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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 산신과 산신각

기자명 이제열

오늘날에도 ‘산신불공’이 필요할까

한국불교 토착화의 한 과정
산 많았던 지리적인 영향 커
현대서 의미 부여는 부적절

불교 공부를 하는 도반들과 함께 전라도의 유명 산사를 찾았다. 워낙 이름난 절이다보니 일반 관광객뿐 아니라 많은 불자들로 북적였다. 순례를 목적으로 관광버스를 전세 내서 방문한 단체들도 많았다. 나는 일행과 함께 부처님이 모셔진 대웅전을 들리기 위해 발걸음을 옮겼다. 그때 우리 옆을 지나가는 불자들 속에서 이런 말이 들렸다.

“신도님들, 산신각에 들러 참배하세요. 절에 오면 꼭 산신님을 찾아야 합니다.”

돌아보니 스님은 아니고 법복을 입은 여성불자였다. 아마도 그 절의 소임을 맡아 봉사하는 불자 같았다. 그래서 내가 웃으면서 다가가 “왜 산신각에 들러야 되는 건가요?”하고 물었다. 그러자 “산을 지키는 산신님한테 인사드려야지요. 안 그러면 산신님이 섭섭해 하십니다. 그러면 좋지 않은 일이 생길 수 있고요.” 나는 그 분의 말을 듣고 어이가 없기도 하고 더 얘기했다가는 가뜩이나 빠듯한 순례 일정에 차질이 있을 것 같아 대웅전으로 향했다. 그러나 돌아오는 내내 그 불자의 확신에 찬 어조와 산신각에 대한 생각이 떠나질 않았다.

아직도 많은 절에는 산신각이라고 하여 산신을 모신 곳들이 적지 않다. 우리 불교가 이 땅에서 1700여년의 세월을 함께하며 토착신앙을 수용한 결과로서 산신각은 칠성각과 더불어 대표적인 형태라고 할 수 있겠다.

산신각이 사찰 내에 자리 잡은 것이 정확히 언제인지를 알 수 없으나 굉장히 오래됐음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국토의 70%가 산이라는 지리적인 특성상 산은 사람들의 일상과 분리될 수 없는 공간이었다. 산은 사냥감을 제공하고 약초와 과일 등 먹거리를 주었으며, 집을 짓고 불을 지필 수 있는 나무를 제공했다.

동시에 산은 두려움의 대상이었다. 산중에서 집중호우나 소나기를 경험해봤다면 알겠지만 작은 기상변화에도 산은 무섭게 돌변한다. 절벽에 떨어지거나 산사태를 만날 수도 있다. 또 뱀과 독충들, 맹수들도 우글거린다. 이 가운데 호랑이는 구한말까지 보통사람들이 어찌해볼 수 없는 엄청난 공포의 대상이었다. 두렵지만 산을 등지고 살 수 없었던 딜레마가 호랑이는 물론 산신에 대한 숭앙으로, 그 민간신앙이 다시 사찰 내부로 이어졌음이 분명하다. 그렇기에 산신각은 이 땅에서 살아갔던 옛사람들의 비애와 고통이 담겨 있는 특별한 공간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더라도 교리적으로 보면 산신신앙은 불교와 연관성을 찾기 어렵다. 비록 일부 경전에 산신이 부처님께 공양을 올리고 길을 안내하는 내용이 있기는 하다. 그러나 경전에 등장하는 산신은 삼보에게 공양을 하는 위치에 있지 누구로부터 추앙을 받거나 공양을 받지 않는다. 불자들이 삼보 외에 어느 신들에게도 예배하고 공경하는 모습도 보이지 않는다. 부처님은 어떤 신들도 예배 대상으로 삼으라는 말씀을 하신 적이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선 산신이 부처님처럼 추앙을 받아 왔다. 산신에게 공양 올리는 의식을 ‘산신불공’이라 부르고 ‘산왕대성자’라는 호칭을 써서 대성인의 반열에 올려놓았다. 천계의 왕이라는 제석천에게도 성자라는 호칭을 붙이지 않는데 중생의 속성을 지닌 지상의 하급신에게 대성자라 부르고 아라한인 나반존자와 동등한 위치에 두는 것도 대단히 이례적이다.

그러나 지금은 ‘호환마마’가 가장 두려웠던 근대 이전의 시대가 아니다. 합리성과 과학문명이 주도하는 현대사회에서 산신으로는 더 이상 대중의 마음을 움직이기 어렵다. 이런 시대일수록 우리가 주목해야할 것은 산신기도나 산신대재가 아니라 경전 그 자체이다. 경전에 입각해 부처님의 가르침을 깊이 이해하고 일상에서 실천할 때 정법이 바로 서고 올바른 신행생활도 가능하다. 산신각을 안내하던 그 불자님과 인연이 된다면 이번에는 차라도 한 잔 마시며 진지한 대화를 나눠야겠다.

이제열 법림선원 지도법사 yoomalee@hanmail.net
 

[1497호 / 2019년 7월 17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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