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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복덕(福德)과 공덕(功德)

기자명 현진 스님

복덕‧공덕은 범어 ‘뿐야스칸다’서 유래한 같은 의미

굶주림 무릅쓴 난타 등공양
깨달음을 이끈 공덕 됐지만
양무제의 공양은 과보 될 뿐
공양에 따라 공덕여부 달라

부처님께서 기원정사에 계실 때 국왕을 비롯한 많은 이들이 정성어린 공양을 올렸다. 특히 기원정사를 환히 밝히는 고관대작들의 화려한 공양등불은 이를 지켜보는 가난한 여인 난타에겐 부러움을 넘어 안타까운 마음까지 들게 하였다. ‘나는 전생에 무슨 업보를 지었기에 부처님을 뵙고도 등 하나 공양할 수 없을까.’

하루 구걸하여 하루를 먹고사는 난타는 그날 온종일 구걸한 한 푼의 돈으로 주림을 해결하는 대신 부처님께 등불공양으로 올릴 기름을 사러 갔다. 구걸하던 노파가 기름을 사러온 것을 이상하게 여긴 기름가게 주인은 그 사연을 듣고 감동하여 두 푼 어치가 넘는 기름을 주었다. 난타는 그 기름으로 정성껏 등불을 만들어 기원정사의 부처님 계신 곳 언저리 화려한 등불들 한 켠에 공양을 올렸다.

자정이 지나고 새벽녘의 동이 터올 때쯤 이런저런 모든 등불들이 사그라들거나 아예 꺼져버렸으나 오직 난타의 자그마한 등불만이 더욱 밝게 빛을 발하고 있었다. 이를 이상히 여기는 아난에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아난아! 그 등불은 한 가난한 여인이 간절한 정성으로 켠 것이기에 아직까지도 그리 밝은 것이니라. 설령 네가 그 등불을 입으로 불어 끄려 해도 끌 수가 없을 것이니, 그 여인이 굶주림을 무릅쓰고 밝힌 정성이기 때문이다. 그 여인이 지금은 비록 가난한 노파지만 이 공양이 인연되어 마침내 깨달음을 이루어 수미등광여래가 될 것이다.”

중국 양나라 보통 8년에 달마대사가 남해 땅에 이르자 광주자사가 영접을 나왔고, 이내 양무제를 궁중에서 대면하는 환대를 받았다. 그 자리에서 양무제가 “짐이 즉위한 이래 오늘까지 절을 짓고 스님들께 공양하며 경전을 펴내고 불상을 조성하길 그 수를 헤아릴 수도 없이 했는데, 이 정도라면 그 공덕이 얼마나 되겠습니까?”라고 묻자 달마대사가 “아무런 공덕도 없습니다”라고 답하였다. “어째서 아무런 공덕도 없다는 겝니까?” “그런 일은 이 중생세간에서 그저 또 다른 과보를 짓는 일이니, 그 역시 생사의 윤회를 만드는 것일 뿐입니다. 이는 마치 형태를 따르는 그림자가 있기는 하나 그 그림자는 실체가 없는 것과 같습니다.” “그렇다면 어떤 것이 참된 공덕입니까?” “본체가 맑고 공적(空寂)한 지혜를 얻어야 합니다. 이런 지혜는 세속적인 일을 많이 한다고 하여 얻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다소 예상치 못한 답변에 당황한 양무제는 다른 한두 가지를 더 질문하였으나 이미 어긋난 대화는 결국 양무제로 하여금 인도로부터 건너와 선(禪)에 기반해 진정한 불교를 일으킬 달마대사를 제 스스로 북방의 낙양 땅으로 쫓아버리는 실수를 저지르게 하였다. 그 일이 있은 직후 역시 인도에서 건너와 있던 지공화상이 달마대사가 왔다는 소리를 듣고 양무제를 찾아와 달마대사가 어떤 사람인지 일러주자 무제는 이내 증사 조광문을 보내 다시 모셔오려고 하였다. “황제시여! 그는 이제 조광문이 아니라 이 나라 사람 모두가 다 달려가 청해도 결코 돌아오지 않을 것입니다.”

굳이 불교가 아니라도 흔히 쓰는 말인 공덕과 복덕은 경전에서도 그 의미가 구분되어 쓰이지는 않는다. 겨우 구마라집 스님의 한문번역본 ‘금강경’의 후반부에 들어 구분되어 쓰이는 듯 보이지만, 그 경우도 원문인 범어는 모두 ‘뿐야스칸다(puṇyaskandha)’로 동일하다. 그러나 동일하게 공덕 혹은 복덕으로 표현된다 하더라도 가난한 여인 난타의 등불공양이 갖는 결과와 양무제의 팔만사천 공양이 갖는 결과는 분명 같지 않다.

공양의 행위가 그저 사바세계의 또 다른 업보를 지을 뿐인 것과, 이 사바세계를 벗어나 서방정토 나아가 모든 괴로움을 여읜 해탈에 이르게 하는 것, 이 둘로 공양은 분명히 구분될 수 있다. 물론 어느 쪽을 추구해야 될지는 불문가지(不問可知)일 것이다.

현진 스님 봉선사 범어연구소장 sanskritsil@hotmail.com

 

[1498호 / 2019년 7월 24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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