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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랏말싸미 탁월한 언어감각·전문성 돋보인다”

기자명 법보
  • 기고
  • 입력 2019.08.05 14:30
  • 수정 2019.08.06 16:18
  • 호수 1500
  • 댓글 9

기고-김형중 문학박사·문학평론가 영화평

김형중 문학박사(동대부여고 교장)가 8월5일 영화 ‘나랏말싸미’ 영화평을 보내왔다. 김 박사는 기고문에서 “영화 대본의 대사는 매우 상징적이고 탁월한 언어감각을 잘 표현했다. 영화의 구성도 훌륭했다”며 “대사 내용의 한 마디 한 마디가 경전에 나오는 천금 같은 언어였으며 상징적인 선사의 언어였다”고 밝혔다.

김형중 박사는 선시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전국교법사단장, 교과서 심의위원, 동방대학원대 객원교수를 역임했다. 현재 동대부여고 교장을 맡고 있으며, 한국문인협회 회원(문학·미술평론가)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저서로는 ‘불교, 교과서 밖으로 나가다’ ‘시로 읽는 서산대사’ ‘왕초보 한문박사 되다’ ‘한글세대를 위한 한자공부’ ‘대장경 속 한마디’ 등이, 공동저서로 ‘청소년 불교성전’ ‘중고등학교 철학교과서’ 등이 있다. 한편 이 글에는 본 영화의 스포일러가 일부 포함돼 있다. 편집자

불경은 한국인 인쇄·출판·언어문화에 큰 영향

‘나랏말싸미’ 영화는 ‘훈민정음’ 해례본에 나타난 한글의 제작 원리에 의거하여 신미대사가 산스크리트어의 소리글자의 특성과 글자 모양과 상관을 지어 한글의 제작 과정을 유추하고 상상하여 만들었다. 영화가 시작하는 자막에서도 “이 영화는 여러 가지 한글창제설 가운데 불교의 범자모방설을 주축으로 제작했다”라고 하였다.

지난 7월31일 학교법인 동국대학교에서 인도철학과 불학의 선지식으로 필자가 대학생 때 산스크리트어를 강의하였던 법산 이사장 스님께서 초중고교 관리자들이 이 영화를 보면 학생들에게 한글을 지도하는데 유익하겠다고 하여, 대한극장의 한 상영실을 빌려 산하학교 교장, 교법사 등 관리자, 법인 이사와 직원들이 함께 관람하였다.

이 영화에서 역사왜곡에 대한 평가는 잘못된 편견이다. 대장경은 불교가 우리나라에 처음 전래되면서부터 유입되어 한국인의 정신과 문화에 큰 영향을 주었다. 뿐만 아니라 불경을 기록한 한자와 산스크리트어는 한국인의 인쇄, 출판문화와 언어 문자 생활에도 큰 영향을 주었다.

신라시대 원효대사의 아들인 설총이 한자음을 빌려서 우리의 고유한 소리를 기록한 이두를 창안하였다. 이두로 기록된 향가 25수가 ‘삼국유사’와 ‘균여전’에 전래되고 있는데 모두 불교 작품이다.

‘훈민정음’ 해례본은 초간본(원본)으로 한문으로 기록되었고, 또 이것을 한글로 해설한 ‘훈민정음’ 언해본이 있다. 이 언해본 목판(6·25한국전쟁 때 소실)이 경북 영주시 희방사에서 제작되었다. 이렇게 한글과 불교경전과 인연이 많이 있다.

역사적으로 분명한 것은 오늘날 우리의 한글이 이 땅의 여성들(암글, 궁궐 내 궁녀들의 한글 서예 궁체)과 불교의 불경언해를 통해 한글이 전파되고 유지 발전되었다는 사실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다.

우리의 한글이 어떻게 만들었는지, 누가 만들었는지 연구하여 한글을 여러 측면에서 발전시켜야 한다. 설사 정사의 기록과 일치하지 않는 내용이 있더라도 이런 연구나 작업이 세종을 능멸하고 한글을 폄하하는 일이 결코 아니다.

‘나랏말싸미’ 작품 구성과 전개 잘 갖춰져

영화 ‘나랏말싸미’가 개봉되자 마저 세종을 능멸하는 역사왜곡의 영화라고 하는 터무니없는 공격을 받고 좌초당하고 있으니 안타까운 일이다. ‘나랏말싸미’는 나름대로 작품의 구성과 전개가 기승전결로 잘 갖추어졌다. 이 영화의 시작이 경회루에서 세종이 주관하는 기우제의 광경이다.

“유세차 임술년 정미월 병오일 신 조선 국왕 이도 감소고우 천지신명 백악산 용신호…”라고 한문으로 축문을 읽자, 세종은 “그렇게 빌면 이 땅의 신령들이 알아듣겠느냐? 우리말로 해라.” 이렇게 영화가 시작된다.

이 기우제에서 이 영화의 제작 목적을 상징적으로 나타내고 있다. 한글 창제의 이유와 목적이다. 어려운 한문으로 축문을 읽으면 천지신명도 알아들을 수 없으니 일반 백성은 더욱 그렇다는 뜻이다. 쉬운 우리말로 해야 알아듣고 감응이 있다는 의미이다. 한글 창제의 목적이 표현되고 있는 것이다.

기우제가 끝나고 침전에 돌아온 세종은 문자를 새로 만드는 일은 자신의 능력 밖의 일이라고 한탄하는데, “똑똑한 신하를 두고 왜 혼자서 애태웁니까?” 하고 소헌왕후는 말한다. 신미대사의 출연을 예언하는 대사이다.

다음 장면은 일본 승려들이 사신으로 와서 해인사 팔만대장경을 달라고 단식 투쟁을 하는 모습이다. 이것은 ‘조선왕조실록’에 나오는 역사적 사실이다. 이를 바탕으로 감독은 해인사에서 팔만대장경을 공부하고 있는 신미대사를 투입하여 능엄주를 통하여 왜승을 물리치고, 세종과의 만남이 이뤄지는 것으로 연출했다. 그러면서 능엄주의 원음을 들은 세종은 신미에게 그 소리를 쓸 수 있는지 묻고, 산스크리트어가 소리글자임을 알게 된다. 그리고 자신의 신 문자 창제의 포부를 밝히고, “중국의 운서(韻書)를 다 훑어보았어도 그 실마리를 찾지 못했다”고 도움을 요청한다.

“차라리 나를 탄핵하라” 세종과 신하들 갈등 흥미로워

세종은 건강이 악화되고 눈병까지 심해져서 신하들과 갈등이 나타난다. “전하, 이상한 소문이 있습니다. 왕비의 처소에서 염불소리가 난다고 합니다. 교태전을 조사해 봅시다. 그것이 사실이면 중전을 탄핵할 수밖에 없습니다.”라고 세종을 협박하자 세종은 “차라리 나를 탄핵하라”고 말한다. 소헌왕후가 불심이 돈독하여 궁궐 안에 내불당을 만들고 불공을 드린 것은 역사적 사실이다.

소헌왕후의 요청으로 한글 창제의 작업 장소를 궁궐 밖으로 옮긴다. 마침내 충청도 속리산 복천암에서 신미대사가 한글을 완성하고, 눈병을 빙자하여 온천에 온 세종에게 보고하면서 영화의 절정을 이룬다. 1443년 한글이 완성되었다. 이후 3년 동안 한글의 실험 기간이다. 이때 ‘용비어천가’, ‘훈민정음’ 초간본인 해례본(한문본)이 제작된다. 한글 반포가 늦어진 것은 그 사이에 세종의 두 왕자가 요절했고, 소헌왕후가 돌아가셨기 때문이다.

소헌왕후가 세종에게 남긴 유언은 법문이다. “언제까지 신하들의 눈치만 보고 살 것 입니까? 어차피 가야할 길이라면 끝까지 가십시오. 가다가 넘어지면 넘어진 자리에서 주저앉지 말고 그 자리를 딛고 일어나야 합니다.”

세종은 드디어 한글 창제를 신하들에게 밝히는데 신하들은 “왜 그렇게 중요한 일을 신하들과 상의하지 않고 만들었습니까? 새 문자를 중놈들하고 만들었습니까?” 하고 중국 명 황제를 들어서 세종을 협박하고 거부한다. 세종은 “너희는 중국에 사대만 하고 뜻글자인 한문에 얽매여 있어서 새 문자를 만들 실력이 안 되는데, 너희가 개처럼 여기는 불승에게 새 문자를 만드는 열쇠가 있었다”고 하며, “새 문자를 통해 모든 백성이 문자를 사용하는 나라를 만들어 중국을 능가하는 나라를 만들고 싶다. 중국은 천 년이 가도 그런 일을 할 수 없다”고 신하들을 설득한다.

신하들은 “이 문자가 백성들에게 퍼지는 순간 이 왕조마저 삼켜버릴 것입니다” 하고 대드는데, 세종은 “거머리처럼 백성들의 뼛골이나 뽑아먹고자 하는 나라라면 망해야 한다”고 애민정신을 드러냈다.

꼼꼼한 고증으로 되살린 소헌왕후 천도재 등 의례도 인상적

영화의 대미는 ‘훈민정음’의 반포와 꼼꼼한 고증으로 되살린 소헌왕후의 천도재 행사로 끝을 달린다. 세종은 ‘훈민정음’을 신하들에게 배포하며 다음과 같이 애원한다.

“나는 유자도 아니고, 불자도 아니다. 너희가 도와주지 않으면 늙고 병든 임금일 뿐이다. 내 마지막 부탁이다. 이 책만은 너희 서가에서 썩지 않고 널리 전파될 수 있도록 도와주라.”

이런 세종의 노력과 정성으로 한글은 전파된 것이다. 여기서 고독한 천재 군왕인 세종의 애민정신과 새 문자에 대한 의지에 머리가 숙여지고 가슴에 밀려오는 감동을 느낀다.

소헌왕후의 천도재는 소헌왕후가 궁녀들에게 한글을 가르친 열성과 한글 사랑의 마음을 계승하고 보답하는 행사인 언문(한글)을 전파할 것을 맹세하는 ‘언문계(諺文契)’와 함께 진행된다. “목숨을 다하는 날까지 맹세합시다. 언문이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을 수 있도록 연명부에 이름을 새기고, 팔뚝에 촛불을 붙여 맹세합시다.” 이 장면은 관객의 마음을 감동시키고 눈물을 흘리게 하였다.

신미대사의 ‘복숭아씨 법문’은 많은 것을 시사하고 감동을 준다. “복숭아 속의 씨를 우리는 알 수 있지만 그 씨 속에 복숭아가 몇 개인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언문은 훗날 주상이 새긴 팔만대장경이 될 것입니다.”

“진리는 망하지 않는다. 다만 서로 이단이라고 싸우다가 망한다.” 귀 기울여야

세종은 김수온과 신미대사가 편찬한 석가모니의 일대기인 ‘석보상절’을 보고, 친히 부처님의 공덕을 찬양하는 찬불가인 ‘월인천강지곡’을 지었다. 이 아름답고 거룩한 노래가 소헌왕후의 천도재에서 진혼곡을 대신하여 연주될 때는 또 한 번 감동의 물결이 몰려왔고, 관세음보살의 화신으로 살다간 소헌왕후와 그 역을 맡아 열연했던 고 전미선 배우를 생각하니 저절로 눈물이 흘러내렸다. 영화는 이렇게 숙연하고 장엄하게 막을 내렸다.

신미대사가 소헌왕후의 천도재를 주관한 것과 세종의 침전에서 세종의 최후를 위하여 법문을 한 것과 세종의 유언으로 문종이 신미대사에게 ‘우국이세 혜각존자”란 시호를 내린 것은 역사적 사실이다.

‘나랏말싸미’는 110분 영화의 상당 부분이 한글의 창작 원리와 제작 과정을 다루었기 때문에 음식은 맛있어야 하고, 영화는 재미있어야 하는데 교양 영화, 다큐멘터리 같은 점이 없지는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필자는 나름대로 의미가 있는 훌륭한 영화라고 평가한다. 이 영화를 만들기 위하여 대본을 쓴 작가나 감독이 한글학자에 버금가는 전문적인 지식과 공부를 많이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 대본을 쓴 작가와 감독의 역량이다.

특히나 영화 대본의 대사는 매우 상징적이고 탁월한 언어감각을 잘 표현했다. 영화의 구성도 훌륭했다. 시작에서부터 끝 장면까지 장엄하고 감동적이었다. 대사 내용의 한 마디 한 마디가 경전에 나오는 천금 같은 언어였으며 상징적인 선사의 언어였다.

김형중 박사
김형중 박사

 

불자들은 사찰에서 법회 대용으로 한 번 볼만한 영화이다. 일반인들도 한글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한 번 관람하시기를 추천한다.

필자는 영화가 끝나고 귀가하면서 세종이 했던 이 말이 머릿속에서 맴돌았다. “유가도 백성이요 불교도 백성이다. 나는 부처님 말씀도 진리라고 믿는다. 진리는 망하지 않는다. 다만 서로 이단이라고 삿대질하며 싸우다가 망한다.”

[1500호 / 2019년 8월 14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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