로 이 역사의 한 장면을 완성시킨 것이다.

불교에서는 ‘화쟁(和諍)’, ‘회통(會通)’이라는 표현이 있다. 이는 서로 간에 생긴 오해와 다툼을 풀고 화해로 이끄는 것을 말한다. 중요한 것은 오해와 다툼이라는 건 같은 목표를 두고 서로의 방법과 이해에서 생긴 견해의 차이를 말한다. 서로가 결국 같은 목표와 이상을 바라보며 어리석은 행동을 하고 있다는 것을 인지시켜주고 다시금 화합하여 그 목표로 나아가게 하는 것이 화쟁과 회통의 중요한 의미이다. 그리고 ‘범망경’의 제9진심불수회계(瞋心不受悔戒)에서는 보살은 자신과 남이 화나게 해서는 안 되고, 자신의 화로 인해 남이 베푸는 화해와 참회를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중죄가 된다고 말한다. 즉, 불교에서 말하는 청정한 행동이란 남을 배려하고 그 사람의 말과 행동을 깊이 받아들여주어 서로가 안락함을 갖고 함께 나아가는 것을 말한다. 불교의 깨달음이란 나의 이익 됨만을 추구해서는 얻어질 수 없고, 모두가 인연과 연기법 속에서 공생과 상생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실천할 때 참다운 깨달음에 이르는 것이다.

이번 남북미 세 정상의 판문점 만남을 보는 내내 이러한 불교적 가치관과 세 정상의 서로에 대한 보살심과 보살행을 느꼈다. 종교적 가치는 반드시 그 종교인만이 갖는 것이 아니다. 이러한 그들의 노력과 모습에서 우리 모두는 안락과 기대를 얻게 되었다. 그것이야말로 참다운 불교적 행동이라고 아니할 수 없으며, 모든 종교에서 추구하는 모습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전쟁 이후 오랜 시간동안 쌓인 사상적, 가치관적 오해가 상당히 깊다. 그러나 우리 모두가 추구하는 것은 단 한 가지이다. 같은 목표를 두고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지 않고 각자의 이익만을 생각하였기에 긴 시간을 떨어져 지내고 멀리 돌아온 것이다. 이번 만남이 분명 앞으로를 기대하게 하는 좋은 계기가 될 것이다. 그러나 다시금 서로가 각자의 이익만을 돌아보며 배려와 화해를 멀리한다면 또다시 지난 세월과 같은 고통의 윤회에 빠지게 될 것이다. 두 정상이 판문점에서 만나 함께 손을 잡고 군사분계선을 넘었다. 58분 간의 만남을 이루는 데까지 수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했다. 우리는 내일을 향해 진일보(進一歩)하고 있는 것이다. 서로에 말에 조금 더 귀기울여주며 천천히 한 걸음씩 함께 나아가길 간절히 발원한다.

법장 스님 해인사승가대학 교수사 buddhastory@naver.com

 

[1496호 / 2019년 7월 10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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