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6. 설일체유부와 세친의 언어관 ②
76. 설일체유부와 세친의 언어관 ②
  • 김재권 교수
  • 승인 2019.07.31 13:27
  • 호수 149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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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를 어떻게 이해하느냐에 따라 견해가 달라져

유부는 우리가 말을 하는 순간
소리 이름 결합해 대상 드러내
세친, 말은 사회적 약속 규정
말 안에 이미 의미 담겨 있어

유부와 세친의 언어관에 대한 그 견해 차이는 말과 이름의 관계나 말의 특성에 대한 이해방식의 차이에 기인하는 것으로 보인다.

유부는 명․구․문 중 자·모음(문, vyañjana=음소)들은 문자(lipi)를 구성하는 여러 요소의 이름들에 불과하지 않는가?라는 세친의 반문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즉 “문자의 구성요소들을 이해시키기 위해서 자·모음이 만들어진 것은 아니다. 어떻게 하면 실제로 말할 때는 들리지 않는 자·모음을 남에게 글(lekhya)로 이해시킬 수 있을까? 즉 다름 아닌 말을 구성하고 있는 음소로서의 자·모음들을 이해시키기 위해서 문자를 구성하는 여러 요소들이 만들어진 것이므로 자·모음들이 그들의 이름은 아니다.”

여기서 유부는 ‘이름(名)’을 가장 기본적인 구조로 본다. 이런 점에서 ‘글자’나 글자를 구성하는 ‘음소’는 이름에 속하지 않는다고 설명한다. 우리가 보통 말할 때 ‘음소’들을 구분해가면서 말하지 않는다. 즉 우리는 한 단어나 여러 개의 단어를 합한 하나의 문장으로 말한다. 예를 들어 ‘ㄱ’을 ‘기역’이라 하는 것도 이름으로 볼 수 있지 않느냐?라고 물을 수 있다. 하지만 유부는 이러한 문제제기에 대하여 실제적인 언어사용의 관점에서 설명한다. 유부의 관점에서 음소 자체는 이름이 아닌 것이다.

만약 우리가 음소만을 가지고 대화가 직접 가능하다면 모르지만, 사실 음소는 글자의 단위로서 그 모임은 글자를 이루며, 글자의 모임은 이름을 나타낸다. 예컨대 모로스 기호로 해상에서 선박들 간에 무선통신을 하는 경우에는 음소만으로 대화가 가능하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이것은 착각이다. 그러한 경우에도 기호 자체는 이름이 아니고, 이미 약정된 규칙에 따라 기호를 조합해서 기호의 조합이 지칭하는 바를 알아내는 것이다. 음소도 이름으로 볼 경우, 우리는 계속해서 음소만으로 대화가 가능해야 한다. 하지만 어떠한 경우에도 실제 그런 일은 있을 수 없다.

한편 유부는 ‘명·구·문’을 심불상응행법에 포함시키는데, 반면에 세친은 이들을 색법에 포함시킨다. 유부와 세친의 견해 차이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세친:]이름(名, nāman), 문장(句, pada), 음소(文, vyañjana)는 본성상 말(vāc)이며 따라서 그 본성은 음성(聲, śabda)이다. 그러므로 본질상 물질적 존재에 속하는데, 무슨 이유로 심불상응행법에 속한다고 하는가?

[유부:]그들은 말을 자기본질로 하는 것이 아니다. 소리(ghoṣa)가 곧 말이지만, 소리만으로 대상들이 이해되지는 않는다. 말이 이름에 작용을 미쳐 이름이 대상을 밝혀주는 것이다. 여기서 유부는 소리와 이름을 명확하게 구분하고 있다. 즉 유부는 말을 그저 의미 없는 소리와 동일시하며, 이러한 말이 이름에 작용을 미쳐서 그 이름이 대상을 밝혀 준다고 설명한다. 이는 우리가 말을 하는 순간 소리와 이름이 결합해서 대상을 드러내는 것이라는 설명이다. 반면에 세친은 말은 이미 그 안에 의미를 지니고 있으며, 말이 지니는 의미는 사회적 약속에 의해서 규정된 것이라고 본다. 이런 점에서 세친과 유부는 ‘명·구·문’에 대해서 서로 다른 입장을 드러낸다.

이와 같이 ‘구사론’에서는 세친이 유부의 언어이론을 단편적으로 소개하면서 자신의 입장에서 다시 비판하는 형식으로 짧게 기술하고 있다. 이런 점에서 유부와 세친이 취하는 언어이론의 전모를 파악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그럼에도 세친의 언어관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그 윤곽이 드러나 있고, 한편 유부의 관점은 세친의 눈을 통해서 제시된 것이기는 해도 기본적인 관점은 어느 정도 엿볼 수 있다.

김재권 능인대학원대학교교수 marineco43@hanmail.net

 

[1499호 / 2019년 7월 31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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