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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노을만 붉게 타는데 ② - 진광 스님

기자명 진광 스님

“붉은노을 진 자리엔 어김없이 별빛 돋아나니”

저녁노을 풍경 아름답기로는 
격포해수욕장과 채석강 유명

적석사 낙조대에서 본 석양은 
서방정토 그려질 정도로 감탄

그림=허재경
그림=허재경

벗이 있어 시를 보내면 그에 답시를 보내던 시절은 실로 행복했을 것이니 어느 날 조지훈이 벗인 박목월에게 ‘완화삼(玩花衫)’이란 시를 보냈다. 

“차운산 바위 위에 하늘은 멀어 / 산새가 구슬피 울음 운다 // 구름 흘러가는/ 물길은 칠백리 // 나그네 긴 소매 꽃잎에 젖어 / 술 익는 강마을의 저녁노을이여 // 이 밤 자면 저 마을에 / 꽃은 지리라 // 다정하고 한 많음도 병인 양하여 / 달빛아래 고요히 흔들리며 가노니….” 

박목월은 이에 흥이 일어 ‘나그네’라는 시를 지어 보내니 “강나루 건너서 / 밀밭 길을 // 구름에 달 가듯이 / 가는 나그네 // 길은 외줄기 / 남도 삼백리 // 술 익은 마을마다 / 타는 저녁 놀 // 구름에 달 가듯이 / 가는 나그네”라는 시가 바로 그것이다. 

이 얼마나 아름답고 행복한 순간의 꽃이 아니겠는가? 그런 벗이 있다면 더 바랄게 없겠으니 그대 그런 친구를 가졌는가 묻고 싶어진다. 

반면 구한말 혜성처럼 나타나 한국 선불교를 중흥시킨 경허 선사가 제자 만공 스님과 함께 만행할 때였다. 어느 날 단청불사를 한다며 시주를 받아서는 홀랑 곡차를 사서 마셔버렸다. 걱정이 된 만공 스님께서 “큰스님! 어찌 단청불사를 한다면서 시주를 받아 곡차를 사 드십니까?”라고 말씀을 드린다. 그러자 경허 선사 하시는 말씀이 “이놈아! 내 얼굴에 이미 단청불사를 해 마쳤느니라!”고 하셨다는 일화다. 해는 지고 저녁노을이 붉게 물들어 갈 즈음 얼굴가득 또 다른 단청으로 곱게 물들어가는, 살아있는 부처 ‘경허’의 모습이 눈에 선하기만 하다.

젊은 시절 전국을 떠돌 적에 황동규 시인의 ‘몰운대행(沒雲臺行)’이란 시에 매료되어 영월 김삿갓 묘를 참배하고는 몰운대를 찾았던 적이 있었다. 시인은 “몰운대는 꽃가루 하나가 강물 위에 떨어지는 소리가 엿보이는 그런 고요한 절벽이었습니다. 그 끝에서 저녁이 깊어가는 것도 잊고 앉아 있었습니다. / 새가 하나 날다가 고개 돌려 수상타는 듯이 나를 쳐다보았습니다. 모기들이 이따금씩 쿡쿡 침을 놓았습니다. / (날것이니 침을 놓치!) / 온 몸이 젖어 앉아 있었습니다. / 도무지 혼자 있는 것 같지 않았습니다.”라고 노래하였다. 나는 몰운대의 저녁노을 그 황홀경에 취했다. 까마득한 절벽 위에 홀로 선채 푹신한 흰 구름과 숲의 바다에 뛰어내리고 싶을 정도였다.

저녁노을이 아름답기로는 전북 부안의 변산반도에 자리한 격포해수욕장과 채석강이 유명하다. 대학시절 부안에 들러 조선의 명기인 매창(梅窓)의 묘까지는 아니더라도 서림공원의 매창 시비를 참배했다. 그리고 그의 시조인 “이화우(梨花雨) 흩날릴 제 울며 잡고 이별한 님 / 추풍낙엽에 저도 날 생각하는가 / 천 리에 외로운 꿈만 오락가락 하노매”라고 읊조리며 술한잔 올려 주었다. 무엇보다 그의 사후 58년 후인 1668년, 그의 시문을 부안 아전들이 모아 목판에 새겨 ‘매창집’을 개암사에서 간행하였다고 하니 더욱 고맙고 감사한 일이다.

그리고는 서둘러 변산반도의 격포 해수욕장에 해지기 전 도착해 채석강에 자리를 잡았다. 서해의 석양과 저녁노을을 기다릴 참이다. 서서히 내 얼굴과 함께 붉게 지는 석양과 노을빛이여, 하늘과 바다와 내 얼굴빛이 온통 불그스름 물들어가는 이 순간의 감동과 희열을 어찌 언설로 표현할 수가 있단 말인가? 그저 합장한 채 감탄하며 침묵할 따름이다.

서울로 올라와 조계종 교육원의 교육부장 소임을 살면서 북촌 한옥마을의 계동 숙소에서 7년여를 살았다. 숙소 베란다에서 바라다 보이는 한옥 기와의 아름다움이 단연 압권이다. 무엇보다도 경복궁과 인왕산 너머로 지는 저녁노을의 황홀한 모습과 감동을 잊을 수가 없다. 서울 한복판에서 이런 호사와 감동을 함께할 수가 있는 곳이 도대체 몇 곳이나 되겠는가? 그 하나의 풍경만으로도 능히 값을 매길 수가 없는 무가보(無價寶)를 간직한 곳이리라. 석양빛에 물들어가는 도시를 바라보며 왕유(王維)의 ‘녹채(鹿砦)’라는 시에 “빈산이라 사람 보이지 않고 사람의 말소리만 들려오네. 저녁볕이 숲속 깊이 들어와 다시 푸른 이끼를 비추네(空山不見人 但聞人語響 返景入深林 復照入靑苔)”라는 감흥을 느끼는 것이다.

강화도는 대몽항쟁의 전초기지이자 고려팔만대장경이 만들어진 성지이다. 관음성지인 보문사나 전등사도 좋지만 나는 적석사의 낙조대(落照臺)를 사랑한다. 조선의 마지막 양명학자인 이건창의 묘에 참배하고는 그의 생가터를 돌아본다. 그의 문학비에는 ‘숭양가는 길에’라는 한시가 새겨져 있는데 “자세히 헤아려보니 일생동안 벼슬살이에, 마음에 맞는 것은 적고 번거로운 일이 많았어라(細數一生遊宦事 會心惼小役形多)”라는 대목이 가슴을 후려친다.

산의 정상부에 자리한 적석사(積石寺)에 올라 감로수로 목을 축이고는 몇백년은 족히 됨직한 고목나무 아래 앉아 시원한 바람을 맞는다. 주지인 제민 스님을 만나 차담을 나누다가 해질 무렵에 일어나 왼쪽 산길을 조금 오르니 석불이 자리한 낙조대가 나온다. 이곳에서 바라보는 서해와 보석 같은 섬들의 행렬위로 서서히 석양이 지고 이내 붉은 노을이 시와 노래처럼 장엄하게 하늘과 서해와 내 가슴을 붉게 물들여간다. 

“아! 아미타불 서방정토가 바로 이런 모습은 아닐까!”

감탄사가 절로 나올 정도로 황홀한  충격과 전율이 느껴진다. 문득 이문세의 목소리나 혹은 빅뱅의 ‘붉은 노을’을 다시 들어본다. “난 너를 사랑해 이 세상은 너 뿐이야. 소리쳐 부르지만 저 대답 없는 노을만 붉게 타는데….” 

이 가사처럼 마지막 정념으로 붉게 타오르는 누군가를 떠 올려 볼 일이다. 그조차 없다면 인생을 헛되이 산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든다.

오늘은 내가 붉은 노을로 불타오르며 온 세상을 붉게 물들이고 싶어진다. 한낮의 뜨거운 태양이 묘지를 비추며 타들어가고 마지막 정념의 몸부림으로 석양과 노을이 진 자리에 별이 하나 둘씩 돋아나 밤하늘을 밝혀준다. 빈센트 반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에’ 그림을 바라보며 돈 맥클라인의 명곡 ‘빈센트(Vincent)’라는 노래를 흥얼거려본다. 그로인해 온 세상을 더 붉게 물들이는 핏빛 석양과 노을이 동백 꽃잎처럼 내 멍든 가슴에 하염없이 내려앉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한 번 더 그 이름답고 황홀한 석양과 노을을 보기 위해서라도 나는 살아야겠다. 그리하여 그 풍광과 깨달음을 증언하여야 한다.

진광 스님 조계종 교육부장 vivachejk@hanmail.net

 

[1496호 / 2019년 7월 10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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