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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리키는 손과 달 모두 의미 있다

기자명 도연 스님

‘나랏말싸미' 두고 호평·혹평 갈려
영화가 주는 메시지에 귀 기울여
논쟁 더 나은 방향으로 발전시켜야

얼마 전 영화 ‘나랏말싸미’가 개봉했습니다. 한글 창제라는 위대한 업적을 남긴 세종대왕의 이야기인데요, 기다리던 영화라 개봉 첫날 가서 관람했습니다. 그전에 관람객들의 반응이 어떤지 검색해보니 평점 테러가 벌어지고 있었습니다. ‘역사왜곡’이라는 댓글도 있고 ‘1점도 주기 아깝다’라는 의견까지 있었습니다. 물론 좋고 훈훈한 댓글도 많았습니다. 하지만, 영화 개봉과 동시에 호평과 혹평이 갈리는 영화가 드문 만큼 큰 이슈가 돼있었습니다.

영화 자체는 정말 괜찮았습니다. 그들이 나누는 대사도 참 아름답고 통쾌했습니다. 영화에서는 여러 언어에 능통한 신미 대사가 산스크리트어, 티베트어, 파스파 문자 등을 참고하여 새로운 문자를 만든 것으로 묘사합니다. 스님들이 다 만든 것은 아니지만 큰 조력자의 역할은 한 것으로 조명됩니다. 처음에는 소헌왕후와 궁녀들이 머무는 교태전에서 해인사의 신미대사와 그 제자스님들은 새로운 문자 연구를 은밀하게 진행합니다. 그러다 조정 대신들의 반발로 속리산 복천사로 내려가 다시 연구에 들어가고 우여곡절 끝에 새로운 글인 훈민정음이 만들어집니다.

한글은 세종대왕의 단독 창제가 학계의 가장 지배적인 통설입니다. 집현전 학자와 함께 만들었다는 설도 있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신미대사와 스님들이 조력했다는 주장은 터무니가 없습니다. 지나친 억측이라는 것이죠. 하지만, 역사를 다루는 드라마나 영화 등의 작품을 100% 사료에 근거해 만들 수는 없습니다. 학계의 주류적인 해석만을 따르다 보면 다채롭고 폭넓은 창조성에 제한이 따를 수밖에 없습니다. 현재 ‘나랏말싸미’에 대한 논쟁은 진행 중입니다. ‘팩션(팩트+픽션, 사료와 상상력이 결합한 형태)으로 볼 것이냐?’ 아니면 ‘사실을 왜곡하는 혹세무민으로 볼 것이냐’는 입장이 대립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영화를 보는 이유, 영화를 통해 얻는 이점을 생각해보면 어떨까요? ‘사실이냐, 왜곡이냐?’를 따지기보다 영화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에 귀를 기울이면 좋겠습니다. 물론 영화가 사회에 미치는 파급력과 교육적 효과는 큽니다. 잘못된 역사관을 가질 수 있다는 우려도 이해가 됩니다. 하지만, 그 부분 때문에 주고자 하는 좋은 메시지를 놓치는 것은 참 안타까운 일입니다. 필자는 백성을 사랑하는 임금의 긍휼한 마음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중생을 연민하고 걱정하는 보살의 자비심에도 공감할 수 있었습니다. 신분과 지위의 차이는 있지만 사람에 대한 인애의 정신은 하나였습니다. 그 동기가 있었기 때문에 한글이라는 위대한 작품이 나올 수 있었던 것입니다.
 

도연 스님

한글 창제의 정설을 확고히 하는 것은 학자의 몫입니다. 한글에 대한 자긍심을 느끼며 활용하는 것은 국민의 자유이자 권리입니다. 영화를 보고 평가하고 의견을 나누는 것은 관람객의 역할입니다. 그런 면에서 이런 이슈와 논란은 바람직하다고 봅니다. 학계에서 보는 정설은 아니지만 불교에서 지지하는 의견도 참고해서 역사를 바라보는 시각도 참고할 필요가 있습니다. 스님들이 한글 창제에 관여했다는 설은 소수의견입니다. 만일 이 사실이 정말 근거 없는 가짜라면 학자들이 반박할 수 있는 근거를 공고히 하면 될 것입니다. 한글 창제에 대한 사회적 관심과 논쟁이 오히려 더 나은 방향으로 발전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입니다. 객관적이고 학술적인 관점에서 역사를 다시 조명해 볼 수 있는 기회로 삼으면 좋겠습니다.

도연 스님 봉은사 명상지도법사 seokha36@gmail.com

 

[1499호 / 2019년 7월 31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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