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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보살과 금수저

기자명 법장 스님

우리 모두는 본래 보살이고 금수저이다

남을 동경하듯 말하는 금수저
성공한 결과만을 동경하는 말
선행도 동경에 그치면 남의 것
보살행 항상 실천해야만 보살 

요즘 예능프로나 미디어 등에서 ‘금수저’와 ‘흙수저’라는 표현을 쉽게 들을 수 있다. 처음 들었을 때는 다소 낯설고 거부감이 있었으나 이 표현이 지금 우리 사회를 대변하는 것만 같아서 매번 들을 때마다 다소의 불편함과 안타까움이 생겨난다. 그런데 이 표현을 사용하는 경우를 잘 살펴보면 자신에게 ‘금수저’라고 말하는 사람은 거의 보지 못했다. 항상 남의 일상이나 직업 등을 보며 부러움 섞인 듯한 느낌으로 상대방을 ‘금수저’라 하고 그렇지 못한 자신은 ‘흙수저’라고 하며 스스로를 낮추고 가엾게 본다. 이렇게 자신보다 남의 것을 더 부러워하고 동경하는 표현은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엄친아’, ‘엄친딸’로 대표되었다가 지금은 보다 물질적인 것을 포함한 ‘금수저’로 발전된 것이다.

왜 우리 사회에 이런 표현들이 당연하게 사용되고 누구나가 아는 것이 되었을까? 보다 많은 것을 경험할 수 있고 알아볼 수 있는 현대사회가 되었음에도 ‘성공’이라는 것에 대한 갈증과 불만족은 더욱 심해지고 SNS 등에서 접하는 다른 사람들의 일상은 항상 화려해 보이기에, 그렇지 못한 자신을 더욱 초라하게 바라보고 더 나아가 가족들을 탓하기에 여기까지 이르게 된 것이다. ‘성공’이란 단순히 원하는 것을 살 수 있고 여러 나라를 여행 다니고 물질적인 풍요로움이 가득 찬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적어도 우리 모두에게는 바라는 것이 있고 이상적인 삶에 대한 꿈이 있다. 우리가 미소 짓고 행복함을 느낄 때는 그러한 바람과 꿈에 다가서고 눈앞에 펼쳐질 때라고 생각한다. 그렇기에 그것들을 혹시라도 놓치거나 멀어지게 되면 스스로에게 화를 내기도 하고 장애를 극복하고 다시금 그것들에 다가서기 위해 땀을 흘리는 것이다.

불교에서는 수행자의 완성을 부처와 보살로 보고 있다. 이 중 ‘보살’은 우리 곁에서 더불어 살며 함께 공감하는 존재이기에 대승불교에서는 이 보살로서의 삶을 최고의 수행자로 본다. 이런 보살의 기본 자질을 갖추기 위해서는 ‘보살계’를 받아야 한다. 현수법장 스님은 ‘범망경보살계본소’에서 이 보살계를 받을 수 있는 사람을 구분하며 ‘보살종성(菩薩種性)’을 갖춘 자만이 보살계를 받을 수 있다고 말한다. ‘금수저’와 같이 태어날 때부터 보살의 자질을 가지고 태어난 사람을 가리키는 듯한 표현이다. 그러나 ‘보살종성’의 해석에서 누구나가 보살이 될 수 있으나 그것을 실천하는 사람만이 보살종성으로서 보살계를 받는다고 한다. 즉 불교 수행자의 완성인 보살은 그 성품을 가지고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보살이 될 수 있다는 마음과 그것을 실천하는 행동에 의해서 만들어지는 것이다. 

이러한 신분에 대한 설명은 ‘숫타니파타’ 제3장 대품의 650송에서도 자세히 나와 있다. “바라문은 태생으로 결정되는 것인가”에 대한 ‘바셋타’의 질문에 대해 부처님께서는 “태생에 의해 바라문이 되는 것이 아니다. 태생에 의해 바라문이 안 되는 것도 아니다. 행위로 인해 바라문이 되기도 하고 행위로 인해 바라문이 안 되기도 하는 것이다”라고 말씀하신다. 

즉 보살이나 바라문이나 그러한 집안에 태어나서 신분을 얻을 수도 있으나 그 자신의 행위에 의해 그것을 잃을 수도 있는 것이고 또한 그러한 신분으로 태어나지 않았더라도 자신의 행동과 노력에 의해 누구라도 그 신분을 얻을 수 있는 것이다. 소위 말하는 ‘금수저’로 태어났을 수도 있으나 그것만을 믿고 노력하지 않는다면 ‘금수저’가 정말 ‘흙수저’가 될 수도 있다. 또한 지금은 자신이 부족하고 힘들지만 부단히 무언가의 목표를 향해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가다보면 언젠가는 반드시 그것에 도달하게 될 것이고 그 때야말로 진정한 ‘금수저’가 되는 것이다.

우리 모두는 보살이고 ‘금수저’이다. 다만 지금은 그곳을 향해 나아가고 있을 뿐이고, 오늘 하루 동안에 겪은 수많은 일들은 우리를 한 걸음 나아가게 해주는 디딤돌이다. 발밑만을 보고 가다보면 많은 풍경들을 놓치게 된다. 자신 앞에 펼쳐진 많은 일들을 바르게 바라보고 경험하며 행복으로 한 걸음씩 나아가자.

법장 스님 해인사승가대학 교수사 buddhastory@naver.com

 

[1498호 / 2019년 7월 24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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