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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 무릉도원-동행

기자명 임연숙

푸른 이상향에 번잡한 마음 덜다

왕렬의 수묵 바탕 동양적 자연
거친 붓질, 걷어낸 본질 표현
화면의 옥빛은 상서로움 전달
새 몸짓, 삶에 대한 작가 바람

왕렬 作 ‘무릉도원-동행’, 60×71cm, 천에 먹 아크릴, 2018년.
왕렬 作 ‘무릉도원-동행’, 60×71cm, 천에 먹 아크릴, 2018년.

작품 제목이 말하는 무릉도원은 중국의 무릉이라는 지역에 사는 어부가 우연히 복숭아나무를 발견하고 따라 들어가 낙원에 도착하여 겪은 이야기가 담긴 도연명의 도화원기라는 시에서 나온 말이다. 전란을 피해 들어온 사람들이 사는 곳에서 신선의 옷을 입은 농부들을 만나 맛있는 음식과 술을 대접받으며, 바깥세상 이야기를 들려주다가 집으로 돌아 와서는 다시 돌아가려 했으나 찾을 수 없었다는 대략의 이야기다.


상상 속 이야기지만 오랫동안 동양정신과 삶의 태도가 담기고 각색되어 이상적인 세계에 대한 일반적인 용어로 사용되어 왔고 그림이나 시로 다시금 재창조되어 동양철학과 문화, 심지어 생활면에 있어 많은 영향을 미쳤다. 서양 역사를 보거나, 영화나 작품을 보면 이상세계, 유토피아에 대한 생각은 무릉도원과는 확실히 차이가 있다. 서구적 환상의 세계는 주로 금은보화가 가득하고 맛있는 음식과 달콤함으로 꽉 채워진 곳을 연상하게 한다. 전통적으로 동양에서의 이상향은 흰 수염의 신선이 사는 아름다운 자연과 맑은 물, 영험한 약초와 과일로 가득 찬 그런 곳이다.

동양적 사고를 바탕으로 한 왕렬 작가의 작품은 지, 필, 묵에 기본을 두고 있다. 화면 전체가 푸른빛으로 채색되어 있지만 기법적으로 수묵 기법이 바탕이 된다. 물을 섞지 않는 진한 먹을 사용해 붓으로 강하게 찍어 내리듯이 나무와 바위, 그 안의 집을 표현하였다. 거친 느낌의 붓질은 욕망과 물질을 걷어낸 사물에 본질만을 표현하고자 한 듯하다. 풍요보다는 결핍, 검소하고 검약을 미덕으로 하는 동양적 세계관이 느껴진다.

화면 전체는 푸른 옥빛이다. 넓은 붓으로 화면을 채우고 있는 옥빛은 신비로움과 상서로움을 동시에 느끼게 한다. 그 속을 나는 흰 새 또한 무릉도원에나 있을 법한 극적인 모양새로 화면 중앙을 가른다. 작가는 동양적 세계관을 현대적 감각으로 표현하는데 많은 관심과 연구를 보여준다. 대부분의 작품에는 산, 수, 풍경 속에 말이나 새가 상징적으로 등장한다. 자연 풍광 속에 움직이는 생명체는 작가에게 있어서는 작가 자신이기도 하다. 상서로운 기운의 무릉도원을 향하는 새의 몸짓처럼 작가가 바라는 삶에 대한 바람을 담고 있는 듯하다. 무릉도원은 작가가 추구하는 세상이기도 하고 삶의 태도를 보여주기도 한다.

“유토피아는 없다. 그 없는 곳을 통해 삶을 돌아보는 것(상상공간을 통해 현실공간을 돌아보는 것)이 내가 유토피아를 그리는 이유이다. 나에게 무릉도원은 여행과 명상을 위한 구실이다. 아름다운 곳을 여행하게 해주는 계기이다.” ‘작가노트’

생각을 덜어내고, 코앞에 있는 어려움을 좀 떨어져서 바라보고 내려놓을 때 비로소 다른 것들이 보이는 것이라고 머리로는 알아도 마음으로 그렇게 하기는 쉽지 않은 일이다. 시각적으로 시원한 그림 한 점을 통해 좀 더 넓게 생각하고 마음의 번잡함을 덜어 낼 수 있다면 그것 또한 작가가 우리에게 주는 선물과도 같은 일이다.

임연숙 세종문화회관 예술교육 팀장 curator@sejongpac.or.kr

 

[1499호 / 2019년 7월 31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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