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동주 시집 ‘하늘과~’ 표지 장정 ‘판화가 이정’ 작품전
윤동주 시집 ‘하늘과~’ 표지 장정 ‘판화가 이정’ 작품전
  • 김현태 기자
  • 승인 2019.08.08 16:34
  • 호수 15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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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서지학회·소명출판, 8월16일까지
목판화 원본 비롯해 판화작 등 소개
‘반가사유상’ 등 불교 작품들도 다수
홍선웅 작가 “깊이·안정감 탁월” 평가

1948년 정음사는 윤동주 시인의 유고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를 출간했다. 정음사는 한 판화가에게 시집의 표지를 맡겼고, 그는 눈 덮인 나목이 겨울 찬바람을 이겨내고 있는 서늘한 모습으로 윤동주 시인의 시 세계를 표현했다.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표지 장정(裝幀)의 주인공인 판화가 이정(1924~1995)의 작품을 만날 수 있는 전시회가 열렸다.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18.3×24.0cm, 목판화, 1947년.

근대서지학회(회장 오영식)와 소명출판은 8월16일까지 서울 인사동 백상빌딩 지하 1층 화봉갤러리에서 ‘표지 장정에서 출발한 판화가 이정’ 전시회를 진행한다. 판화가 이정은 그동안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의 표지를 장정한 인물로만 알려졌을 뿐 그의 생애나 작품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들을 전해진 바가 없었다.

그러던 중 판화가 홍선웅 화백의 노력으로 판화가 이정에 관한 내용들이 하나씩 밝혀지게 됐다. 홍 화백은 최근 ‘근대서지’ 제19호에 지금껏 공백으로 남겨진 이정의 생애와 작품 세계를 탐구한 ‘표지 장정에서 출발한 판화가 이정’을 발표했다. 이를 계기로 그의 첫 번째 전시회가 열리게 된 것이다.

‘미륵반가사유상’, 20.8×12.8cm, 목판화, 1979년.

이정의 본명은 이주순으로 1924년 강원도 회양에서 태어났다. 8살 때 서울로 이주해 정동공립보통학교를 졸업하고 교장의 추천으로 조선총독부 도서관 사서로 근무했다. 1943년 일제의 강제징용으로 일본 규슈 오이타현 군부대에서 노역하다 해방 뒤 귀국했다. 특히 미술, 그 중에서도 판화 분야에 많은 관심을 가져 독학으로 공부했다. 1947년 가을 윤동주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의 표지 장정을 목판화로 제작해 이를 계기로 이듬해 정음사에 입사했다. 1972년 퇴사할 때까지 18년간 편집부장 겸 북디자이너로 재직했으며, 1995년 11월 작고했다.

전시회에는 그동안 이정의 유족이 보관해왔던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윤곤강 시집 ‘살어리’(1948년)의 면지에 실린 ‘석류’ 등 목판화 원본과 한국전쟁으로 출간되지 못한 김동리 소설집 ‘역마(驛馬)’ 내제지 원본 판화를 만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은퇴 후 제작한 1970년대와 1980년대 판화작품을 비롯해 펜으로 그린 삽화, 한글과 알파벳 문자 디자인, 작업도구 등 출판미술인으로서의 유산도 볼 수 있다.

‘반야심경 6폭 병풍’, 138×65cm, 목판화, 1979년.

이정은 특히 1970년대 후반부터 1980년대 초반 불교와 관련한 작품을 다수 남겼다. 이 가운데 ‘반야심경’을 전서체로 판각하고 처음과 끝부분에 성덕대왕신종비천상을 단정하고 깔끔하게 새겨 넣은 ‘반야심경 6폭 병풍’(1979년)이 대표적이다. 같은 해 3도로 찍은 다색목판화 ‘반가사유상’은 양각판화의 높은 경지를 보여준다. 국보 제83호 금동반가사유상을 다색판화로 제작한 이 작품은 대좌 아래로 흘러내린 치마의 섬세한 선각을 통해 사실적인 생동감을 불어넣었다는 평가다.

1981년 제작한 ‘금강역사상’은 석굴암 입구에 고부조로 조성된 금강역사상의 머리 부분만 판화로 제작한 작품이다. 이 작품은 은은한 회색톤으로 화강암의 질감을 표현해 냈으며 본래 조각상이 지닌 입체감을 목판화로도 잘 표현했다.

‘금강역사상’, 22.2×13.5cm, 목판화, 1981년.

홍선웅 작가는 “판화가 이정은 음양각으로 작업해 작품에 깊이가 있고 안정감을 갖는 게 특징”이라며 “밤의 적막감을 통해 시대의 암울함과 희망에 대한 기다림을 탁월하게 표현한 작가로 판화가로서는 물론 출판미술인으로서도 다양한 연구와 조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정의 장녀인 소설가 이혜숙씨는 “윤동주 시인의 시집은 세상을 짜하게 울리는 데, 그 시집의 표지를 판화로 만들고 인상 깊게 장정해준 아버지의 존재는 세상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구나 하는 생각에 가슴이 아렸다”며 “마침내 아버지가 판화가로 인정받는 감격스러운 자리를 가지게 된 것에 깊은 감사를 드리면서 많은 분들이 찾아와 판화가 이정의 작품과 만나길 기원한다”고 말했다. 02)737-0057

김현태 기자 meopit@beopbo.com

[1500호 / 2019년 8월 14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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