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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금강경에서 읽는 보살의 발원

기자명 고명석

“온갖 생명들을 모두 완전한 열반에 들게하리라”

최상의 깨달은 마음 묻는 수보리
부처님 “어떤 상 내지 않는 구제”
타자를 향한 대비 원력이 최우선
용수보살 강조한 서원 역시 자비

용수보살은 친하게 지내던 왕에게 사는 동안 착한 벗에 의지하고, 바른 서원을 세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 서원이란 나와 타자에 대한 자비심이다. 사진은 용수보살이 수학했던 나란다대학 유적.
용수보살은 친하게 지내던 왕에게 사는 동안 착한 벗에 의지하고, 바른 서원을 세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 서원이란 나와 타자에 대한 자비심이다. 사진은 용수보살이 수학했던 나란다대학 유적.

‘금강경’은 삶과 역사 속에서 보살의 발원과 마음 다스리는 법을 안내하고 있는 대승불교의 대표적 경전이다. 게다가 대승의 그 걸림 없는 자유를 드러내는 반야의 정신은 제2의 붓다라 일컫는 용수보살의 ‘중론’과 잘 맞닿아 있으며, 이는 서양에서는 ‘그리스인 조르바’를 저술한 니코스 카잔차스키 삶과도 연계된다.

먼저, ‘금강경’에서 말하는 대승보살의 발원을 보자. 수보리가 부처님께 최상의 깨달음의 마음을 내려면 어떻게 마음을 머물며, 어떻게 그 마음을 다스려야 하는지를 묻자, 부처님은 그 길을 두 가지로 말씀하신다. 하나는 세상의 모든 생명을 완전한 열반에 들게 해 제도하리라는 원을 내야 한다는 점이요. 다른 하나는 그렇게 모든 생명을 제도하려는 보살은 어떠한 상(相), 즉 어떤 고정된 모습에 머물지 말라는 점이다. 이에 따라 ‘금강경’의 핵심 내용은 타자를 향한 보시와 보시하는 사람의 마음 자세, 그 머무름이나 차별을 떠난 보시의 태도를 강조하고 있다. 발원을 강조하는 그 ‘금강경’ 말씀을 직접 들어보자.

“알에서 태어났건, 태에서 태어났건, 습기에서 태어났건, 변화하여 태어났건, 형상이 있건 없건, 생각이 있는 거나 없는 거나 온갖 생명들을 내가 모두 완전한 열반에 들게 하리라.”      

이 세상의 모든 생명을 제도하리라는 서원은 타자에 대한 자비심이요 타자에 대한 끝없는 환대다. 이러한 대비 원력을 내는 게 우선이다. 그 다음이 마음 다스림이다. 그렇다면 타자에 대한 대비심에 닿아있지 않는 마음 다스림이나 깨달음은 완전치 못하다거나 뭔가 부족하다는 얘기다. 유마거사도 뭇 생명이 아프니 내가 아프다고 했으며 그 아픔의 치유가 분별을 떠남이라 하지 않았던가. 

자비심, 타자에 대한 보시나 환대의 과정에서 마음 다스림, 나를 온통 열어가는 삶, 그 자체가 온전한 깨달음으로 이어지고 연결되며, 꿰매지고 완성돼 나가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것은 자신을 철저히 비워내어 색깔, 소리, 냄새, 맛 등에 집착하지 않고 걸림 없는 마음을 내는 삶이다. 

사실, 여기에는 나를 지탱해 온 모든 생명에 대한 책임성, 모든 타자, 친구에 대한 감사, 그들의 부름에 대한 응답, 그들의 고통에 대한 따뜻한 시선이 자리 잡고 있다. 이러한 응대는 무한한 책임성으로 이어진다. 데리다가 말하듯 도저히 용서할 수 없는 자에 대한 용서, 사랑할 수 없는 자에 대한 사랑이다. 계산하지 않고 환대하며 선물하는 것이다. 그러기에 그러한 자비의 언어에는 자신에 대한 철저한 무, 궁핍, 박탈, 가난이 요구된다. 사실 내가 진정 자유를 얻으려면 타자의 요구와 그들의 자유까지 받아들이는 나 자신의 자유, 책임, 개방성이 요구된다. 그래서 하이데거는 무엇에로의 자유 또한 강조한다. 나 자신을 위한 자유에 타자를 위한 자유가 들어설 때, 그들의 목소리를 듣는, 응답하는 나의 자유, 발원이 울려올 때 진정 걸림 없는 자유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기에 더욱 그렇다. 

이 지점에서 ‘금강경’을 비롯한 반야경 계통의 경전이나, 그 반야의 정신을 체계적으로 정립한 용수보살의 세 가지 해탈을 알아보자. 그 세 가지 해탈은 공해탈(空解脫)·무상해탈(無相解脫)·무원해탈(無願解脫)이다. 

공해탈이란 모든 것의 고정적 본질이나 실체 없음에 대한 통찰을 통한 결박에서 벗어남이다. 나 자신은 물론 모든 타자의 고정된 실체는 없다. 그래서 언제나 빈자리를 드러내며 미끄러져 나간다. 그 빈자리의 공허를 메우기 위해서 서로를 부르고 요청한다. 그 응대에 서슴없이 들어서려면 나와 너를 고정된 틀로 묵어놓는 결박의 허상에서 벗어나야 하는 것이다. 

무상해탈은 일체의 고정된 특징이나 차별을 벗어남이다. 모든 존재는 특정한 모습으로 규정되어 있지 않다. 언제나 변화 속에 있기에 거지는 영원한 거지가 아니요, 사랑하는 아름다운 여인은 언제나 아름다운 모습으로 남아 있지 않다. 그 여인은 보잘 것 없는 모습으로도 변화할 수 있다. 죽어가는 독거노인의 얼굴에서 나를 본다면 어떨까? 그렇게 차별을 떠난다면 그는 진정한 해탈로 벗어난 사람이리라.  

무원해탈이란 어떤 의도적 작위성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나와 타자가 함께 어우러지는데, 내가 너에게 응답하는데 의식적이고 거추장스러운 노력은 필요 없다. 무욕의 자유다. 내가 적이나 친구의 요구, 타자의 부름에 응답하는데, 그의 짐을 대신 지는 그 행위 자체가 자연스럽고 자재하다. 내가 해야 할 것을 하는 것이요. 내가 있던 그곳으로 가는 것이다. 그래서 타자의 고통, 그들의 일그러진 얼굴을 바라보는 나의 시선이 어떤 역겨움도 없이 자연스러운 유희라면, 그것이 기쁨이라면 그는 전혀 두렵지 않고 그 속에서 삶을 즐긴다. 아프면서도 아프지 않다. 전혀 피로함을 느끼지 못한다. 그러나 이러한 자기 비움을 통한 유희는 거저 얻어지지 않는다. 어떠한 환상에도 흔들리지 않는 철저한 깨어 있음이 요망된다. 그래서 자기 삶 속에서 성성이 깨어 있게 하는 수행 또한 필요한 것이다. 

내가 무아와 공, 자기 부정에 철저하다면, 바로 그것은 최고 깨달음의 구현이요 다함없는 자비의 실천이다. 진정한 걸림 없는 자유란 거기에 있다. 

그리스인 조르바는 애써 공들인 모든 것이 한 순간에 무너져 내려도 덩실덩실 춤을 춘다. 일명 조르바 댄싱이다. 그는 사람을 차별하지 않는다. 모든 사람을 불쌍히 여긴다. 그러면서 자유롭다. 자신을 철저히 비운 사람에게, 집착을 떠난 사람에게 모든 게 무너져 내린들 어떠랴? ‘숫타니파타’의 구절처럼 아무리 비가 퍼부은들 어떠랴? 그리스의 크레타 섬에서는 ‘그리스인 조르바’의 작가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묘비명이 서 있다. 이는 그의 삶을 잘 비추어준다.

“나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 
나는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나는 자유다.”

보살의 서원은 무원의 원이다. 의식적 노력을 떠나는 것이다. 유희다. 타인에 대한 부채를 갚는 유희, 즐거움이다. 그것은 조작적이지 않다. 자연스러움이다. 계산적이지 않은 실천이다. 그래서 억지로 한다는 피로감이 없다.  

용타 스님은 먼저 발원하라고 한다. 세상 모든 생명을 구하겠노라고 하루에 10번씩 진정성 있게 소리 내어 외쳐보라 한다. 그러면 마음속에서 부처님 같은 자비심이 가득 차오르는 것을 느낀다고 했다. 눈물이 펑펑 쏟아지고 삶이 달라진다고 했다. 바로 여기에서 길은 시작된다. 그 대자비의 마음에 걸림 없는 자유가 꿈틀대면, 자유로운 나이면서 모든 생명들을 아픔에서 구제하는 보살의 길을 가는 것이다. 그는 날마다 새롭다.

용수보살 또한 친하게 지내던 왕에게 사는 동안 착한 벗에 의지하고, 바른 서원을 세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 서원이란 나와 타자에 대한 자비심일 것이다.

고명석 불교사회연구소 연구원 kmss60@naver.com

 

[1496호 / 2019년 7월 10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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