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송암복호(松岩伏虎)’
11. ‘송암복호(松岩伏虎)’
  • 손태호
  • 승인 2019.07.09 13:48
  • 호수 149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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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선이 명나라 그림을 조선식으로 탄생시킨 걸작

명 화가 고병의 복호도 범본으로
정선이 조선 산수·승려로 재탄생
민가에서 호랑이는 두려움 대상
잡귀를 물리치는 영물로 여겨져
불가에선 용맹정진·가르침 상징
정선 作 ‘송암복호(松岩伏虎)’, 51.0×31.5cm, 종이에 담채, 간송미술관.
정선 作 ‘송암복호(松岩伏虎)’, 51.0×31.5cm, 종이에 담채, 간송미술관.

경상북도 봉화에는 백두대간 수목원이 있습니다. 이곳은 2018년 5월 산림생물자원을 보존하고 백두대간의 보호와 관리를 위해 조성되었는데 이곳에서 가장 유명한 곳은 ‘호랑이 숲’입니다. 축구장 7개의 면적으로 안전하게 조성된 ‘호랑이 숲’은 호랑이가 잘 살 수 있는 환경을 갖추고 국립포천수목원과 서울대공원에서 옮겨온 호랑이 3마리가 살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올해 그동안 호랑이 숲에 추가로 호랑이를 2마리 더 방사하여 총 5마리의 호랑이가 살게 되었습니다. 

제가 처음으로 호랑이 숲을 알게 된 것은 2마리가 추가되었다는 뉴스를 통해서였습니다. 아니 호랑이라니? 설마 호랑이를 그냥 야생에 방사한 것은 아니겠지? 깜짝 놀라 기사를 자세히 읽어보니 서식환경을 잘 갖추어 가까이에서 호랑이를 관람할 수 있게 만든 곳입니다. 무서운 호랑이가 우리 백두대간에서 볼 수 있다는 소식에 호랑이 그림이 한 점 생각났습니다. 

나무 둥치가 굵으면서도 힘차게 솟아오른 소나무 아래 노승으로 보이는 인물이 바위 위에 앉아 있습니다. 그 옆으로는 호랑이 한 마리가 마치 반려묘인양 고개를 아래로 숙이고 엎드려 있고 노승은 호랑이를 지그시 바라보면서 손으로 쓰다듬고 있습니다. 그 옆으로는 개울물이 흐르고 그 너머로 원경의 나무들이 줄지어 있고 연지빛 소나무는 이 모든 것을 감싸주듯 가지를 펼치고 있습니다. 우측 빈 공간에 ‘송암복호(松岩伏虎)’라 적고 겸재라 쓰고 방형의 낙관을 찍었습니다. 

소나무를 물고기 비닐처럼 표현한 송린(松鱗)과 굵고 용솟음치는 듯 휘어지는 모습, 연지 빛으로 훈염한 잎의 표현 등은 정선이 소나무 표현에서 즐겨 사용하던 기법들입니다. 개울과 작게 표현한 원경의 나무는 이곳이 심산유곡의 깊은 산속임을 알려주는데 노승으로 보이는 인물은 전형적인 조선의 승려의 모습입니다. 그러나 의복의 표현이 자연스럽지 못한데 그 이유는 가사와 장삼 등 승려 복식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탓입니다. 깊은 산속에서 호랑이를 옆에 두고 있는 인물화로는 우리가 흔히 볼 수 있는 ‘산신도’의 도상과 비슷해 보이나 산신도에서는 인물이 노인이나 도사의 모습이지만 위 그림에서는 승려의 복색이라 산신은 아닙니다. 

이 그림은 바로 ‘18나한도’ 중 ‘제13 인게다존자 복호도’로 조선후기 화가들에게 남종화를 유행시켰던 명나라 오파 계열의 화가 고병(顧炳)이 편집한 ‘역대고씨명인화보(顧氏歷代名人畵譜)’에 수록된 복호도를 범본으로 정선이 그린 것입니다. 화보에서는 이 그림을 당나라 때 유행한 나한도를 방작한 그림이라 소개했는데 호랑이의 자세, 바위 위에 앉은 나한의 반가자세, 호랑이 머리를 쓰다듬고 있는 모습 등이 일치합니다. 

중국에서는 18나한도가 당나라부터 명대까지 계속 이어지면서 그려졌고 우리나라에서도 고려시대에 나한도가 크게 유행하여 많이 그려졌지만 조선시대에는 전기에 이상좌가 그린 나한도가 전해질뿐 거의 그려지지 않다가 조선후기에 고씨화보가 전해지면서 정선이 조선의 산수를 배경으로 조선 승려의 모습으로 다시 재탄생 시킨 것입니다. 그렇다면 인게다존자는 호랑이를 왜 쓰다듬고 있었을까요? 

중국 북송시기 학예를 주도한 소식(동파거사, 1036~1101)은 ‘18나한도’의 찬을 지으면서 제13 인게다존자 복호도에 다음과 같이 적고 있습니다. 

“한 생각의 차이로 이렇게 맹수로 떨어졌으니, 도사께서 슬퍼하시고 너를 위해 찡그려 탄식하시나, 너의 맹렬함으로써 본성을 되찾기는 어렵지 않으리라” 

호랑이는 고양이과에 속하는 동물로 나무위에 오를 줄 알고 물을 무서워하지 않기에 술과 계곡이 많은 우리나라 산에 적합한 동물로 우리나라는 예로부터 ‘범의 나라’라 불릴 만큼 호랑이가 많이 서식하였습니다. 그러다보니 산길에서 나그네가 호랑이에 당하거나 산에서 먹이가 궁해지면 민가로 내려와 가축과 인명이 희생되기도 하였습니다. 

이렇게 호랑이에게 당한 피해를 ‘호환(虎患)’이라 했는데 ‘조선왕조실록’에 호환에 대한 기록이 매우 많아 당시 큰 피해가 발생하였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삼국사기’에도 신라 헌강왕 때 궁궐까지 호랑이가 난입해 민가에 많은 피해를 입혔다는 기록도 있어 예로부터 ‘호환’은 가장 무서운 위험이었습니다. 

하지만 ‘호환’에 대한 두려움은 오히려 호랑이에게 잡귀를 물리치는 영물이라는 지위를 부여하여 벽사의 이미지로 발전하기도 하였고 무서운 것을 물리쳐주는 보호자의 이미지도 생겨났습니다. 또한 각종 설화나 속담에서 신비로운 힘과 지혜로 권선징악을 주재하는 동물로 신격화되기도 하고, 강한 힘에 비해 상대적으로 어리석음으로 비웃음 당하는 동물로 취급당하기도 하였습니다. 

불교와도 인연이 있어 부처님의 전생 설화에 굶주린 호랑이를 살리기 위해 자기 몸을 던져 호랑이 먹이가 됐다는 ‘사신사호(捨身飼虎)’ 이야기가 있습니다. 호랑이에게 보살이 몸을 보시했다는 것은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하고 생명을 살린 보살행은 한없는 자기희생을 의미합니다. 우리나라 불교에서 호랑이의 이미지는 철저한 수행을 바탕으로 절대 뜻을 굽히지 않는 용맹정진과 서릿발 같은 가르침을 상징하곤 했습니다. 그래서 성철 스님을 ‘가야산 호랑이’, 인홍 스님을 ‘가지산 호랑이’, 활안 스님을 ‘조계산 호랑이’ 등으로 지칭하며 당대 선지식들의 투철한 수행을 존경해 왔습니다. 

백두대간의 호랑이 숲에 많은 사람들이 방문하여 어려운 경제상황과 복잡한 국제정세 속에서도 호랑이의 용맹하고 힘찬 기운을 받아 꿋꿋이 이겨나갈 용기를 얻기 바랍니다. 또한 서릿발 같은 한국불교의 수행 전통이 계속 이어져 선지식들의 지혜가 더욱 빛을 발하기 바랍니다.

손태호 동양미술작가, 인더스투어 대표 thson68@hanmail.net

 

[1496호 / 2019년 7월 10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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