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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족(濯足) 단상

기자명 심원 스님

칠월 한여름이다. 덥다. 너무 덥다. 이제 우리나라도 아열대기후 지역으로 분류해야 한다는 말이 공공연히 나올 만큼 여름 날씨가 예사롭지 않다. 그러다 보니 여기저기서 폭염을 이기는 피서법이 추천되고 있다. 그중 특히 눈길을 끄는 것이 돈의문 탁족이다. 서울시는 올 여름 주말마다 도심 속의 역사·문화공간인 돈의문박물관마을을 ‘추억의 피서지’로 운영하겠다고 밝혔다. ‘혹서기 주말캠프, 돈의문아~여름을 부탁해!’라는 제목의 포스터엔 시원한 물에 발을 담그고 무더위를 날리는 ‘탁족’ 삽화가 맨 중앙에 놓여 있다.

탁족은 아무리 더워도 옷을 벗고 맨몸을 노출하는 것을 꺼렸던 옛 선비들이 택했던 전통적인 피서법이다. 발만 물에 담가 더위를 피한 것이지만, 발은 온도에 민감한 부분이고, 신체의 모든 부분과 연결돼 있으므로 발만 물에 담가도 온몸이 시원해지니, 어찌 보면 탁족은 상당히 우아하면서도 과학적인 피서법이라 하겠다.

그런데 탁족이란 용어의 연원인 ‘탁영탁족(濯纓濯足)’은 굴원(屈原)의 어부사(漁夫辭)에서 시작된다. 어부사의 대강은 이러하다. 춘추전국시대 후기, 쇠망해 가던 초나라에서 삼려대부(三閭大夫)라는 고위 관직을 지낸 굴원은 당시 정치개혁의 선봉에 섰다가 반대파들의 모함을 받아 변지로 쫓겨났다. 초췌한 행색으로 상강(湘江)가를 거닐고 있는데 한 어부가 다가와 “삼려대부 직위의 높으신 분이 어인 일로 이런 곳까지 쫓겨 오셨소?”라고 물었다. 이에 굴원이 비분강개한 어조로 “세상이 다 썩었어도 나 홀로 깨끗했고, 모두가 다 취했을 때도 나는 혼자는 깨어 있었소. 그래서 쫓겨난 것이요.[擧世皆濁我獨淸  衆人皆醉我獨醒 是以放]”라고 답했다. 이렇게 굴원과 몇 차례 주거니 받거니 말이 오고 간 뒤에, 마침내 어부는 뱃전을 두드리며 “창랑(滄浪)의 물이 맑거든 내 갓끈을 씻고, 창랑의 물이 흐리거든 내 발을 씻으리라.[滄浪之水淸兮 可以濯吾纓 滄浪之水濁兮 可以濯吾足]”라고 중얼거리며 더는 말없이 떠나갔다. 이 어부가 남긴 말이 탁영탁족 사자성어의 배경이다.

그 후 굴원은 정치적 향수와 좌절을 안고 떠돌다 더 이상 현실에 희망이 없다고 생각하여 멱라수에 몸을 던져 자살했다고 전한다. 오랫동안 중국인들은 그의 죽음을 애도하였고, 굴원은 충절의 시인이자 충성의 귀감이 되었다. 

그런데 묘하게도 조선의 선비들은 굴원을 존경했지만 어부를 더 좋아했던 것 같다. 조선시대 문인들이 즐겨 감상한 ‘탁족도(濯足圖)’의 주인공은 굴원이 아니라 물이 흐리면 발을 씻으라던 바로 그 어부다. 아마도 굴원의 극단적인 강경함보다 세상을 유연하게 받아들이는 어부에게 더 마음이 갔을 것이다.

어부사에서 오고 간 굴원과 어부의 대화는 단지 두 인물의 성향 차이를 보여주는 것일 뿐 아니라, 삶의 태도에 관한 인간의 일반적이고 오래된 갈등의 표출이라고 할 수 있다. 이는 부조리한 상황에 직면하여 원칙을 고수할 것이냐 타협할 것이냐, 혹은 끝까지 투쟁할 것이냐 적당히 포기할 것이냐 등의 다양한 양태로 우리 사회 곳곳에서 늘 펼쳐지고 있다. 심지어 몸을 도사린 기회주의자는 ‘나는 이편도 저편도 아니다. 세상이 흘러가는 대로 맡긴다’라고 하며, ‘나는 항상 이기는 편에 속한다’는 사족까지 덧붙인다.

굴원과 어부의 삶의 태도, 이것은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다. 현실에 타협하든, 현실에서 도피하든, 현실을 거부하여 맞서든, 그 어느 쪽이든 정답은 없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이미 혼탁해진 창랑의 물이 저절로 맑아지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눈앞의 물이 혼탁하다는 것을 명확히 알고,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기울여 맑혀 나가지 않는다면 갓끈을 씻을 수 있는 맑은 물은 영원히 우리에게 주어지지 않는다. 비록 비극적이고 실패한 생애를 살았음에도 불구하고 굴원이 오랜 세월 수많은 사람들에게 추모의 대상이 된 것은 창랑의 물이 흐리다고 해서 탁족이나 하며 세월을 보내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올 여름엔 심산계곡 차가운 물에 발을 담그고 내 삶의 태도가 어떠해야 할 지 한 번 깊게 숙고 해 봐야겠다. 굴원인가? 어부인가?

 

심원 스님 중앙승가대 전 강사 chsimwon@daum.net

 

[1497호 / 2019년 7월 17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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