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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 키팅 선생의 직관

기자명 김정빈

“YWAP이라 외쳐라! 직관과 체험 문 열린다”

‘죽은 시인의 사회’ 시 담당교사
내성적인 학생에 ‘YWAP’ 요구
“생각하지 말고 외쳐라” 다그쳐
‘YWAP’은 야성적인 울부짖음
‘생각 일어나기 이전’과 맥 같아

그림=육순호
그림=육순호

우리나라의 교육열이 뜨겁다는 것은 외국인들에게도 널리 알려져 있지만, 미국인들의 명문대학에 대한 선망은 그보다 훨씬 더 강하다고 해야 한다.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는 명문대학 진학을 제일목표로 삼고 있는 웰튼 아카데미라는 고등학교를 배경으로 스토리를 전개하고 있다.

미국의 동부에는 소위 ‘아이비리그’라 불리는 여덟 개의 명문대가 있는데 웰튼 아카데미에 입학한 학생들의 목표는 그 학교에 진학하는 것이다. 문제는 그것이 학생 스스로의 선택이라기보다는 학교와 학부모들의 선택이라는 데 있다. 학교는 그동안 웰튼 아카데미가 많은 학생들을 아이비리그에 입학시킨 전통을 자랑스러워했고, 학부모들은 그런 학교의 성과를 신뢰하는 입장에서 자녀들을 그 학교에 보냈다.

영화는 이런 분위기의 학교에 키팅이라는 문학 교사가 부임해 오면서 시작된다. 존 키팅이라는 이름을 가진 그 교사의 관점은 남다르다. 학생들과의 첫 만남 시간에 그는 한 학생으로 하여금 그들이 배울 ‘시의 이해’라는 교과서의 서문을 읽게 하는데, 거기에서 저자인 에반스 프리차드 박사는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시를 완전하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음운, 음률, 비유를 이해하라. 그리고 두 가지 질문을 하라. 첫째는 표현의 완성도, 둘째는 대상의 중요도. 시의 완성도를 가로축에 놓고, 시의 중요도를 세로축에 놓아볼 때, 바이런의 시는 중요도는 높지만 완성도는 보통을 넘는 정도이며, 셰익스피어의 소네트는 두 면에서 모두 높다고 볼 수 있다.”

여기까지 읽게 한 다음 키팅 선생은 “쓰레기! 이것이 프리차드 박사에 대한 나의 견해이다”라고 단언한다. 이어서 그는 “시는 재는 것이 아니다”라고, 인간에게 의학, 법률, 경제, 기술 등은 인간에게 생계를 유지하는 수단이지만 이에 비해 시, 미, 낭만, 사랑은 삶의 목적이며, 인간이란 마땅히 한 편의 시가 되어야 한다고 가르친다.

하지만 이 같은 키팅 선생의 견해는 그야말로 ‘낭만적’인 것이었다. 그의 말이 틀렸다는 것이 아니라 그의 말은 맞지만 현실이 그와 다르다는 뜻이다. 그의 말대로 시(예술)는 가로축과 세로축으로 그려 평가할 수 있는, 즉 좌뇌가 담당하는 논리적, 이성적, 관념적인 영역의 인간활동이 아니다. 그것은 우뇌, 또는 전뇌가 담당하는 직관적, 감성적, 체험적인 영역에서의 인간활동인 것이다.

뇌과학자들은 이 두 영역 중 우뇌가 주인이며 좌뇌는 심부름꾼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현실에서 벌어지는 상황은 그 반대이다. 심부름꾼인 좌뇌가 우뇌를 판단하고 이끌어가는 것이 우리가 사는 현대 사회이다. 이렇게 하여 현대인은 삶 자체, 경험 자체, 실존 자체로부터 소외되어 버렸다.

이 점을 키팅 선생은 다른 기회에 다른 방식으로 보여준다. 자작시 낭송 시간에 어떤 학생은 시를 짓지 못하고, 다른 어떤 학생은 간단한 한 줄짜리 시를 발표한다. 마침내 주인공인 토드 앤더슨의 차례. 키팅 선생은 토드에게 휘트먼의 싯귀인 “나는 외친다. 나의 야성적인 YWAP을, 이 세상 지붕 꼭대기에서”를 인용하면서 토드의 내면에 야성적인 YWAP을 끌어내고 싶어 한다.

키팅 선생은 YWAP이란 ‘야성적이고 커다란 울부짖음’이라면서, 토드 앤더슨으로 하여금 YWAP을 외쳐보라고 요구한다. 하지만 내성적인 토드는 우물쭈물하며 기어들어가는 소리로 “YWAP”이라고 말할 뿐인데, 이에 키팅 선생은 토드를 몰아붙이며 YWAP을 외칠 것을 요구하고, 마침내 토드는 조금 더 큰 소리로 “YWAP!”이라고 말한다. 

키팅은 거기에서 멈추지 않고 교실에 걸려 있는 휘트먼의 사진을 보고 어떤 것이 연상되는지를 ‘생각하지 말고’ 말할 것을 요구한다. 이에 대해 토드가 “미친 사람”이라고 말하자 키팅 선생은 어떤 종류의 미친 사람인지를 다그치듯 묻는데, 여기서 중요한 점은 그가 다시 한 번 더 ‘생각하지 말고’ 말하라고 하는 점이다.

이 특별한 선생은 학생의 눈을 감게 한 다음 보이는 것을 말하도록 재차 몰아붙인다. 이에 토드는 미친 시인이 땀에 젖어서 이를 드러내며 자신의 뇌를 노려보고 있다고, 그가 손을 뻗어 내 목을 잡는다고, 그러면서 진실을 중얼거린다고 말하더니, 마침내 “진실은 발을 차갑게 하는 이불 같은 것”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마침내 토드의 내면에서 YWAP이 폭발한다. 그는 좌뇌가 담당하는 논리와 분석의 영역으로부터 우뇌가 담당하는 직관과 체험의 세계로 옮겨오는 것이다. 이것은 그가 웰튼 아카데미라는 주입식 교육의 장으로부터 실존과 체험이라는 삶의 장으로 옮겨왔음을 뜻하며, 그 영역에서 그는 한 사람의 시인이 되어 “잡아당겨도 늘어뜨려도 이불은 부족합니다. 무슨 수를 써도 그 이불은 우리를 덮어주지 못합니다. 울면서 태어난 날부터 죽음으로 떠나는 날까지 울고 절규하고 신음하는 우리의 얼굴만을 덮을 겁니다”라고 말하기에 이른다.

키팅 선생이 유도하고 토드 앤더슨이 도달한 이 영역에서의 놀라운 시적 진술은 학생들에게 충격적인 일로 다가가게 된다. 처음에는 토드를 비웃던 아이들이 마지막 장면에 이르러서는 큰 박수로서 토드를 칭찬하며, 토드 자신도 이 경험이 계기가 되어 아버지와 교육 시스템에 의해 강제당하던 수동적이고 소극적인 상태에서 보다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학생으로 거듭나게 된다.

이 영화에는 이 장면 말고도 다른 많은 명장면들이 많다. 하지만 불교인의 입장에서 필자는 키팅 선생이 토드 앤더슨을 몰아붙여 시적 진술을 하게 하는 이 장면을 특히 유념하게 되는데, 그것은 이 장면이 말하는 바가 선(禪) 내지 명상 수행과 깊은 관련이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키팅 선생은 토드 앤더슨에게 ‘생각하지 말고’ 말할 것을 요구하는데, 이것은 선수행에서 강조되는 ‘한 생각 일으키기 이전’과 완전히 같다. 그렇다면 ‘한 생각 일어나기 이전’에서 인식은 어떠한가. 그 인식이 바로 직관이며, 인간의 삶은 이 직관의 상태에서 행해지고 경험된다. 부처님의 12연기론은 그것을 ‘촉(觸)’이라 부르거니와 이 촉의 단계를 지난 다음에라야 느낌(受), 판단(想)을 거쳐 희비애락, 즉 일체 고뇌(老死)가 전개되는 것이다.

한 생각 일어나기 이전은 불교가 출발점으로 삼는 고(苦)가 출발되기 이전 자리이다. 그 자리로 돌아가 삶의 한복판에 뛰어들어 한 사람의 시인, 또는 선자(禪者)가 되는 것은, 불교인은 물론 모든 사람이 마침내 되어야 하는 진정한 삶의 목표임을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를 통해 다시금 확인하게 된다.

김정빈 소설가 jeongbin22@hanmail.net

 

[1498호 / 2019년 7월 24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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