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 무한이동 보살-하
26. 무한이동 보살-하
  • 강병균 교수
  • 승인 2019.07.08 17:12
  • 호수 149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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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체가 점으로 이뤄졌다는 건 상상의 산물일 수도

면적·부피 없으면 이동 못해
세상 이면은 견고하지 않아
엄청난 역설 숨어있을 수도

공을 평행이동과 회전이동을 이용해서 같은 크기의 공 두 개를 만들 수 있다고 했다. 소위 바나흐-타르스키 역설이다. 이게 역설인 이유는 이렇다. 

물체를 이곳에서 저곳으로 옮기거나 회전을 시켜도 부피는 변하지 않는다. 즉 입체를 모양을 변형시키지 않고 움직이면, 입체의 부피는 유지된다. 평행이동과 회전이동을 한다고 해서 부피가 변하지 않는다. 물체를 몇 조각으로 나누고 이리저리 움직이고 돌려서 다시 조합을 해도 부피는 변하지 않는다. 자동차를 분해했다가 조립했더니 자동차가 한 대 더 생기는 일은 절대로 벌어지지 않는다. 금덩어리를 몇 조각 내 이리저리 옮기고 회전시켜 다시 붙인다고 해서 같은 크기의 금덩어리 두 개가 생기는 법은 없다.

하지만 수학적으로는 가능하다. 그래서 역설이다. 이게 가능하다는 걸 증명하려면 물체가 무한한 개수의 점(點)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가정해야 한다. 하지만 실제 세계의 물체가 수없이 많은 점으로 이루어졌다는 건 사실이 아닐지도 모른다. 점이란 것은 상상의 산물에 지나지 않을 수 있다. 점은 면적과 부피가 없다고 하는데, 당신은 그런 걸 본 적이 있는가? 면적과 부피가 없는 건 볼 수가 없지 않은가? 물론 원자나 소립자도 우리 눈으로 볼 수 없다. 면적과 부피가 없는 걸 무슨 수로 옮기나? 면적과 부피가 없는 사람을 사랑할 수 있나?

우리가 견고하다고 생각하는 세상의 이면(裏面)은 결코 견고하지 않을 수 있다. 신이 수학으로 우주를 창조했거나, 피타고라스의 주장처럼 우주가 수학으로 이루어진 게 사실이라면, 그 뒤에는 어마어마한 역설이 숨어있을 수 있다. 

우리의 지력이 아직 그걸 알아차릴 수준에 도달하지 못한 것뿐일 수 있다. 아름다운 타이타닉호 밑바닥에는 빌딩만한 증기엔진 옆에 새까만 석탄이 산처럼 쌓여있다. 푸른 하늘이 흘러가는 그림처럼 아름다운 유리 빌딩의 지하에는 거대한 주차장과 전기·보일러 시설이 있다. 바람에 흰 돛이 부풀어 오를 대로 부풀어 오른 아름다운 범선의 밑바닥에는 음식물이 썩어가는 창고가 있고 상용식량 비스킷에는 구더기가 들끓고 생쥐가 돌아다닌다. 미인의 직장(直腸)에도 똥이 있다.

부처님은 난다에게 이런 일만 일러주어 도 되지 않았을까? 바나흐-타르스키 역설에는 그 증명에 선택공리(Axiom of Choice)가 이용되는데, 이것은 문자 그대로 공리이다. 이보다 조금 약한 공리를 채택한다 해도 이 역설은 여전히 증명 가능하다. 선택공리란 각각의 도서관에서 책을 한 권씩 뽑아 새로 도서관을 하나 만들 수 있다는 말이다. 당연한 이야기가 아니냐고 할지 모르지만, 도서관이 유한개가 아니라 무한개가 있을 때 문제가 된다. 이때도 여전히 가능하다고 하는 것이 선택공리이다. 

이 공리는 매우 자연스러워 보이지만, 이걸 인정하면 바나흐-타르스키 역설이 생긴다. 즉, 평행이동과 회전이동만 이용해서 공을 같은 크기의 공 두 개로 만들 수 있다. 이로부터 선택공리가 생각보다 자연스러운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세계는 결코 만만한 대상이 아니다. 종종 우리의 인식의 한계를 극한까지 자극한다. 이로부터 평행우주가 등장한다. 서로 다른 공리체계를 택한 수많은 우주가 동시에 같은 공간에 존재하는 평행우주! 즉, 중력 상수, 플랑크 상수, 아보가드로 수 등 물리학적 상수들이 다른 물리학적인 우주가 아니라, 수학적인 공리가 다른 우주이다. 즉 서로 다른 세계에서는 물리학적 상수들은 같으나 수학적 공리만 다를 수 있다. 소위 평행공리우주(平行公理宇宙 axiomatically parallel universes)이다. 다중우주론 중 물리학적 우주가 아니라 수학적 우주이다. 그리고 그걸 바탕으로 물리학적인 우주가 건설된다. 선택공리를 택하지 않는 ZF(체르멜로·프랑켈) 공리만 있는 세계에서는 바나흐-타르스키 역설이 성립하지 않는다. 

만약 철저한 인과론의 세계라면 이게 옳을지 모른다. 식물과 하등동물의 세계에는 죄가 없다. 있어도 거의 없다. 하지만 동시에 재미도 없다. 의식이 생기고 지능이 높아질수록 죄도 생기고 재미도 생긴다. 그 최고봉이 인간이다. 죄가 없으려면 의식이 없는 세계로 돌아가면 된다. 예를 들어 무위법(無爲法)의 세계인 코마(coma 혼수상태)에 빠지면 된다. 선택공리가 없는 세상도 재미없는 세상이다. 최소한 수학자들에게는 그렇다.

강병균 포항공대 수학과 교수 bgkang@postech.ac.kr

[1496호 / 2019년 7월 10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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