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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맥도날드화와 차가운 악

기자명 고용석

배부름 위해  땅과 대기 파괴하다

맥도날드화는 엄격한 표준화 
돈에 비해 많이 먹었다 착각해
이익 본 것이 기업주임을 망각 
윤리적으로는 ‘차가운 악’ 규정

고속도로와 자동차가 일반화되고 유목적 삶의 양식이 확산되자 이에 맞춰 햄버거와 패스트푸드 체인이 등장한다. 산업화의 상징 포디즘, 즉 일관된 작업과정이 생산에 초점을 두었다면 맥도날드는 소비패턴을 규정한다. 소비자가 줄을 서서 기다렸다가 자기가 직접 주문한 뒤 음식을 가져다 먹고 치워야 하는 등 소비를 분석한 것이다. 오늘날 패스트푸드 시스템은 맥도날드의 생산방법과 운영원리를 그대로 차용하고 있다. 맥도날드화의 특징은 합리성이 핵심이다.

첫째, 효율성은 목표 달성을 위한 최적의 선택을 의미한다. 맥도날드는 배고픈 상태에서 배부른 상태로 가는 가장 편한 방법을 제공한다. 더 빨리 더 많이 처리할수록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다. 연애조차 패스트푸드식이다. 

둘째, 계산 가능성이란 맥도날드에선 주문한 음식이 몇 분 만에 나오고 양이 얼마나 될지, 돈이 얼마 들지 정확히 짐작할 수 있다. 사람들은 지불한 돈에 비해 더 많이 먹었다고 느낀다. 이익을 본 쪽이 기업주라는 사실을 잊는다.

셋째, 예측가능성은 제품과 서비스가 언제 어디서나 동일하다는 확신이다. 베이징, 파리 등등 세계 어느 맥도날드에서든 우리는 같은 음식이 나온다는 걸 알고 있다. 생산 과정의 엄격한 표준화로 인한 결과다.

넷째, 자동화를 통한 통제다. 이 모든 프로세스는 자동화 된 시스템을 통해 작동된다. 줄을 서야 하고 메뉴는 한정적이며 선택의 여지가 거의 없고 의자는 딱딱하다. 빨리 먹고 나가야 한다. 직원은 업무를 정확히 지시받은 대로만 수행하도록 훈련 받는다. 맥도날드화는 갈수록 파괴력을 더해 간다. ‘좋아요’ 예측 알고리즘을 적용하는 페이스북, 물건 사듯 원하는 아이를 갖게 하는 임신과 출산, 브랜드화한 초대형 교회, 죽음과 임종의 소비자로서 장례식, 짧은 뉴스 소비로 담론의 질이 추락한 정치 등등, 맥도날드화는 노동·교육·의료·섹스·삶과 죽음·여가·쇼핑 등 일상에까지 침범하고 나아가 현대세계를 지배하는 요소이자 기본 원칙이 되었다. ‘맥도날드 맥도날드화’의 저자 조지 리처는 근대 이후 관료제의 성장과 발전을 해명한 막스 베버의 이론을 바탕으로 개인 삶의 전 영역과 사회 구조를 장악한 맥도날드화를 비판적으로 검토한다. 맥도날드화란 결국 현대사회의 상징인 합리성이 역설적으로 불합리성을 낳는다는 비판적 개념인 것이다. 

효율적이라는 맥도날드에서 대량의 감자와 고기를 공급하기 위해서 그 이상의 땅과 숲, 물과 대기를 오염시키고 파괴하는 건 얼마나 비효율적인가? 맥도날드는 어느새 환경오염과 비만의 최대 원인 제공자가 됐다. 맥도날드화가 전 세계 동시다발적으로 진행되면서 지구촌의 동질화를 가져와 개성을 몰살시킨다는 점도 문제다. 

맥도날드화를 좀 더 근본적이고 윤리적 측면에서 검토한 개념으로 ‘차가운 악’이 있다. 철학자 한나 아렌트가 언급한, 생각 없음에서 저지르는 ‘악의 평범함’의 한 전형이랄까. 예컨대 우리가 생각없이 먹는 쇠고기나 햄버거에는 곡물사료로 땅을 빼앗긴 수백만 가족들의 분노, 기후변화와 열대우림의 파괴, 먹을 게 없어 굶주려 죽어가는 아이들과 가축들의 고통 등등이 담겨있다. 햄버거를 먹는 것은 이 모든 것을 먹는 것이다.

개인의 범죄에는 도덕적 분노가 뒤따른다. 그러나 현대의 기계적 환원주의·실용주의·시장효율성 등에 가려 제도적으로 저질러지는 악은 개인적 특성이 없으므로 좀처럼 감지되지 않는다. 햄버거 소비를 두고 악행을 범했다 한다면 사람들은 터무니없다고 할 것이다. 설사 알더라도 강간, 학대 같은 뜨거운 분노가 거의 없다. ‘공감의 시대’의 저자 제레미 리프킨은 이를 ‘차가운 악’이라고 명명한다. 새로운 인류의식과 지속 가능한 사회는 이 차가운 악의 파괴행각을 ‘알아차림’에서 시작한다.

고용석 한국채식문화원 공동대표 directcontact@hanmail.net

 

[1497호 / 2019년 7월 17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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