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길과 암자에서의 깨달음 ② - 진광 스님
14. 길과 암자에서의 깨달음 ② - 진광 스님
  • 진광 스님
  • 승인 2019.07.22 17:44
  • 호수 1498
  • 댓글 1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이제 마음을 다 쉬었느냐?” “네! 그렇습니다” 

수덕사 주지였던 은사스님 시봉때
다짜고짜 인사올리고 만행길 나서
낙산사, 경포대, 영월, 정암사 길엔 
전생 그 언젠가 봤던 풍광 이어져

중도 소도 아닌 몰골로 온 제자에
은사 스님 “중노릇 잘 하게” 격려 
그림=허재경

누구나 한 번 쯤은 자신이 가는 길이 옳은 것인지 의문과 회의가 들 때가 있는 법이다. 스님들에게는 4년이나 9년 차에 한 번씩 그런 일이 종종 생겨난다. 잠시 지나가는 바람처럼 흘러 지나가기도 하지만 심한 홍역이나 열병을 앓기도 한다. 그럼 지체 없이 길을 나서 만행을 떠나 보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리라.

어느 해인가 내게도 그런 날이 시나브로 찾아왔었다. 아니 예정된 인연이었다고 하는 게 맞을 것이다. 무릇 모든 일은 그럴만한 연유가 있게 마련이다.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니나’란 소설의 첫 문장인 “행복한 가정은 다 비슷하지만, 불행한 가정은 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는 법이다”라는 글처럼 말이다. 그 또한 더 큰 깨달음을 위한 일종의 통과의례가 아닐까 생각한다.

어쨌든 그해의 어느 봄날, 나는 무슨 이유인지 몰라도 무작정 홀로 길을 나섰다. 다시 돌아오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비장한 마음으로 만행 길에 오른 것이다. 처음으로 내가 선택한 곳은 강원도 양양 낙산사와 낙산 해수욕장이었다. 그곳은 중고등학교 재학 시절 자주 갔던 곳이다. 어쩌면 이문열의 소설 ‘젊은 날의 초상’의 주인공과 같은 심정을 느껴보고 싶어서였을 거다.

가끔 수덕사 주지 소임을 사시던 은사 스님을 시봉할 적에 다짜고짜 주지실로 쳐들어가 어리둥절하는 스님께 삼배를 드린다. 그리고는 “마음이 싱숭생숭 해서 동해 바다라도 보고 올랍니다”라고 말하면 스님께서는 “그리 다녀와도 마음이 안정이 안 되면 놀러간 것 밖에 더 되느냐?”고 힐문하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해 바다에 가서 파도에게 팔뚝질이라도 하고 올랍니다”라고 말하고는 차비를 받아 다녀오던 기억 때문일지도 모른다.

양양 낙산사에서 시작해 하조대, 경포대, 삼화사와 무릉계곡, 월정사와 상원사를 거쳐 영월의 김삿갓 묘지와 청령포, 아우라지 강, 몰운대, 정암사 등으로 만행길은 이어진다. 그런데 평소에는 그리 눈을 씻고 찾아보아도 볼 수가 없는 스님네가 왜 그리 자주 보이는지 도무지 알 수 없는 노릇이다. 숲에서 나오니 비로소 숲이 보이는 형국이 아닌가 생각된다. 승가와 스님네의 심보가 싫어서 나선 길에 도리어 스님네를 우연찮게 자주 만나는 것은 그 또한 무슨 깊은 뜻이 있으리라는 생각이 든다. 게다가 사찰이며 암자에 가면 더욱 애틋한 그 무엇이 항상(恒常)하니 이 또한 알 수 없는 노릇이다. 아마도 전생 그 언젠가 이곳에서 산 듯한 그런 마음이 절로 드는 것이 신통방통하기만 하다. 시장이나 건설현장 혹은 농사지으시는 세간 보통 사람들의 고단하고 힘겨운 삶을 새삼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산속에 거(居)하며 그런 중생들의 노고가 깃든 공양물을 너무나 당연하다는 듯이 쉽고 아무런 생각 없이 소비만 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하는 참회와 성찰을 하게 되는 것이다. 처음 보는 낯선 이에게 기꺼이 자신이 가진 것을 아낌없이 나누는 모습에서 눈물이 날 정도로 고맙고 감사한 마음이 드는 것이다. 만행은 말과 글이 아닌 몸으로 직접 배우는 귀한 시간이다.

사람들은 길과 자연과 사람들 속에서 부딪치며 무언가를 몸으로 배워간다. 옛날에 금강산 마하연 선원에서 한 철을 난 수좌는 다음 철에 범어사나 해인사에 방부를 드리려 한다. 그러면 해제철에 전국을 떠돌며 만행을 하면서 탁발 등으로 자기 먹을 식량을 구해 갔다고 한다. 그 만행 중의 공부가 도리어 삶과 수행, 그리고 깨달음에 있어서 더 없이 소중하고 의미가 있을 수도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해 위로 진리를 구하는 마음과 아래로 중생을 교화하는 자비보살행이 차제적인 것이 아니라 동시적이고 상호보완적으로 함께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 까닭에 결제와 해제가 둘이 아니고 청산과 백운이 본래 하나가 되어야한다. 본시 수행자가 수행이 좋은 것은 익히 알거니와 밥 얻어먹기 어려운 것은 알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이렇듯이 항산(恒産)이 있는 곳에 항심(恒心)이 있기 마련이니 부디 진중(珍重)하여 그르쳐가지 말아야(막착거·莫錯去) 할 것이다.

만행길은 강원도를 지나 경북과 충북을 지나 다시 경상도와 전라도 해안을 따라 남도지방으로 이어진다. 이른바 지금부터는 유홍준의 ‘나의 남도문화유산 답사기’ 코스인 것이다. 길을 떠난 지 이미 한 달여 지났으니 마음은 조금 수그러들었건만 익숙한 일상에 그 날이 그 날인 듯한 느낌이다. 

부산에서 김해를 거쳐 진주와 남해, 그리고 통영을 거쳐 하동에서 섬진강을 지나 구례로 들어서면 전라도이다. 그 곳에서 여수 향일암과 흥국사를 지나 조계산 송광사와 선암사를 보고는 벌교와 강진, 완도와 해남으로 이어진다. 해남 대흥사와 진도 쌍계사를 보고는 땅끝마을과 보길도까지 둘러본다. 그리고 다시 북상해 화순 운주사와 조광조 적려지 그리고 5·18 망월동 묘지를 참배하고는 담양의 정자와 장성 백양사와 운문암을 거쳐 정읍에 이르는 것이다.

고창 선운사와 도솔암, 그리고 미당 서정주의 질마재를 지나 전나무 숲길로 유명한 내소사와 해안선사 부도탑에 참배하고 근처 곰소란 작은 포구의 허름한 여인숙에 다다랐다. 그제서야 두 달여 만에 비로소 마음이 쉬어지고 가야할 길이 마침내 조금씩 윤곽을 드러낸다. 오랜 벗이 보내온 이메일 속의 문수보살 게송과 지난 두어 달의 번민과 절망 속에서도 성찰과 모색을 다한 결과인 것이다. 이제는 미련 없이 만행을 접고 내가 있어야 할 곳으로 돌아갈 때다.

두 달여의 만행으로 인해 머리와 수염이 덥수룩하고 몰골은 말이 아닌 상태다. 그렇게 중도 소도 아닌 모습으로 돌아온 내게 은사 스님은 “이제 마음을 다 쉬었느냐?”고 물으시기에 “그렇습니다”라고 하니 아무 말 없이 다만 “그럼 됐네. 이제 삭발하고 밥부터 먹고 중노릇 잘 하시게나!”라고 말씀하신다. 그 한마디에 왈칵 눈물이 흐르며 통곡이라도 하고 싶은 심정이다. 그때 그 시절, 그 질풍노도의 시기에 우리 스님의 다정한 한마디 말과 모든 것을 아는 듯한 가없는 미소를 보이시며 늘 믿고 응원해 주셨기에 지금의 내가 있는 것이리라.

앞으로도 그 언젠가 또 무언가를 찾아 무작정 길을 나설지도 모른다. 이젠 스님도 아니 계시니 그 길 위에서 만나는 자연과 사람들이 나를 위해 무언의 설법을 해 줄 것이다. 스티브 잡스의 “여정(旅程)! 그 자체로 보상이다”라는 말처럼 길과 자연과 사람들 속에서 스스로 찾아보기를 바라마지 않는다. 

진광 스님 조계종 교육부장 vivachejk@hanmail.net

 

[1498호 / 2019년 7월 24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 이 기사를 응원해주세요 : 후원 ARS 060-707-1080, 한 통에 5000원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1
0 / 40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김재형 2019-09-20 09:37:53
스님..
금강산에서 뵙고 우연찮게 여기서 뵙네요..
법장스님 모시고 2004년 신계사 낙성식 때 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