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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일논란’ 다솔사 법회 성격 밝힐 자료 찾았다

  • 교학
  • 입력 2019.07.26 10:11
  • 수정 2019.08.04 03:20
  • 호수 1499
  • 댓글 3

김광식 동국대 특임교수 발굴
선리참구원에 보낸 공문 발견
행사내용·참석자 등 개요 명시
한일 고승·학자 70~80명 참석
독립운동 참여한 스님도 다수
친일행사 간주하는 건 부적절

다솔사가 선리참구원에 보낸 공문.
다솔사가 선리참구원에 보낸 공문.

1939년 8월 경남 사천 다솔사에서 한일 고승과 불교학자 80여명이 참여한 하안거 법회가 친일 논란이 불거진 가운데 이와 관련된 새로운 자료가 발굴됐다.

김광식 동국대 특임교수는 최근 ‘다솔사 안거 법회(1939), 개요와 성격’(퇴계학논집 24권) 논문에서 다솔사가 행사 개최 20일 전인 1939년 7월21일자로 선리참구원(현 선학원)에 보낸 공문을 발견해 이를 심층 분석했다. 그동안 다솔사 법회에 대한 논의들이 대부분 사료에 근거하지 않은 추론 성격이 강했다는 점에서 이번 공문은 다솔사 법회의 내용을 보다 면밀히 파악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이 공문에는 다솔사와 함께 이 법회를 공동 주관했던 일본 천태종 스님이 다솔사 주지 최범술 스님에게 보낸 행사 개요 문건이 있어 다솔사 법회의 내용과 성격을 파악할 수 있는 중요한 1차 사료라는 평가를 받는다. 또한 독립운동가 최범술 스님은 물론 당시 하안거 법회에 발제자로 참여했던 동양철학자 김범부 삶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김광식 교수는 “다솔사 하안거 법회는 2000년대 중반 일각에서 제기됐던 것과는 달리 친일 행사와는 관련이 없는 순수한 학술대회의 성격의 강했다”며 “오히려 식민지 통치국인 일본불교와 대등하게 진행한 다솔사의 문화적 능력은 물론 당시 한국불교의 문화적 자신감을 이해할 수 있다”고 밝혔다.

동양철학자인 김범부가 한일 고승들이 대거 참여한 다솔사 법회에서 불교를 주제로 발제하는 모습.

“다솔사 법회는 한국불교 역량 드러낸 순수 학술대회”

1939년 8월21~26일, 경남 사천 다솔사 대강당에서는 특별한 하안거 법회가 열렸다. 일본이 한국을 강점하고 중국까지 침략한 민감한 시기에 한국과 일본의 스님 수십 명이 한 자리에 모여 불교교리를 집중 토론하고 ‘법화경’에 의거한 대규모 참회수행이 진행됐다.

다솔사 안거 법회에 참여한 인물도 쟁쟁했다. 국내에서는 율사이자 밀교의식의 권위자였던 영암 스님을 대표로 쌍계사 범해, 통도사 구하, 범어사 경산, 해인사의 경하·고경·환경 스님 등 고승 40여명이 동참했다. 일본에서도 일본 천태종 전수원 및 대정대학 교수 등 내로라하는 불교학자와 스님 등 35명이 참여했다.

다솔사 불교학회, 일본 대정대학 천태학회, 비예산전수학원 예산학회가 공동주관한 이 행사는 동양철학자 김범부와 훗날 동국대 총장을 지낸 김법린 등이 발제를 맡았으며 장장 6일 동안 학술 및 불교행사가 이어졌다. 당시 하안거 법회를 주관했던 최범술 스님은 살아생전 “일제의 침략전쟁이 치열해지던 가운데서도 두 나라의 불교계는 화기애애하게 부처님의 가르침을 서로 지키려했다”고 회고하기도 했다.

그러나 다솔사 법회가 친일 논란의 중심에 선 것은 ‘친일인명사전’ 편찬위원 임혜봉 스님이 2005년 ‘친일파 108인’을 펴내면서부터다. 만해의 제자였던 최범술 스님을 친일파로 규정하려던 혜봉 스님은 “다솔사에 일본의 고승 석덕들을 대거 초청하여 조일불교학술대회를 개최했는데 일제 측 묵인이나 내락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라며, “불교계 인사들에게는 이 일 역시 친일 행적의 하나로 비춰졌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는 곧 국민훈장 무궁화장을 받았던 독립운동가로서의 최범술을 부정하고 친일부역자로서의 최범술로 새롭게 규정한다는 점에서 비상한 관심을 모았다.

그러나 고 김상현 동국대 교수 등이 이를 반박하고 나섰다. 즉 “이 법회의 내용이나 성격에 대해 전혀 언급도 않고 친일행사로 단정 짓는 것은 신중치 못하며 이 법회를 계기로 친일행위를 했다는 구체적인 증거도 제시하지 않은 채 이를 문제 삼고 있다”는 지적이었다.

온갖 우여곡절 끝에 2009년 11월 민족문제연구소가 펴낸 ‘친일인명사전’에서 최범술 스님은 제외됐지만 다솔사 법회의 개요와 성격은 여전히 밝혀지지 못했었다.

이런 가운데 김광식 동국대 특임교수가 최근 발굴한 자료는 ‘소화 14년도(1939) 방장산 다솔사 하안거 개요’라는 제하의 공문으로 일본 천태종에서 다솔사에 보낸 법회 기획서 성격의 문건이다. 여기에는 주최, 후원, 취지, 장소, 일시, 행사 내용, 행사 참가자 명단, 책임자, 전체 일정 등 법회의 구체적인 개요와 내용이 담겨 있다.

‘불교에 의한 조선문화 친선수행’을 목적으로 명시한 이 행사에는 ‘법화경’에 의거해 죄업을 참회하는 ‘법화삼매’ 수행을 비롯해 상행삼매 수행, 법화팔강 수행, 합행 만다라수행, 예참, 학술 및 문화연구 등이 이뤄졌다. 양국 불교계의 수행문화와 의식, 불교 연구 수준 등을 펼쳐 보이는 이례적인 자리였던 셈이다. 다만 8월24일 지나사변 전몰자 위령제 행사가 기획돼 있었으나 일본 측 의도대로 이것이 실행됐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이 공문을 분석한 김 교수는 다솔사 법회는 일본에서 박열과 더불어 항일투쟁을 전개했던 최범술의 대외적인 역량이 이뤄낸 성과로 보았다. 그에 따르면 다솔사 법회의 전모를 볼 때 상당히 큰 규모의 행사로서 당시 그 일을 기획, 추진할 수 있었던 다솔사의 문화적 능력을 확인할 수 있다. 또한 한국불교의 문화적 자신감 및 그 법회에 임한 스님들의 불교사상에 대한 실력도 가늠할 수 있다는 것이다.

김 교수는 다솔사 법회가 전반적으로 순수하게 수행과 학술에 집중된 행사로 친일의 잣대를 들이대는 것은 적절치 않다는 입장이다. 이 법회에 참석했던 구하, 경산, 고경 스님 등은 임시정부에 군자금을 냈거나 승려 독립선언서에 서명을 하고, 민족교육을 이끄는 등 독립운동에 직·간접으로 연관된 인물이라는 점도 간과돼선 안 된다는 것이다. 특히 이 안거 법회가 끝난 직후인 1939년 8월29일 만해 스님의 회갑 모임이 다솔사에서 열렸고, 최범술 스님이 1942년 단재 신채호 선생의 문집을 출간하려 했다는 빌미로 일제에 체포돼 약 1년간 구속당했던 사실도 상기시켰다. 이어 일각에서 이런 민족불교 지향의 고뇌 속에 나온 항일 흐름은 주목하지 않고 그 반대의 성격을 들추어내려는 것은 의아스럽다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식민지 통치가 구현되던 시절, 식민지국과 피식민지국의 스님들이 함께 모여 학술행사를 벌인 것은 의미가 크다”며 “일제하 양국의 감정이 극단으로 치닫던 시절 경남 오지의 사찰인 다솔사에서 있었던 한일 불교문화 행사의 의미에 대해 새롭게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재형 기자 mitra@beopbo.com

[1499호 / 2019년 7월 31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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