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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민지 동토에 광복 씨앗 뿌린 봉률 스님 추모

  • 교계
  • 입력 2019.08.12 16:46
  • 호수 1451
  • 댓글 0

직지사, 광복절 맞아 다례재 봉행
1919년 독립선언서 만매 등사 등
3·1만세 주도·독립군 자금 모금도
남로당 누명 고초…건국훈장 받아
스님 행장 담은 책자 출간해 배포

조계종 제8교구본사 김천 직지사(주지 법보 스님)는 광복절을 앞둔 8월11일 독립운동 공로로 건국훈장을 받은 포월당 봉률 스님의 73주기 추모다례재를 봉행했다.
조계종 제8교구본사 김천 직지사(주지 법보 스님)는 광복절을 앞둔 8월11일 독립운동 공로로 건국훈장을 받은 포월당 봉률 스님의 73주기 추모다례재를 봉행했다.

3·1만세운동 100주년이 된 올해 직지사에서 정진하며 독립운동에 투신했던 봉률 스님을 기리는 뜻깊은 자리가 열렸다.

조계종 제8교구본사 김천 직지사(주지 법보 스님)는 광복절을 앞둔 8월11일 독립운동 공로로 건국훈장을 받은 포월당 봉률 스님의 73주기 추모다례재를 봉행했다. 직지사 주지 법보 스님을 비롯해 승가복지회장 웅산, 직지사 중암 회주 도진 스님 등 사부대중 800여명이 참석해 봉률 스님의 유지를 되새겼다.

추모다례는 천수경, 삼귀의, 한글 반야심경 봉독, 직지사 다도반 헌다, 봉률 스님 행장소개, 보리수합창단 조가, 도진 스님의 조사, 헌화, 만세삼창 등 순으로 진행됐다.

법보 스님은 “직지사 주지를 맡고 있는 납승으로서는 봉률 스님이야말로 이 시대가 귀감삼아야 할 선지식이라고 생각한다”며 “스님의 행장에서 직지사 후학들은 시대의 아픔을 외면하지 않는 게 수행자의 본분사임을 배워야 할 것이며, 대한민국 후손들은 그 어떤 외압에도 굴하지 않는 정신을 지닐 때 민족의 번영을 도모할 수 있음을 배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직지사에 따르면 포월당 봉률 스님은 1897년 6월 경남 거창에서 태어났다. 일찍이 해인사에서 보통학교를 졸업하고 해인사지방학림에서 수학한 스님은 만20세 되던 1917년 퇴운 스님을 은사로 비구계를 받고 희랑대에서 지냈다. 22세 때인 1919년 3·1운동이 일어나자 서울 중앙학림 학생이던 김봉신으로부터 독립선언서를 전달받고 강재호, 기상섭, 송복만, 박달준, 최범술 등과 함께 해인사에서 만세운동을 계획, 주도했다. 해인사 등사판과 학교 등사판을 훔쳐 독립선언서 1만매를 등사했고, 4월1일 1만명의 군중이 만든 태극기 물결이 해인사를 휘감았다.

만주로 향한 봉률 스님은 1920년 신흥무관학교 장교과정을 졸업, 임시정부 산하 서로군정서에 소속됐다. 국내로 잠입해 부산 범어사, 양산 통도사, 경주 불국사 등지서 항일투쟁 자금을 모아 서로군정서로 송금하기도 했다. 그러나 1921년 문경 김룡사에서 2차 거사를 모의하던 중 체포돼, 서대문형무소에 수감됐다. 출감해 은사 퇴운 스님이 주석하던 직지사로 돌아왔지만 폐결핵을 앓는 등 몸은 만신창이가 됐다. 훗날 처자식을 둔 대처승이됐지만 1936년 무렵 수다사 주지를 거쳐 직지사 주지로 부임해 천불전을 개보수하고 천불선원 조실인 탄옹 스님을 도와 조선선풍 진작에 진력했다. 만당(卍黨)의 일원이 되어 평생을 비밀리에 군자금을 모금했고, 왜색불교에 저항했다. 그러다 1946년 남로당 비밀요원이라는 누명을 쓴 스님은 고문과 폭행으로 고초를 겪었고, 결국 그해 12월23일 세수 49세 법랍 29세로 입적했다. 훗날 정부는 1996년 8월15일 봉률 스님에게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

다례재 말미에 사부대중은 3·1운동 당시 태극기와 상해임시정부 태극기, 독립선언문을 들고서 대한독립만세를 삼창하며 애국심을 고취했다.
다례재 말미에 사부대중은 3·1운동 당시 태극기와 상해임시정부 태극기, 독립선언문을 들고서 대한독립만세를 삼창하며 애국심을 고취했다.

이날 도진 스님은 조사에서 “모래처럼 많은 스님의 공덕은 이 땅 초목군생에게 이익이 될 것이니, 우리 민족은 세월이 흐를수록 선과를 얻을 것”이라며 “봉률 스님의 자비광명은 바다의 연해도, 대륙의 연안도, 반도의 도서도, 심해의 해저도 두루 환하게 비출 것이니 보리심이 충만한 시방법계에 눈 먼 거북이들도 천안을 얻고, 앞산의 산새들도 겁외가를 부를 것”이라며 봉률 스님의 업적을 기렸다.

봉률 스님을 기리는 재가자들의 추모도 이어졌다. 강병직 직지사 신도회장은 “어떤 폭압에도 굴하지 않았던 스님이 계셨기에 학교마다 한글을 읽고, 집집마다 태극기가 펄럭이고, 공원마다 애국가가 울려 퍼질 수 있었다”이라고 추모했다. 김충섭 김천시장은 “일본의 경제 보복으로 한일관계가 악화된 상황에서 우리 민족은 봉률스님처럼 독립운동을 하셨던 호국선열들의 가르침을 가슴에 새겨야 한다”고 말했다.

다례재 말미에 사부대중은 3·1운동 당시 태극기와 상해임시정부 태극기, 독립선언문을 들고서 대한독립만세를 삼창하며 애국심을 고취했다.

한편 직지사는 봉률 스님 추모다례재에 맞춰 스님의 행장을 담은 ‘식민지 동토에 광복의 꽃씨 뿌린 선지식’이라는 제목의 120쪽 분량 책자를 출간했다. 3·1운동 당시 태극기, 상해임시정부 태극기, 기미독립선언문 축약본 목판을 제작해 8월15일까지 직지사를 찾은 관람객들을 대상으로 판각체험을 실시한다.

최호승 기자 time@beopbo.com

[1501호 / 2019년 8월 21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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