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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중앙아시아의 동로마 화가 티투스: 서양화 도입의 시원은 불교미술

기자명 주수완

4세기경 불교문화 중국가며 서양문화도 함께 확산

1905년 중앙아시아에서 발견된
서양화풍으로 묘사된 불교 벽화
화가명·보수도 정확히 기록돼
​​​​​​​
서양서 전래된 최신 미술 엿보여
어떤 회화 장르보다 선구적 예술
도상적 측면선 서방에 영향 주기도

설법하는 부처와 제자들. 미란 출토, 4세기경. 인도 뉴델리 박물관 소장.

1905년 중앙아시아 서역남로의 고대 유적 미란을 방문하여 이듬해까지 발굴하던 영국의 오렐 스타인(A. Stein, 1862~1943)은 한 사원지에서 놀라운 유물을 발견했다. 그것은 서양화풍으로 그려진 불교 벽화였다. 그 중에는 천사의 그림도 있었는데, 엄밀히 말하면 불화 속 천사이므로 비천이라고 부르는 것이 더 적합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비천은 날개가 없이 하늘을 나는 반면, 기독교의 천사는 날개를 달고 있어 차이가 있는데, 미란에서 발견된 천사들은 날개를 달고 있어 유럽 미술 속 천사의 영향이 분명해 보인다. 스타인 자신도 그 깊고 외진 중앙아시아의 사막 한 가운데서 크리스마스를 즈음하여 천사가 그려진 벽화를 발견하고는 마치 하느님의 계시인 것처럼 감동에 겨워했다.

뿐만 아니라 벽화편에 등장하는 부처님과 그 제자들의 모습은 부처님과 삭발한 승려들을 묘사한 것이 분명함에도 마치 짙은 화장을 한 듯 보이는 눈의 윤곽과 눈썹의 묘사, 은은한 음영법의 표현 등은 일반적으로 ‘동양화’라고 불리는 그림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서양화’풍에 가까운 그림들이었다.

그런데 미란 불교사원지의 벽면에 그려진 부처님의 전생 이야기인 비슈반타라 본생담으로 알려진 벽화편의 한 쪽에 이처럼 서양화풍으로 그림을 그린 작가가 누구인지 추정할 수 있는 단서가 쓰여 있었다. “티타(TITA)는 이 그림으로 3000 밤마카를 받았다”는 문장이 당시 중앙아시아에서 통용되던 카로슈티 문자로 남아있는 것이었다. 밤마카는 미란에서 통용되었던 화폐의 단위였을 것이다. 그것이 얼마만큼의 보수였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림이 봉헌되면서 화가가 받은 보수까지 기록되었다는 것은 여러 가지를 생각하게 한다. 이 역시 그림을 주문한 사람이 일종의 보시의 개념으로서 지불한 돈이기 때문에 그 금액을 명확히 기재하고 싶었을 것이고, 아마 적지 않은 돈이기에 더더욱 기록에 남겼던 것이 아닐까.

그러나 무엇보다 주목되는 것은 이 그림을 그린 것으로 추정되는 화가의 이름 ‘티타’이다. 학자들은 이 이름이 아마도 동로마 지역이나 시리아 지역에서 비교적 흔한 이름이었던 ‘티투스’의 중앙아시아적 표기일 것으로 보는데 이견이 없다. 이 티타라는 화가가 불교도였는지, 혹은 승려였는지는 알 수 없다.

판토크라토르, 6세기. 시내산의 성 카타리나 수도원. 

그가 만약 승려였다면 이렇게 현금으로 보수를 받았다는 사실을 굳이 기록에 남기고 싶어 했을 것 같지는 않다. 어느 사찰에 기부한 돈으로 처리해도 될 것을 굳이 작가의 이름을 남긴 것은 그가 돈을 받고 그림을 그린 세속 화가였음을 암시하는 것이며, 특히 이름을 굳이 밝히는 것은 그가 원래 활동했던 서방의 전통과 함께 그가 이 지역에서 이름난 화가였기에 그에게 그림을 의뢰했던 시주자의 특별한 선택을 기록에 남기려는 의도로 읽힌다.

그래서일까, 4세기경에 그려진 것으로 추정되는 이 그림은 불교문화가 중국에 전래될 때 서양의 문화도 함께 전달되었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이를 통해 덕수궁의 ‘절필시대’에 전시된 작가들에 이르러 비로소 처음으로 서양의 미술을 접했던 것이 아님을 엿볼 수 있다. 또한 고대 미란에 살던 사람들에게 있어서도 불교미술이라는 것은 전통미술의 개념이 아니라 이제 막 서양에서 전래된 최신의 미술로서 인식되었음을 알려준다. 우리가 현재 불교미술을 전통이 개념으로서, 불변의 어떤 고정된 틀로서 인식하고 있는 것과는 차이가 크다. 가장 전통적이고 보수적이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불교회화가 미란의 이 벽화에서처럼 아시아에서 본격적으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을 무렵에는 그 어떤 회화 장르보다도 새로움, 호기심, 국제성에 있어 가장 선구적인 분야의 예술이었을지도 모르겠다. 만약 오늘날 법당에 불화를 조성하는데 파란눈의 외국인 화가가 작업을 하고 있다면 우리는 어떤 눈으로 이를 받아들이게 될까.
 

미란 출토의 날개달린 천사상, 4세기경.

동로마 지역에서 활동했던 화가의 작품이어서 그런지 흔히 이 그림은 내용적으로도 기독교 성상화와 닮았다고 평가된다. 오른손을 들어 설법인을 하고 있는 부처의 모습은 마치 비잔틴 성상화에서 유행했던 ‘판토크라토르(Pantokrator, 전능한 창조자)’로서의 예수의 도상과 닮은 듯이 보인다. 그러나 이것을 기독교 문화의 영향이라고만 볼 수는 없다. 현존하는 기독교의 판토크라토르 도상의 이른 예는 6세기 정도로 거슬러 올라가는 반면, 미란의 벽화는 4세기로 편년되어 오히려 연대가 앞선다. 4세기면 아직 인도에서는 아잔타 석굴의 제2기 벽화라고 하는 5세기 무렵의 벽화가 그려지기 전이고, 콘스탄티노플의 유명한 아야 소피아 성당의 현재 모습이 6세기에 재건되기도 전이다.

지금까지 알려진 미란 벽화의 제작연대인 4세기가 너무 빠른 것일까? 물론 조금 내려봐야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편년이 맞다면, 이 벽화는 단순히 동로마 교회의 영향에만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화풍은 서방의 화풍일지라도 도상적 측면에서는 이러한 교류를 통해 오히려 서방에 영향을 주었을 가능성도 고려하게 만든다. 혹 화가 티타는 이런 그림들을 그려주면서 불교도상의 규칙을 배워 다시 고향으로 돌아가 기독교 성상화를 그렸던 것은 아니었을까?

여하간 불교미술에 미친 동로마의 화가 티타의 역할은 다시금 조명되어야 할 필요가 있으며, 나아가 이제는 21세기판 티타의 활약을 기대해봄직도 하다.

주수완 고려대 초빙교수 indijoo@hanmail.net

 

[1499호 / 2019년 7월 31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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