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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의식 영혼

몸이 죽어도 영혼은 살아남는다는 생각은 옳을까

흔히 몸과 영혼 별개라고 생각
영혼, 철저히 몸 따라가는 구조
감각기관 차단되면 영혼도 차단
영혼이 없다는 결정적인 증거

의식과 영혼은 같은 것이 아니다. 종교인들에 의하면, 의식은 영혼의 작용이다. 왜 의식은 몸을 따라 다닐까? 몸이 방안에 있으면 왜 방밖을 볼 수 없을까? 부산에 있으면 왜 서울을 볼 수 없을까? 신라시대에 아메리카 대륙에 사는 아메리카 인디언을 본 사람은 없다.

영혼은 왜 몸을 따라다닐까? 다리가 잘려나가면, 영혼은 다리를 따라가지 않는다. 몸의 어느 부분이 잘려 나가가도, 영혼은 그 부분을 따라가지 않는다. 잘려나가고 남은 부분에 남는다. 유일한 예외가 있다. 머리(뇌)이다. 머리가 잘려나가면 영혼은 머리를 따라간다. 머리가 잘려 나가면 예를 들어 참수를 당하면 죽는데 영혼이 어떻게 머리를 따라가느냐고 반문할지 모르지만, 그 머리에 기계장치로 산소와 영양분을 공급하면 어떻게 될까? 단 몇 분, 몇 시간이라도 살아 있을 것이다. 눈·귀·코·혀로 보고 듣고 맡고 맛볼 것이다. 의식이 살아 있을 것이다. 즉 영혼이 머리를 따라 갈 것이다. 설사 머리가 잘려나간 몸에 기계장치로 피를 공급하여 살려놓아도 영혼은 몸에 남아있지 않을 것이다.

좀 더 세세히 들어가면 눈·귀·코·혀를 잘라내도 영혼은 뇌(머리)에 남을 것이다. 의식은 뇌에 머물 것이다. 영혼은 머리를 따라다니는데, 영혼을 머리에 붙여놓는 건 무엇일까? 강력한 접착제가 있는 것일까? 영적 접착제? 접착제 중에 생체접착제가 있다. 이것은 홍합을 거센 파도 속에서도 바위에 붙어있게 하는 강력한 힘을 발휘한다. 혹시 과학자들이 아직 발견하지 못한 초강력 접착제가 있는 걸까?

혹시 영혼은 수학적 패턴을 따라다니는 것일까? 물질이 특정한 수학적 패턴을 이루면 그곳에 들어가 그곳을 집으로 삼고 사는 걸까?(죽음이란 그 패턴이 망가지는 것이다.) 참지 못하고 들어가 사는 것일까?

위의 단상(斷想)은 다음과 같은 배경을 지니고 있다. 지난 호에서 ‘의식은 수학적 패턴’이라는 의견을 소개한 바가 있다. 저명한 이론물리학자 막스 테그마크(Max Tegmark)의 학설이다. 이 이론에 의하면 일정한 조건만 갖추어지면, 즉 원자·분자·소립자 등 물질이 특정한 형태로 배열이 되면, 그로부터 의식이 창발적으로 생긴다.

종교인들은 몸과 영혼은 별개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몸이 살아있을 때도 영혼은 몸을 떠나 돌아다닐 수 있으며, 몸은 죽어도 영혼은 살아남는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몸과 영혼이 별개라면, ‘영혼이 왜 몸을 따라다니는지’ 의문이 생긴다. 그럴 이유가 전혀 없어 보이기 때문이다.

옛날 사람들은 눈·귀·코·혀를 통해서만 보고 듣고 맡고 맛볼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지금은 다르다. 기계가 이런 기능을 대신할 수 있다. 생각도 대신할 수 있다. 깔끔한, 때로는 아름다운, 때로는 물 흐르는 듯 매끄럽게 흘러가는 사고는 인간만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냐고 할지 모르지만, 기계도 할 수 있다. 인간의 사고가 그리 보이는 이유는, 무의식의 활동이 모두 의식에 나타나지 않고 일부만 의식에 나타기 때문이다. 무의식의 활동은 석상을 만드는 조각가의 돌 부스러기 같은 것이다. 알파고(AlphaGo), 알파제로(AlphaZero) 등 인공지능의 사고도, 굵직굵직한 사고만 화면이나 음성으로 보여주고 들려주면, 깔끔하고 아름답고 매끄럽게 보일 것이다.

감각기관이 모두 차단되면 사람은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 전혀 모를 것이다. 장소를 이동해도 이동하는지 모를 것이다. 우리가 지금 이 자리에 있다고, 예를 들어 서울역에 있다고 아는 것은 눈을 통해 서울역의 모습을 보기 때문이다. 만약 모든 감각이 차단당하면 모를 것이다. 우리가 어디에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감각작용의 영향이다. 생각은 뇌의 작용이지만, 어디에 있다는 생각은 감각기관의 영향이 결정적이다. 모든 감각기관들과 단절된 뇌에 기계시각기관을 연결하고 멀리 있는 뉴욕을 보여주면, 영혼은 자기가 뉴욕에 있다고 생각할 것이다. 이는 뇌가 장소 개념을 만들어낸다는 결정적인 증거이다. 즉 영혼이 없다는 결정적인 증거이다. 영혼이 있다면, 영혼은 바보이다.

강병균 포항공대 수학과 교수 bgkang@postech.ac.kr

 

[1500호 / 2019년 8월 14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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