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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은사·봉선사 훼손말라” 상소 쓴 백곡의 기백

  • 불서
  • 입력 2019.08.12 13:11
  • 호수 1500
  • 댓글 0

‘백곡 처능, 조선불교 철폐에 맞서다’ / 벽산 원행·자현 스님 지음 / 조계종출판사

‘백곡 처능, 조선불교 철폐에 맞서다’

조선 중기를 가르는 왜란과 호란이 발발했을 때 국가와 민족을 위해 목숨을 바쳐 떨쳐 일어난 이들은 왕과 유생들이 아니라 숭유억불 정책으로 핍박받던 스님들이었다. 그럼에도 조선의 기득권 세력은 외부의 침입으로 인한 혼란이 수습되자, 승병을 조직해 구국에 나선 스님들을 오히려 더 핍박하고 불교를 아예 말살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기 시작했다. 

그때 불교를 말살하려는 기득권 세력과 임금을 정면으로 비판한 8150자의 상소문 ‘간폐석교소(諫廢釋敎疏)’를 올려 온 몸으로 불교를 지켜낸 인물이 바로 백곡 처능 스님이다. 그러나 불교계 내부에서조차 지금껏 백곡 처능 스님에 대한 이야기는 물론, 스님이 불교를 구하고자 목숨을 걸고 지어 올렸던 상소문 ‘간폐석교소’에 대한 특별한 조명이 없었다.

‘백곡 처능, 조선불교 철폐에 맞서다’는 바로 그 백곡 처능 스님과 ‘간폐석교소’를 조명한 사실상 첫 책이다. 책은 조계종 총무원장 원행 스님의 발원으로 빛을 보게 됐다. ‘조선 초기 관료들의 성리학적 정치 이념과 함허 선사의 ‘현정론’에 관한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던 원행 스님은 “2013년 한양대에서 박사학위를 마치는 과정에서 백곡 스님의 삶과 불교 말살을 막아낸 ‘간폐석교소’를 보며 깊은 감명을 받았다”며 “이것은 시대를 뛰어넘는 불교의 위대한 혼이자, 대장부만이 갈 수 있는 떳떳한 실천행 이었다”고 강조했다. 책은 원행 스님 원력에 따라 스님의 박사학위 논문 일부를 저본으로 삼고, 그 위에 백곡의 생애와 우리말로 번역한 ‘간폐석교소’ 원문을 덧붙였다. 

백곡 처능은 조선시대의 가혹했던 배불 정책에 공식적으로 그 잘못을 지적하고 바로잡기를 촉구했던 유일한 스님으로 기록되고 있음에도 그 생애에 대한 기록은 제대로 전해지지 않는다. 다만 ‘대각등계집’과 ‘백곡선사탑명’, 그리고 이 탑명을 쓴 최석정의 ‘명곡집’ 등에 남겨진 단편적 기록을 통해 행장을 조금이나마 살펴볼 수 있다. 이 기록들에서 선배 스님들이 칭찬을 아끼지 않을 정도로 백곡 처능의 시적 재능이 뛰어났음을 확인할 수 있으나, 간략한 행적 이상의 자세한 흔적을 찾기는 쉽지 않다. 그래서 ‘간폐석교소’의 내용과 의미는 스님의 삶과 사상을 유추할 수 있는 자료가 되기도 한다.
 

백곡 처능 스님은 1680년 금산사에서 입적했다. 스님의 사리는 금산사, 안심사, 신정사(현 신원사) 등 세 곳에 봉안됐다. 사진은 김제 금산사에 조성된 백곡 처능 스님의 사리탑.
백곡 처능 스님은 1680년 금산사에서 입적했다. 스님의 사리는 금산사, 안심사, 신정사(현 신원사) 등 세 곳에 봉안됐다. 사진은 김제 금산사에 조성된 백곡 처능 스님의 사리탑.

백곡은 여기서 먼저 부처님의 탄생과 열반, 그리고 불교가 중국에 전해지고 널리 알려지게 된 역사에 대해 간단히 서술한 후 본론에서 조선 기득권이 불교를 배척하는 근거를 6개항으로 간결하게 정리했다. 전체적으로 ‘간폐석교소’의 핵심 내용은 크게 두 가지로 첫째는 폐불의 이유로 추정되는 6가지 주장에 대한 반박이고, 둘째는 불교 무용론에 대한 반박이다. 두 가지 반박 모두 6가지 조항으로 구성됐고, 주로 폐불의 이유로 거론되는 것에 대한 반박이 핵심을 이룬다. 또 상소의 궁극적 목적인 자수원과 인수원을 복구하고 봉은사와 봉선사를 훼손하지 말아야 한다는 데 초점을 맞추면서, 폐불훼석(廢佛毁釋)의 부당함을 주장하는 것으로 글을 마무리 지었다. 

사실 ‘간폐석교소’ 이후 결과가 어떠했는지는 정확하게 전해지지 않는다. 다만 서울의 비구니 사찰인 자수원과 인수원은 이미 철폐되었지만, 선교양종의 수사찰인 봉은사와 봉선사는 끝까지 존속됐다. 또 현종이 만년에 봉국사를 창건했고, 백곡이 남한산성도총섭에 임명된 점 등을 미뤄 상소가 어느 정도 주효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원행 스님과 공동 저자로 나선 자현 스님은 “백곡 처능 스님의 상소문은 불교 입장에서 이야기를 전개한 것이 아니라, 유교적 논리로 유교를 비판하고 불교의 당위성을 주장한 내용이기에 더욱 특별하다”고 설명했다. 

“불교를 지키는 것이 죽어도 사는 길”이란 사명감으로 왕을 직접 비판하는 상소문을 지어 불교를 지켰던 백곡 처능 스님의 삶을 엿볼 수 있는 ‘간폐석교소’는 그 내용이 더할 나위 없이 논리정연하고 간결하며 오늘날 불교에 던지는 메시지 또한 적지 않다. 2만2000원.

심정섭 전문위원 sjs88@beopbo.com

 

[1500호 / 2019년 8월 14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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