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5. 설일체유부와 세친의 언어관 ①
75. 설일체유부와 세친의 언어관 ①
  • 김재권 교수
  • 승인 2019.07.22 15:37
  • 호수 149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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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문장, 음소 바라보는 관점 따라 견해 달라져

유부는 실체적 존재로 인정
세친은 모두 음성으로 간주
유부는 오온 중에 행온 주장
세친은 모두 색온 포함시켜

설일체유부는 일체의 현상을 ①물질적 현상(色法), ②마음(心法), ③심리적 작용(心所法), ④심불상응행법, ⑤무위법 등의 5가지 범주(五位)로 설명한다. 이 5가지 범주는 ‘실체적 존재(實有, dravya-sat)’로서 각각 고유한 본질이나 작용을 지닌 것으로 본다. 이 가운데 ④심불상응행법은 유부의 독특한 관점을 보여주는 범주로서 세친의 비판의 표적이 된다. 사실 세친은 유부의 5가지 범주 가운데 심불상응행법과 무위법을 실체적 존재로서 인정하지 않는다. 세친은 이 2가지 범주를 ‘명칭적 존재(假有, prajñapti-sat)’로서 분류한다.

유부는 이름을 ‘명(名, nāman)’으로, 문장을 ‘구(句, pada)’로, 음소를 ‘문(文, vyañjana)’으로 부르고, 이들의 집합체라는 의미로 ‘명신(名身, nāmakāya)’  ‘구신(句身, padakāya)’ ‘문신(文身, vyañjanakāya)’이라고 칭하여 이들을 심불상응행법 가운데 포함시킨다. 반면에 세친은 이름, 문장, 음소들은 말을 자기본질로 삼기 때문에 음성에 지나지 않는다고 보아, 이들을 색법에 포함시킨다. 이러한 유부와 세친의 견해 차이는 ‘구사론’ 계품의 다음과 같은 설명에서 확인된다. “대무니(Muni)께서 널리 펴신 8만 법온(法蘊, dharmaskandha)은 ‘소리(言音)’이거나 ‘이름(名)’에 의지하는 것으로 ‘색온’ 또는 ‘행온’ 안에 포함된다. ‘붓다의 교설은 그 자성(自性)에 있어서 소리(言音)이다’라고 말하는 스승들은 법온을 색온에 포함시키고, 붓다의 교설을 ‘이름(名)’으로 보는 사람들은 법온을 행온에 포함시킨다.”

여기서 붓다의 교설을 소리로 보는 입장은 세친으로 ‘법온’을 ‘색온’에 포함시키고, 반면에 붓다의 교설을 이름으로 보는 입장은 유부로 ‘법온’을 ‘행온’에 포함시키고 있음이 확인된다. 이는 법온을 오온의 범주 속에 포함할 때의 분류이고, 법온을 오위의 범주 속에 포함시키면 위에서 말한 것과 동일하게 된다. 즉 법온을 세친은 색법으로 유부는 행온의 일부인 심불상응행법으로 분류한다. 한편 ‘구사론’ 근품에서는 더욱 자세하게 유부와 세친의 구체적인 입장이 기술되어 있다. 다만 세친의 관점에서 유부의 언어이론을 먼저 단편적으로 소개하고 다시 자신의 입장에서 비판하는 형식으로 짧게 기술하고 있다. 이런 점에서 유부와 세친이 취하는 언어이론의 전모를 파악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예를 들면 유부는 ‘명(名, nāman)’을 ‘이름’으로 정의하고, ‘색(色, rūpa)’이나 ‘음성(śabda)’ 등을 이름의 예로 드는데, 이러한 ‘이름’이 ‘심상(心象)을 만드는 수단(saṃjñākaraṇa)’이라고 보며, 이러한 이름의 집합을 ‘명신’이라 지칭한다. ‘구(句, pada)’는 ‘문장’으로 정의하고, ‘anityā bata saṃskāra(아! 諸行無常)’ 등을 예로 든다. 즉 전달하고자 하는 의미내용이 완전히 표명된 것(artha-parisamāpti)을 문장이라 하고 있다. 또한 이러한 문장에 의해서 작용·속성·시제 등의 특수한 관계가 이해된다고 한다. ‘문(文, vyañjana=음소)’은 자·모음이라고 하며, ‘a’ ‘ā’ 등을 예로 들고 있다. 이러한 유부의 ‘명·구·문’에 대한 설명 가운데, 세친은 자·모음들은 문자(lipi)를 구성하는 여러 요소의 이름들이 아닌가? 라는 문제를 제기한다. 

유부와 세친의 견해 차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언어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일반적으로 언어의 의미론은 언어와 문자, 언어(또는 문자)와 이름, 이름과 대상의 관계로 분석된다. 즉 언어의 의미론은 언어와 의미의 관계로 요약된다. 언어의 목적은 화자와 청자 사이 의사소통을 하는 것으로 말소리를 매개로 청자는 화자의 뜻을 이해하는 것이다. 말은 단순한 소리가 아니라 대상을 지시하며 이 둘의 관계를 의미라고 한다. 본질적으로 말과 글은 동일한 것으로 간주된다. 

김재권 능인대학원대학교교수 marineco43@hanmail.net

 

[1498호 / 2019년 7월 24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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