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아릿타 비구의 나쁜 견해
5. 아릿타 비구의 나쁜 견해
  • 마성 스님
  • 승인 2019.07.16 14:37
  • 호수 149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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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못 부끄럽게 여기고 청정하려고 해야 진정한 사문

세존, 나쁜 견해 안 버리는 비구에
자신 망치는 허물이라고 호된 질책
감각적 욕망 잘 다스리지 못하면
정신적 향상은 기대하기 어려워
탐욕 안버리면 수행 진전도 없어
고대 인도의 까마(kama), 즉 욕정을 표현한 수많은 부조 가운데 하나.
고대 인도의 까마(kama), 즉 욕정을 표현한 수많은 부조 가운데 하나.

출가 전에 매사냥꾼이었던 ‘아릿타(Ariṭṭha)’라는 비구가 있었다. 그는 매우 나쁜 견해(惡見)를 갖고 있었다. 그는 세존께서 설하신 법을 자신이 알기로는 장애가 되는 법(障碍法)이라고 설하신 것을 수용해도 장애가 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장애법이란 성적 교섭을 말한다. 주석서에 의하면 그는 비구가 여인과 성관계를 가져도 잘못된 것이 아니고, 음계(婬戒)를 첫 번째 바라이죄로 제정한 것도 잘못된 것이라고 주장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비구들이 그를 찾아가서 이렇게 충고했다. 

“벗 아릿타여, 그렇게 말하지 마시오, 세존을 비방하지 마시오. 벗 아릿타여, 세존께서는 여러 가지 방편으로 장애가 되는 법들을 설하셨고, 그것을 수용하면 반드시 장애가 된다고 하셨습니다. 감각적 욕망은 즐거움이 적고 많은 괴로움과 고뇌를 가져다주며 위험이 뒤따른다고 세존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이와 같이 비구들이 세 차례나 충고하였으나 아릿타 비구는 자신의 나쁜 견해를 버리지 않았다. 비구들은 그의 나쁜 견해를 어떻게 할 수가 없어서 세존께 이 사실을 알렸다. 

그러자 세존께서는 비구들에게 아릿타 비구를 불러오라고 했다. 아릿타 비구가 도착하자 붓다는 먼저 그에게 그렇게 말한 것이 사실인가를 물었다. 아릿타 비구는 그것이 모두 사실이라고 시인했다. 그러자 붓다는 아릿타 비구에게 다음과 같이 질책했다.

“어리석은 자여, 도대체 내가 누구에게 그런 법을 설했다고 그대는 이해하고 있는가? 어리석은 자여, 참으로 나는 여러 가지 방편으로 장애가 되는 법을 설했고, 그것을 수용하면 반드시 장애가 된다고 하지 않았던가? 나는 감각적 욕망은 즐거움이 적고 많은 괴로움과 고뇌를 가져다주며 위험이 뒤따른다고 말했다. 또한 나는 해골의 비유로 … 고깃덩어리의 비유로 … 건초횃불의 비유로 … 숯불구덩이의 비유로 … 꿈의 비유로 … 빌린 물건의 비유로 … 과일나무의 비유로 … 도살장의 비유로 … 쇠살의 비유로 … 뱀의 비유로 감각적 욕망은 즐거움이 적고 많은 괴로움과 고뇌를 가져다주며 위험이 뒤따른다고 말했다. 어리석은 자여, 그러나 그대는 스스로 잘못 파악하여 우리를 비난하고 자신을 망치고 많은 허물을 쌓는구나. 어리석은 자여, 그것은 그대를 긴 세월 불이익과 고통으로 인도할 것이다.”(MN.Ⅰ.130-3)

아릿타 비구의 일화는 율장에서도 두 번이나 언급되고 있다. 첫째는 아릿타 비구가 나쁜 견해를 버리지 않아서 승가로부터 격리시키기 위해 불사악견(不捨惡見) 거죄갈마(擧罪羯磨)가 실시되었다.(Vin.Ⅱ.25) 둘째는 아릿타 비구에게 나쁜 견해를 버리라고 세 번이나 충고해도 받아들이지 않았기 때문에 바일제법(波逸提法) 제68조 악견위간계(惡見違諫戒)가 제정되었다.(Vin.Ⅳ.135)
아릿타 비구의 일화를 보면서 붓다시대에도 이런 주장을 한 사람이 있었다는 사실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그때는 붓다께서 생존해 계셨기 때문에 모든 문제를 직접 해결할 수 있었다.
그리고 초기불교시대에는 아릿타 비구와 같은 악견 주장자가 있을 때에는 승가 내부에서 거죄갈마를 실시하여 자체적으로 해결하였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온갖 삿된 견해들이 난무해도 그것을 승가 내부에서 자체적으로 해결할 수 없는 실정이다. 현재 한국불교가 안고 있는 가장 심각한 문제점이다.

한때 한국불교계에서도 일부의 승려들이 ‘음주식육(飮酒食肉)이 무방반야(無妨般若)’라고 주장한 적이 있었다. 이 황당무계한 주장은 막행막식(莫行莫食)을 해도 수행에는 전혀 지장이 없다는 것이다. 이러한 주장은 붓다의 법과 율에서는 도저히 용납될 수 없는 허튼소리에 불과하다.

비록 지난날 잘못을 범했다 할지라도 그것을 스스로 부끄럽게 여기고, 지금이라도 청정한 범행을 닦고자 노력하는 사람이야말로 진정한 사문이라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사문은 ‘노력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필자 또한 지난 과오를 참회하며, 감각적 욕망으로부터 벗어나고자 끊임없이 노력하고 있다.

율장에 의하면 승가로부터 거죄갈마를 받은 자는 별주(別住)의 처벌을 받게 된다. 그리고 별주 기간 중에는 마흔네 가지의 제약이 따른다. 

이를테면 1) 다른 사람에게 구족계를 주지 못한다. 2) 다른 사람의 의지가 되지 못한다. 3) 사미를 두지 못한다. 4) 비구니 교계에 선발되지 못한다. 5) 선발된다 하더라도 비구니를 교계하지 못한다. 6) 승가로부터 갈마를 받을 죄(별주를 받을 죄)를 범해서는 안 된다. 7) 다른 유사한 죄를 범해서는 안 된다. 8) 이보다 더 악한 죄를 범해서는 안 된다. 9) 갈마를 비난해서는 안 된다. 10) 갈마에 참가하는 비구를 방해해서는 안 된다. 11) 청정비구의 포살을 방해해서는 안 된다. 12) 청정비구의 자자를 방해해서는 안 된다. 13) 다른 별주비구와 서로 이야기를 해서는 안 된다. 14) 제자에게 교계를 주지 못한다. (생략) 이처럼 거죄갈마를 받은 자는 승가에서 쫓아내지는 않지만, 비구로서의 권한을 박탈당한다.

‘맛지마 니까야’(MN22)에서 붓다는 뱀의 비유를 들어 감각적 욕망의 위험성에 대해 경고하고 있다. 이를테면 땅꾼이 뱀을 잡을 때 뱀의 몸통이나 꼬리를 잡으면 오히려 그 뱀에게 물려 죽음에 이르거나 죽음에 버금가는 고통을 당한다. 그것은 뱀을 잘못 잡았기 때문이다. 반대로 땅꾼이 뱀을 잡을 때 뱀의 머리를 잡으면 뱀이 그 사람의 손이나 몸의 다른 부위를 휘감겠지만 그 때문에 그 사람이 죽음에 이르거나 죽음에 버금가는 고통을 당하지는 않는다. 그것은 뱀을 잘 붙잡았기 때문이다.

이처럼 감각적 욕망을 잘 다스리지 못하면, 정신적 향상이나 수행의 과보를 기대하기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도 간혹 아릿타 비구와 같이 감각적 욕망과 탐욕이 수행에 장애가 되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감각적 욕망과 탐욕을 버리지 않으면 절대로 수행에 진전을 가져올 수 없다는 것이 붓다의 가르침이다.

마성 스님 팔리문헌연구소장 ripl@daum.net

 

[1497호 / 2019년 7월 17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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