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키엔체 노부르의 ‘바라, 축복’(2013)
13. 키엔체 노부르의 ‘바라, 축복’(2013)
  • 문학산 교수
  • 승인 2019.07.16 14:26
  • 호수 149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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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 다른 사랑의 성취, 깨달음으로 흘러가다

인도 단편소설 ‘피와 눈물’ 원작
계급·상황 모두 다른 세 사람의
각기 다른 형태의 ‘아갈마’ 얽혀
고통의 강 지나 깨달음에 도달

 

 

‘축복, 바라’는 인도 단편소설 ‘피와 눈물’이 원작이다. 사진은 영화 스틸컷.
‘축복, 바라’는 인도 단편소설 ‘피와 눈물’이 원작이다. 사진은 영화 스틸컷.

소크라테스는 외모는 추했지만 내면이 아름다웠다고 한다. 아름다운 내면은 그의 추종자에게 인간적인 매력으로 작용했을 것이다. 라캉은 추한 외모의 소크라테스에 대한 매력을 설명하기 위해 ‘아갈마(agalma)’라는 용어를 사용했다. 아갈마는 흉한 조각상 속에 담긴 신들의 이미지와 신에게 바치는 봉헌물을 함축한다. 인간에게 아갈마는 타자를 욕망의 대상으로 만드는 치명적인 매력이다. 치명적인 매력은 결핍과 환상이 원인이다. ‘바라, 축복’은 인도의 단편소설 ‘피와 눈물’을 원작으로 각색하였으며 인도춤인 바라타나티암의 바라를 제목으로 택했다.

‘바라, 축복’은 신에게 춤을 봉헌하는 계급인 데바다시인 릴리와 조각을 배우는 하층계급의 샴 그리고 은둔형 지주가 주인공이다. 릴리와 샴이 서로 사랑에 빠진다. 릴리는 혼전 임신의 문제를 지주와 결혼으로 해결한다. 서사는 단순하지만 인간의 감정과 행위를 통해 내면의 성장과 종교적 깨달음을 채워간다. 

세 인물의 관계는 상호 아갈마로 성립된다. 무용수 릴리는 크리슈나 신에게 춤을 봉헌한다. 그에게 샴은 ‘신비로운 피리소리로 매혹시키는 크리슈나’의 현신이며, 그녀가 춤을 연습할 때 샴은 주변에서 피리를 분다. 계급사회에서 샴은 신성한 호수에 들어가는 것이 금지되고 발에 신발착용까지 불허되는 하층민이다. 하지만 릴리에게 샴은 크리슈나이거나 사랑하는 남성이다. 조각가를 꿈꾸는 샴에게 릴리는 지혜의 여신을 상징하는 모델이다. 조각가 샴의 눈에 릴리는 지혜의 여신상이라는 아갈마로 사랑과 숭배의 대상으로 승격된다. 

은둔형 지주는 책을 보거나 망원경으로 밖을 훔쳐본다. 그는 세상에 뛰어들지 못하고 안에서 밖을 관찰한다. 그는 릴리를 망원경으로 훔쳐보면서 자신이 결핍된 것을 릴리에게 발견하게 된다. 릴리는 그의 아갈마가 된다. 정적인 지주와 다르게 릴리는 동적인 춤을 추며 집안보다는 자연 속에서 자유분방하게 지낸다. 동적이고 자유분방한 릴리는 지주의 결핍된 부분을 소유하고 있으며 동시에 미모도 아름답다. 지주에게 자유분방한 무용수 릴리는 치명적 매혹을 지닌 여성이다. 데바다시 릴리에게 피리부는 크리슈나인 샴이 종교적 아갈마라면, 가난하고 하층민인 릴리에게 부와 계급을 소유한 지주는 계급적 아갈마다. 자비로운 성품과 경제력을 구비한 지주는 서서히 릴리의 아갈마로 자리하게된다. 

서로 다른 아갈마를 지닌 인물이 어떻게 소원을 성취하는가에 멜로 드라마의 서사적 완결성이 달려있다. 멜로 드라마의 이면에 키엔체 노르브는 스님 감독답게 종교적인 색채를 가미한다. 

릴리는 숲속의 신전에서 신에게 기도하고 신에게 춤을 봉헌하고 향을 봉향한다. 릴리는 어머니가 신에게 춤을 봉헌하는 데바다시이기에 자연스럽게 데바다시가 되어 춤을 수련한다. 샴은 조각가가 되어 도시로 나갈 꿈을 가지고 있으며 릴리를 모델로 지혜의 여신상을 만들고 있다. 지주는 릴리의 공연을 관람한다. 공연 장면은 인도 전통 무용이지만 릴리는 ‘신비로운 피리소리로 매혹시키는 크리슈나님’의 가사를 듣는 순간 환상으로 접어든다. 그녀는 샴과 함께 황금빛 광채가 나는 호수 위에 발을 적신다. 환상장면은 크리슈나 샴과 춤을 통한 일체감을 성취한다. 지주는 매혹의 시선으로 릴리를 바라본다. 릴리는 지주 댁의 일손을 거들게 되고 지주는 릴리를 바라본다. 릴리도 지주의 시선을 느끼고 옷매무새를 단정하게 한다. 샴은 지혜의 조각을 완성하기 위해 조각상을 숲속의 장소로 옮기고 릴리와 함께 작업을 한다. 그들은 갑작스러운 비를 맞으면서 서로 교합하게 된다. 이 장면은 손과 손이 마주잡는 클로즈업과 신체 일부의 클로즈업으로 이어간 다음 들판의 풀들이 움직이는 것으로 전환된다. 

월호 스님의 말처럼 ‘동물만 살아있는 것이 아니라 풀도, 나무도, 산도 강도 모두가 살아있는 것’이며 아울러 인간도 대지도 모두 살아있으므로 숲의 움직이는 행위와 인간의 행위는 다르지 않음을 암시한다. 혼전 임신으로 위기에 빠진 릴리는 신에게 간구한 다음, 자신의 지혜를 통해 해결에 나선다. 릴리는 곱게 차려입고 지주를 유혹하여 숲속에서 함께하게 된다. 릴리는 스스로에 대한 가책과 슬픈 운명으로 울음을 터뜨리고 자비로운 지주는 그녀를 위로하면서 남녀관계로 발전한다. 릴리는 지혜를 통해 위기에 처한 상황에서 벗어나고 지주는 힘든 릴리에 대한 자비심으로 결국 결혼을 선택하게 된다. 릴리는 지혜의 상징인 문수보살을, 지주는 자비의 상징인 보현보살에 가깝다. 키엔체 노르브는 계급의 차이와 아갈마의 차이로 인해 얽힌 세 사람의 관계를 문수보살의 지혜와 보현보살의 자비라는 불교적 이치로 해결한다. 

지주는 사랑하는 대상의 획득과 상속을 위한 자녀의 출산이라는 문제를 결혼으로 해결한다. 릴리는 출산 문제 해결과 가족의 형성이라는 원을 이룬다. 샴은 마지막 시퀀스에서 칼리신상을 점안하여 작품을 완성한다. 그는 신상의 완성으로 조각가로 거듭난다. 점안식 장면은 샴을 데리러 가는 하인의 모습에서 들판을 나는 새로 연결된다. 이어서 슬로우 모션으로 연꽃이 클로즈업된다. 릴리와 샴이 합할 때 릴리는 샴의 몸에 진흙을 묻혔다. 릴리는 계급적 조건과 혼전 임신 등으로 고통스러운 진흙같은 시간을 보냈다. 그녀는 고통을 이겨내고 세 사람 모두 원하는 연꽃(아갈마)을 획득한다. 릴리를 모델로 한 지혜의 신상이 점안되어 스스로 신(성불)으로 승격된다. 연꽃은 고통 속의 결실이자 아갈마의 꽃이다. 마지막 음악은 ‘바다여 당신의 품에 저를 온전히 품으시고 당신 안에서 자유로이 흐를 수 있나이다’라고 읊조린다. 그들은 고통의 강을 지나 깨달음의 바다에 도달하여 모두 번뇌에서 해탈하여 자유롭게 시간의 물결 위로 흘러간다. 

문학산 영화평론가·부산대 교수

 

[1497호 / 2019년 7월 17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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