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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계종, ‘8대 총림’ 유지운용 가능한가?

기자명 법보
  • 사설
  • 입력 2019.08.12 11:24
  • 호수 1500
  • 댓글 0

“총림이 다스려지지 않고 법륜이 구르지 않는다면 장로가 대중을 위하는 도리가 아니요, 몸과 입과 뜻의 업이 고르지 않고, 행주좌와의 행동거지가 엄숙하지 못하면 수좌가 대중을 통솔하는 도리가 아니다.… 아침에는 상당법회에 참여하고 저녁에는 청익(請益)하며 짧은 시간도 헛되이 버리지 말아야 장로에게 보답하는 도리요, 높고 낮음에 순서를 지키며 행동거지에 찬찬하고 자상하여야 수좌에게 보답하는 도리다.”

선종 사찰의 기품을 물씬 느낄 수 있는 이 글은 백장청규 정신을 되살리고자 노력했던 중국의 종색 선사가 후학들을 위해 남겨 놓은 가르침이다. 장로에서부터 수좌, 유나, 서장, 시자, 탄두에 이르기까지 총림(叢林) 소임자들의 권위와 역할, 그리고 선 수행자들이 지켜야 할 덕목까지도 분명하게 새겨 놓았다. 중국의 선가는 선원청규가 제정·시행되면서부터 선 수행에 매진하는 도량을 총림이라 지칭했다고 한다.

한국불교 최초의 총림은 해인총림이다. 1967년 7월 해인사에서 열린 16회 임시중앙종회를 통해 총림법이 통과됐고 그 해 12월 해인총림이 결성됐다. 초대 방장은 성철 스님이었다. 총림 설립 직후 맞이한 안거에는 무려 150여명이 결제했을 정도로 반응은 대단했다. 재정지원이 넉넉하지 않은 데다 분규갈등까지 휘몰아쳐 수행정진의 열기를 지속하지 못한 아쉬움은 있지만 총림의 위상을 차곡차곡 쌓아갔다는 점에서 1960·70년대의 해인총림 운용은 한국불교사에서 의미가 깊다.

한 가지 짚어봐야 할 건 총림을 세운 원력이 무엇인가라는 점이다. 조계종은 중국의 선가처럼 수좌들이 모여 수행하는 총림을 지양하고 처음부터 선원, 강원, 율원이 한 공간에 들어서는 총림을 지향했다. 한국불교의 통불교적 성향에 따른 것이기도 하지만 인재양성을 위한 승려교육기관으로서의 역할까지도 기대했기 때문이다. 총림 설립 당시 해인총림 방장 성철 스님이 중앙종회에 제출한 ‘해인총림계획안’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계획안에는 “종학의 연구와 수도의 향상을 통한 지혜와 덕성을 갖춘 승려를 양성한다”는 목적이 명시돼 있다. 이후 총림은 4개가 더해져 5대 총림이 섰고, 2012년에 3개가 더해져 현재 8대 총림이 운용 중이다. 

조계종 총림의 위상은 선·교·율 제반 수행을 겸비할 수 있는 종합수행도량으로서의 역량을 발휘할 때 굳건해진다. 바꾸어 말하면 종합수행도량으로서의 기능을 제대로 하지 못하면 총림의 위상은 격하된다는 것이기도 하다. 현실은 어떠한가? 조계종 종법 상으로는 선원, 승가대학, 율원과 함께 염불원까지 두어야 명실상부한 총림이라 할 수 있는데 최근 진행된 총림실사 결과에 따르면 4개 수행기관을 모두 운영하고 있는 총림은 통도사 영축총림 한 곳뿐이었다. 대부분의 총림은 염불원이 없거나 율원 또한 명맥만 유지하고 있었다. 이유는 간단하다. 스님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이 문제가 심각한 건 출가인구가 급속히 줄어드는 상황에서는 ‘총림요건 충족’이라는 난제를 풀어낼 수 없기 때문이다. 중앙승가대도 입학인원이 계속 감소해 존립 자체가 흔들리고 있고, 전국의 승가대학 역시 1990년대 후반부터 통폐합 위기에 직면했다. 총림이라고 해서 이 문제를 풀 수 있는 뾰족한 수가 있는 것도 아니다. 염불원과 율원도 사실상 없는 상황에서 머지않아 승가대학마저 사라진다면 종합수행도량으로서의 총림 기능은 사실상 멈춰지는 것이다. 조계종은 이제 선택의 기로에 섰다. 종법상의 충족 요건을 완화해 이름만 총림인 도량으로 남겨둘 것인지, 뼈를 깎는 고통을 감내하며 일부 총림을 해제하고 명실상부한 총림만 세울 것인지 말이다. 

숙고해야 할 문제가 하나 더 있다. 방장의 총림주지 추천권이다. 총림주지가 방장의 추천으로만 결정되다 보니 누가 방장이 되느냐에 관심이 모아질 수밖에 없고, 방장 추대를 둘러싼 잡음도 심심치 않게 나온다. 방장의 권위가 실추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방장의 주지 추천권을 없앨 수 없다면 주지를 복수 추천으로라도 가닥을 잡아야 한다. 총림의 지도감독권에 앞서 후학들을 제접하는 게 방장의 본분사라고 본다면 저어할 사안이 아니다. 단언컨대 이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는 명실상부한 총림을 세우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총림의 위상이 떨어지면 그 도량에서 나오는 법도 가볍게 보인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1500호 / 2019년 8월 14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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