척불숭유를 국가 시책 삼았던 시대 유생은 스님에게 어떤 시를 보냈나
척불숭유를 국가 시책 삼았던 시대 유생은 스님에게 어떤 시를 보냈나
  • 심정섭 전문위원
  • 승인 2019.07.22 11:23
  • 호수 149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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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조 유가가 승려에게 준 시’ / 이종찬 지음 / 학고방
‘조선조 유가가 승려에게 준 시’
‘조선조 유가가 승려에게 준 시’

“겨울 삼동에 수려한 빛이 구름에 닿아 파랗고/ 유월 달의 맑은 바람은 대지에 가득히 싸늘해/ 이것이 바로 백정 스님의 기이 절묘한 곳이니/ 어느 날에 등반하여 좋아하며 서로 만나나.”

조선 개국 공신인 삼봉 정도전이 백정선사에게 보낸 시다. 정도전은 조선 개국 후 군사, 외교, 성리학, 행정 등 다방면에 걸쳐 초기의 건국사업에 헌신했고 척불숭유를 국시로 삼게 해 유학 발전에 초석을 놓은 인물이다. 그런 인물이 스님에게 “어느 날에 등반하여 좋아하며 서로 만나느냐”고 그리움과 애정을 담아 시를 보낸 것이다. 

조선이 유교를 국시로 하면서 자연스럽게 불교를 등한시 한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러나 불교는 생활이념이 사회 윤리라기보다, 인간의 정신적 수양이기에 어느 시대에도 신봉되지 않을 이유가 없었던 것 또한 사실이다. 때문에 조선에서도 건국 초기부터 스님들 도움으로 국가의 안정을 구하려 했던 국왕들은 그들을 국사로 예우한 경우가 있었고, 간경도감을 두어 내외 경전을 번역함에 있어서도 스님들의 힘을 빌렸었다.

정도전을 비롯한 유가의 인물들이 스님들에게 시를 보내며 교유한 것도 그 연장선상이라 할 수 있다. 이 책 ‘조선조 유가가 승려에게 준 시’는 표면적인 배불과 관계없이, 유생들이 스님들에게 보낸 시를 중심으로 지식인의 이면을 살펴볼 수 있다. 이종찬 동국대 명예교수가 시대 순에 따라 유생들의 문집에 수록된 것을 임의로 수습했다.  

저자는 “조선 중기에 있어서는 유불의 구별을 의식할 수 없을 만큼 시 자체로서의 수답이었다. 이것은 어쩌면 조선 중기의 문풍 진작의 일환이 아닌가 생각 된다”며 그 수가 적지 않음을 밝혔다. 대표적으로 동악 이안눌의 ‘동악집’에 스님들 이름이 무려 100명에 가까울 정도이고, 시 편수로는 몇 백 편에 달했다. 인물이나 교리를 떠나서 시는 시로서 만족한 작자의 문학관이 반영된 결과라 할 수 있다.

이안눌이 범어사 혜정 스님에게 쓴 “구름 골짜기 깊고 깊어 소나무 길도 희미한데/ 멀리 스님 사원을 찾아 맑은 시내를 건너다/ 도인께서 나를 맞아 바위 머리에 앉으니/ 숲의 새 두세 곡조에 산의 해는 서쪽이네”가 그렇고, 조선 성종과 중종 때 예조·공조·병조판서를 지낸 김안국이 조우 스님에게 보낸 “풀 암자 싸늘한 달 상상하니 알연한데/ 지난 밤 그대 만나 좋은 인연 이야기 했지/ 오늘 절구 시 한 수로 소식을 전하게 되니/ 이제 알겠네, 일만 흐름이 같은 냇물임을(밤에 스님 꿈을 꾸고 아침에 시를 얻었기에 한 말이다)” 등이 그렇다.

저자는 정도전을 비롯해 권근, 신숙주, 서거정, 김종식, 김시습, 박상, 이행, 주세붕, 임억령, 양사언, 황정욱, 이이, 임제, 허봉, 이안눌, 김정희 등 모두 27명의 유생들이 스님들에게 보낸 시를 골라 번역하고, 인물별 간략한 소개와 함께 어느 스님에게 보냈는지를 출처와 함께 밝혔다. 의미 분석이나 감상은 독자의 몫이다. 2만5000원.

심정섭 전문위원 sjs88@beopbo.com

 

[1498호 / 2019년 7월 24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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