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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당한 법의 적용

기자명 박사
  • 법보시론
  • 입력 2019.07.22 14:01
  • 수정 2019.07.23 09:34
  • 호수 1498
  • 댓글 0

지난 7월 초, 광주에서 한 괴한이 모녀만 있는 집에 침입했다. 50대 여성을 성폭행하려던 남자는 저항하는 피해자를 정신이 잃을 때까지 구타하고 8살 초등학생을 강간하려 했다. 아이가 도망쳐 신고한 덕에 잡힌 그는 발에 전자발찌를 차고 있었다. 성범죄를 포함한 전과 7범. 2026년까지 전자발찌 착용 대상자였다. 충격적인 것은, 경찰이 올 때까지 범인은 도망치지 않고 오히려 큰소리를 치고 있었다는 것이다. 성폭행을 못한 미수범이니 잡혀도 금방 출소할 거다, 그가 주장한 내용이었다. 

그 기사를 보니 지난해 10월의 살인사건이 떠올랐다. 전처를 살해한 남자는 4년 동안 다섯 번이나 거처를 옮기는 피해자를 악착같이 찾아다니며 “죽여도 6개월이면 나올 수 있다”고 공공연히 떠들었다. 범죄자들이 처벌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두려워하는 것은 일반 시민이다. 뉴스 게시판에는 “이것이 그동안 얼마나 성범죄자들에게 안일한 판결을 내렸는지 보여주는 증거다” “법이 약해서 아무도 안 지킨다. 화난다”는 댓글이 줄을 잇는다. 

경찰청 통계를 보자. 불법촬영범죄는 2011년에서 2017년까지 4배로 늘었다. 방송국을 대표하는 얼굴인 중년의 남자 앵커부터 당진의 중학교 3학년 남학생까지 사회적 지위고하, 나이를 가리지 않고 광범위하게 일어나는 범죄다. 일회성도 아니다. 당진의 중학생이 불법촬영하고 그 사진을 음란물과 합성해 인터넷에 유포한 건 중학교 1학년 때부터였다. 지난 6월에 서울시 시민 1500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결과에는 사람들의 불안감이 짙게 반영되어 있다. 응답자의 69%가 불법촬영을 불안해한다. 여성의 경우는 80%에 달한다.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일까. 한국여성변호사회 온라인 성폭력 연구팀이 2011년에서 2016년까지 1심, 항소심, 상고심 판결문 1866건을 분석했다. 그중 징역형을 선고받은 사례는 약 5%, 벌금형이 72%, 집행유예 15%, 그리고 선고유예가 7%였다.  “성폭력 처벌법 제 14조 카메라 등을 이용해 촬영할 경우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의 벌금을 부과”할 수 있다. 그러나 법의 집행은 사람들이 체감할 만큼 충분히 정의롭지 못하다. 

지난해 8월 자신의 여자친구를 때려죽인 남자는 피해자가 죽었음에도 불구하고 집행유예로 풀려났다. “피고인과 피해자가 주고받은 문자메시지등을 보면 이들이 진심으로 사랑한 사이였음을 알 수 있다”는 게 양형 이유다. 남자가 여자를 때린 이유는 “다른 남자에게 관심을 보이는 것 같아서”였다. 피해자의 불륜을 의심해 벌인 범죄에는 특히 너그럽다. “초범이고 경미해서” “깊이 반성하고 있어서” “성실히 살아왔으므로” “평생의 직장을 잃게 되므로” 등 용서의 이유는 폭넓고 다양하다. 범죄자의 층이 폭넓고 다양한 만큼이나. 

부처님은 라자그리하 주변의 비구들을 모이게 한 뒤 “어떻게 하면 비구들의 승단이 번영하고 멸하지 않을까”에 대해 설법하셨다. 부처님은 일곱 조목을 꼽았는데, “자주 모여 올바른 도리를 서로 말한다” “선배와 후배가 사이좋게 지내고 존경하며 다투지 않는다”와 같은 항목과 함께 “법을 우러르고 계율을 분별하며, 제정된 계율을 지킨다”는 조목을 들었다. ‘유행경’에 나오는 이야기다. 부처님이 서로 간의 충분한 배려와 소통 외에 ‘법’을 언급하신 이유는, 모두가 인정하는 합당한 법이 작용할 때 공동체는 안정을 찾는다는 단순명료한 진리 때문이었을 것이다. 이에는 이, 코에는 코의 악착같은 정신으로 범죄자를 벌하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미약한 처벌은 끊임없는 메시지를 내보낸다. 범죄를 저질러도 괜찮다는. 모든 게 연결되어있는 이 세상에서, 사람들은 수많은 메시지를 주고받고 그에 영향을 받는다. 자신의 욕망과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저울질한다. 이 사회가 “번영하고 멸하지 않”는 것까지는 바라지도 않는다. 범죄를 저지를 염을 내지 않는 사회에서 살고 싶다.

박사 북칼럼니스트 catwings@gmail.com

 

[1498호 / 2019년 7월 24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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