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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 조수미와 스타

기자명 김정빈

“무대 아닌 골방에서도 떳떳해야 진정한 스타” 

세계적인 성악가 조수미 자서전에서
“무대 위에서 만난 스타 멋지지 않고
공연 끝나면 남자로 안 느껴져” 고백
무대 밖에선 자신까지 속이는 일 많아  

그림=육순호
그림=육순호

대중적인 인기를 얻은 연예인을 스타라고 한다. 하늘의 별처럼 빛나는 존재라는 뜻이다. 하늘의 별은 신비하기 그지없어 보인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보면 우리가 사는 지구 또한 별이다. 금성은 새벽에 가장 빛나는 아름다운 별이지만, 금성에서 보는 지구는 금성보다 몇 배나 더 아름다운 별이라고 한다.

금성이든 화성이든 그 실제의 모습은 수백 도 이상으로 끓는 불덩이이거나 일체의 생명체가 없는 삭막한 모습이다. 다행하게도 우리가 사는 지구별에는 불덩이로 된 곳이 수백 킬로미터 땅속과 화산지역 뿐이고, 생명체 또한 다종다양하게 살고 있다. 지구라는 별에는 금성처럼 빛나는 아름다운 지역도 있고, 더러운 시궁창도 있으며, 거칠고 험하고 춥고 뜨거운 지역도 있다.

마치 그와 같이 멀리서 빛나는 인간 스타들 중에는 겉으로만 신비해 보이는 스타도 있고, 속내까지도 빛나는 스타가 있다. 스타를 스타라고 결정하는 곳은 ‘광장’이다. 하지만 누구에게나 그러하듯이 사람은 광장에서 남들로부터 평가를 받지만 ‘골방’에서는 자신이 자신을 평가한다.

내가 나를 평가하는 그 자리에 거짓 평가는 있을 수 없다. 겉모습으로는 광장에서 스타로 평가받는다고 해도 골방에서 나 자신이 떳떳하지 못한 데가 있다면 그는 외로울 수밖에 없다. 그 외로움을 어떤 스타는 술, 도박, 마약으로 다스리고, 다른 어떤 스타는 수행으로 다스린다. 그 외로움은 내적인 떳떳함과 그것으로부터 생겨나는 진실성으로써만 해결할 수 있지만 이 법(다르마)을 알지 못하는 많은 스타들은 수양의 길을 가지 않는다.

플라시도 도밍고는 20세기 후반 루치아노 파바로티, 호세 카레라스와 함께 이른바 ‘3대 테너’로 꼽힌 유명한 성악가이다. 노래만 잘하는 것이 아니라 외모 또한 미남이었던 그는 가는 곳마다 인기를 끌었다. 지휘도 잘 했고, 오페라에 연기 수준도 일품이었다. 세계적으로도 이름이 높은 조수미씨는 그와 함께 공연한 일이 있다.

“어머! 얼마나 멋져라! 도밍고와 함께 무대에서 노래를 부르다니!”

로마행 비행기에서 만난 한 아주머니가 조수미 씨를 부러워하며 한 말이다. 도밍고가 앞에 있다면 금방이라도 사랑에 빠질 듯한 눈빛으로 그녀는 도밍고에 대한 찬탄을 그치지 않았다. 조수미 씨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녀의 말을 수긍해주었지만, 내심으로는 은근히 미소 지었다. 그 까닭을 그녀는 자신의 자서전에서 이렇게 썼다.

“무대 위의 스타들, 그들은 생각처럼 멋지지만은 않다. 물론 노래 실력과 노래에 대한 열정은 제외하고 말이다. 특히나 같은 무대에서 공연을 하고 나면 도대체 남자로 느껴지지 않는다.”

입담 좋은 아주머니는 같은 무대에서 공연을 하면서 어떻게 도밍고와 사랑에 빠지지 않을 수 있는지 불가사의한 모양인데, 그 아주머니를 무대 위에 한 번 세워보고 싶다. 일단 분장을 하고 무대에 오르면 짙은 화장 때문에 앞에 선 인물이 사람이라는 사실이 잘 실감 나지 않는다. 플라시도 도밍고든 호세 카레라스든 그들은 남자가 아니라 극중의 인물일 뿐이다.

어디 그뿐이랴. 노래를 하다 보면 침을 튀기기가 일쑤이다. 도밍고도 분수처럼 침을 튀기는 사람 중의 하나이다. 무대 위에서 얼굴을 찡그릴 수도 없고 고개를 돌릴 수도 없다. 별수 없이 그 침을 고스란히 얼굴에 맞으면서 한번 서 있어 보라. 제아무리 멋있는 남자라도 사랑의 감정이 솟아나는지.

한 술 더 뜨는 사람도 많다. 공연 전에 뭘 먹었는지 껴안고 사랑의 듀엣을 부르는 동안 바로 코앞에서 역겨운 양파 냄새를 풍겨대는 테너가 있지 않나, 무대에 올라와서 천연덕스럽게 뿡뿡 방귀를 뀌어대는 사람이 없나, 앞에서는 한창 노래를 부르고 있는데 뒷줄에 서서 시시덕거리며 시답잖은 농담을 해대는 사람이 없나.”

이어서 조수미 씨는 작곡가 베를리오즈 이야기를 전해준다. 프랑스인인 그가 어느 때 영국을 방문하여 해리엇 스미스슨이라는 여배우가 주연을 맡은 셰익스피어의 여러 작품 공연을 보았다. 스미스슨에게 한눈에 반한 베를리오즈는 그녀가 남자 주인공의 품에 안기는 순간이면 객석에서 비명을 지르곤 했다.

베를리오즈는 스미스슨에게 사랑을 고백했지만 당대의 대스타였던 그녀는 무명 작곡가를 거들떠보지 않았다. 실연의 쓰라림을 견디며 베를리오즈는 ‘환상 교향곡’을 작곡했고, 결국에는 스미스슨과 결혼하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베를리오즈를 매혹했던 무대 위의 스타는 정작 음악을 잘 알지 못했을 뿐 아니라 ‘광장 중심 평가’에 젖어 있었다. 그래서 내면이 공허할 수밖에 없었던 그녀는 ‘골방’에서는 외로웠으며, 그 외로움을 낭비와 질투심으로 달랬다.

마침내 그들의 결혼은 8년 만에 불행하게 끝나고 말았다. 이 경험에서 깨달은 바를 베를리오즈는 다음과 같이 적었다. “사람은 움직이는 그림자에 불과하다. 우리는 불쌍한 배우이다. 자기가 무대에 나설 때는 무대 위에서 포즈를 취하거나 소리치지만 결국에는 무대를 떠나야 한다. 백치가 떠드는 것처럼 시끄러울 뿐인 무대 위에서의 삶은 정작 아무런 실속이 없다.”

베를리오즈의 이 말은 셰익스피어가 ‘햄릿’에서 한 말을 약간 바꾼 것이지만, 우리는 불제자의 한 사람으로서 부처님께서 ‘금강경’이 “일체 유위법은 꿈같고, 헛것 같고, 물거품 같고, 그림자 같고, 이슬 같고, 번갯불 같다”고 설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교리 상으로 이 구절은 많은 설명을 요하지만, 우리는 사람을 평가하는 두 영역인 광장과 골방의 면에서도 이 구절을 음미해볼 수 있을 듯하다. ‘금강경’에서 말하고 셰익스피어와 베를리오즈가 말하는 ‘그림자 같은 삶’을 ‘광장에서의 삶’으로 바꿔 생각해볼 수 있는 것이다.

근래 들어 우리는 광장의 스타가 잘못을 저지른 다음 뻔뻔한 거짓말을 일삼다가 들통이 나는 장면을 자주 보고 있다. 남을 속이는 거짓말은 그 이전에 자신을 속이는 과정을 거친 다음에 일어난다. 남을 속이는 거짓말은 그에 앞서 나를 속이지 않고서는 할 수 없다는 뜻이다.

나를 속이지 않는 것을 무자기(無自欺)라 한다. 무자기는 곧 정직이다. 필자는 부처님의 경지를 표현하는 말 중 하나인 여여(如如)란 정직정을 의미한다고 본다. 부처님께서는 “여래에게는 비밀이 없다”는 말씀도 하셨다. 나 자신을 돌아보아 거짓이 없는 수행자라야 ‘반야심경’이 설하는 ‘무유공포’와 ‘원리전도몽상’에 도달할 수 있다. 연예계의 그림자 스타들의 몰락을 보면서 우리는 그 반대편에서 실체적 스타로 성장해가는 나 자신을, 그리고 훌륭한 불제자를 생각한다.

김정빈 소설가 jeongbin22@hanmail.net

 

[1497호 / 2019년 7월 17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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