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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안과 밖 조르단 곡선 정리

불변의 자아 존재 않는다면 안팎 구별은 무의미

평면상의 연속 단순 폐곡선은
평면을 두 개로 나눈다는 정리
안팎 문제는 종교인에게도 중요
무아론 관점서 안팎은 가설 불과

수학에는 안과 밖에 대한 문제가 있다. 평면상의 연속 단순 폐곡선은, 즉 끊어지지 않고 중간에 만나지 않는 닫힌 곡선은 평면을 두 부분으로 나눈다는 정리가 있다. 한 부분은 면적이 유한하고, 다른 부분은 면적이 무한하다. 예를 들어 방바닥에 놓인 동그란 고무줄은 방바닥을 두 부분으로 나눈다. 소위 ‘조르단 곡선 정리’이다. 자명해 보이지만, 그 증명은 난해하다. 또 하나의 문제는 ‘평면상의 어떤 점이 주어진 폐곡선 안에 있는지 밖에 있는지’ 결정하는 문제이다. 문제는 곡선이, 동그란 고무줄과 달리, 수학적 방정식으로 주어지기에 눈으로 볼 수 없다는 점이다. 3차원 공간상의 연결되고 콤팩트한 초곡면은 3차원 공간을 두 부분으로 나눈다는 ‘조르단-브라우어 분리 정리’도 있다.

어느 날 신(神)이 당신을 무한히 넓은 땅에 데리고 가 당신에게 마음대로 늘어나는 신축성이 좋은 긴 줄을 주면서 당신이 아침부터 저녁까지 그 줄로 둘러싸는 땅을 당신에게 주겠다고 한다. 단 중간에 줄끼리 닿으면 안 된다. 당신은 줄로 강·산·습지·절벽 등 지형에 따라 구불구불하게 땅을 둘러싸고 돌아왔다. 신이 마지막 관문이 있다며, 활을 쏘더니 땅에 내려앉은 화살이 당신 땅 안에 있는지 밖에 있는지 묻는다. 알아맞혀야 줄 안의 땅이 당신 땅이 된다. 땅이 작으면 모를까 여의도만 한 크기라면, 그걸 어떻게 알아낼 수 있을까? 하나의 방법은 이렇다. 언덕 위에서 화살의 지점을 확인하고 화살을 향해 걸어간다. 화살에 다다를 때까지 줄을 짝수 번 지나면 화살은 당신 땅 안에 있고, 홀수 번 지나면 화살은 당신 땅 밖에 있다.

안팎의 문제는 종교인들에게도 중요하다. 물론 영적인 문제이다. 우리는 안과 밖을 구별할 수 있을까? 만약 유신론자들의 주장처럼 신이 존재한다면, 자신이 신 안에 있는지 신 밖에 있는지 어떻게 알 수 있을까?

존재론적으로 신 안에 있는 경우가 있고, 인식론적으로 신 안에 있는 경우가 있고, 행위로 신 안에 있는 경우가 있다. 첫 번째 경우는 자신의 존재가 신과 합일이 되어 자신과 신 사이의 경계선을 찾을 수 없는 경우이고 종심소욕불유구(從心所欲不踰矩)의 경지이다. 자신의 신구의(身口意)가 곧 신의 신구의이다. 그래서 이 경지에 들어서면 자신을 신이라 선언한다. 물론 다른 사람들이 보면 헛소리다. 혹시 똥오줌을 안 싸고, 안 자고, 안 먹고 살면 모를까. 두 번째 경우는 물질적이 아니라 정신적인 안이다. 신의 본성을 알고 그 본성에 따라 사는 것이다. 이리 살려면 지성을 필요로 한다. 신이 무엇인지 알아야 하기 때문이다. 신이 물질적인 존재가 아니라면, 혹은 가끔 물질적인 모습을 취한다고 해도 그 본질이 정신이라면, 눈에 안 보이는 존재이므로 그 속성을 파악하고 이해함으로써 신 안에 거(居)하게 된다. 세 번째 경우는, 결국 중요한 것은 밖으로 드러나는 행위이므로 행위가 신의 뜻과 일치하느냐 하는 것이다. 신의 섭리가 구체적으로 드러나는 것은 물질세상이고, 물질세상은 행위에 의해서 결정되므로, 행위가 가장 중요하다는 것이다.

깊은 명상이나 사유에 잠기면 안팎의 경계가 사라진다. 이때 정말로 자신이 사라졌는지를 판단하는 방법이 있다. 그런 질문이 일어난다면 아직 사라지지 않은 것이다. 신과의 합일이란 이중성(二重性)이 사라지는 것인데, 만약에 이중성에 대한 의문이 일어난다면, 그게 바로 아직도 어느 정도는 이중성에 갇혀 있다는 증거이다.

범신론(汎神論 pantheism)은 모든 게 신이라는 주장이고, 만유내재신론(萬有內在神論 panentheism)은 신은 피조물을 초월하지만 모든 것 안에 있다는 주장이다. 이는 컴퓨터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 사이의 관계와 유사하다. 혹은 DNA와 생물 사이의 관계와도 유사하다.

자아는 우주를 두 부분으로 나눈다. 안과 밖으로. ‘조르단-브라우어 분리 정리’에서처럼 곡면인 피부로 둘러싸인 내 안은 유한하고, 내 밖은 무한한 것일까, 아니면 나는 무한하고 신은 유한한 것일까? 힌두교의 범아일여론(梵我一如論)에 의하면 내가 곧 신(梵 브라흐만)이므로 안팎을 가리는 것은 무의미하다. 애초에 불변의 자아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 불교의 무아론이다. 불변의 자아가 존재하지 않는다면 안과 밖의 구별은 무의미하다. 기껏해야 가설적인 문제일 뿐이다.

강병균 포항공대 수학과 교수 bgkang@postech.ac.kr

[1497호 / 2019년 7월 17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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