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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여행의 풍경과 흔적  ② - 진광 스님

기자명 진광 스님

“그 어디라도 좋다 이 세상 밖이기만 하다면”

보들레르, 바흐만의 마음으로 
그 어딘가로 무작정 여행 떠나
 
여행의 화두는 새로운 길·희망
여행은 나 찾아가는 수행 여정

그림=허재경
그림=허재경

무라카미 하루키는 ‘먼 북소리’라는 책의 서문에서 “그렇다. 나는 어느 날 문득 긴 여행을 떠나고 싶어졌던 것이다. 그것은 여행을 떠날 이유로는 이상적인 것이었다고 생각된다.…(중략)…어느 날 아침 눈을 뜨고 귀를 기울여 들어보니 어디선가 멀리서 북소리가 들려왔다. 아득히 먼 곳에서, 아득히 먼 시간 속에서 그 북소리는 울려왔다. 아주 가냘프게. 그리고 그 소리를 듣고 있는 동안, 나는 왠지 긴 여행을 떠나야만 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이것으로 충분하지 않은가 먼 곳에서 북소리가 들려온 것이다”라고 말했다.

누구에게나 그런 ‘먼 북소리’가 들려올 때가 있다. 그러면 풍족신(風足神)의 부름에 응해 신발 끈을 고쳐 맨 채 무작정 길을 떠나보자. 보들레르의 “어디라도 좋다, 이 세상 밖이기만 하다면!”이라는 마음과 잉게하르크 바흐만의 “언제 돌아오는가 묻지는 마라, 언젠가 돌아올 것을!”이라는 마음으로 여행을 떠나보자. 언젠가 나도 어찌할 수가 없는 마음으로 멕시코, 쿠바, 캐나다 여행을 떠났었다. 아니 일종의 도피인지 일탈인지는 잘 모르겠다. 그냥 체 게바라와 헤밍웨이의 흔적을 만나러 나선 길이었다. 아니 아즈텍, 마야문명과 카리브해의 칸쿤과 쿠바의 아바나, 그리고 캐나다 로키산맥의 풍경을 보고 싶었을 뿐이다. 

멕시코의 수도인 멕시코시티까지의 비행 시간은 엄청나게 길었고 공항에 내린 순간, 나는 어떤 은하계의 혹성에 도착한 느낌이었다. 무질서와 혼돈 가운데 어떤 생경함과 조화로움이 한데 어우러져 묘한 긴장과 전율을 느끼게 한다. 

1511년 11월 8일, 스페인의 에르난 코르테스가 아즈텍 제국의 몬테주마 2세를 만나면서 아즈텍의 비극은 시작된다. 황제는 백마에서 내리는 코르테스를 신 혹은 신의 사자라고 생각했지만 그는 잔혹한 정복자일 뿐이었다. 대학살이 시작되었고 천연두의 창궐로 거의 모든 아즈텍인들이 죽었다. 그리고 인디오와 정복자 사이에서 새로운 인종인 ‘메스티소’라는 혼혈 자손이 생긴 것이다.

‘신들의 도시’인 테우티우아칸은 멕시코시티에서 40㎞ 떨어져 있는데 세계문화유산으로 외계인이 지었다는 전설이 있을 정도로 웅장하고 장엄하다. 남북으로 관통하는 사자(死者)의 길 양편에 신전 역할을 한 태양의 피라미드와 달의 피라미드가 자리한다. 이 엄청난 유적 앞에 서면 그저 감탄과 침묵을 할 수 밖에 없다. 그리고 아즈텍 문명의 번영과 몰락 앞에 눈물과 한숨을 짓게 된다.

마침 그 때가 독립기념일인지라 대통령궁이 있는 소칼로 광장으로 향했다. 1810년 9월 16일, 이달고 신부가 교회 종을 쳐서 교구민을 불러 모아 역사적인 독립혁명을 천명한 것을 기념하는 것이다. 이 날을 기념해 대통령이 직접 2층 테라스에 나타나 오후 9시 16분에 수많은 군중을 향해 “비바 멕시코!(Viva Mexico : 멕시코 만세!)”와 “비바 인디펜데시아!(Viva Independecia : 독립만세)”를 외치면 군중도 함께 외치는 장관이 펼쳐진다. 어느 민족에게나 독립과 자유는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한국에 제주도가 있다면 멕시코에는 세계적인 휴양지인 ‘칸쿤’이 있다. 코발트 빛의 카리브해 가운데 가장 아름다운 휴양지로 유명한 곳이다. 시내 숙소에서도 문을 열고 세 걸음만 뛰면 바로 야외풀장이 펼쳐진다.

칸쿤에서 200Km 떨어진 ‘치첸이싸’는 천문학과 건축기술이 어우러진 마야 유적지로 유명하다. 뱀의 신전으로 불리는 쿠쿨칸 피라미드와 헨리 무어의 누워있는 여인상의 모티브가 된 차크몰 상이 있고 신성한 우물로 가뭄이 들면 여자 아이나 보석을 바치며 기우제를 지낸 세노테라 연못이 있다. 

멕시코 칸쿤에서 쿠바 아바나까지는 직선거리로 100여Km 밖에 안 된다. 비행기로 1시간 정도 걸려 쿠바 아바나의 관문인 호세 마르티 공항에 드디어 첫 발을 내디뎠다. 드디어 피델 카스트로와 체 게바라의 혁명 혼이 깃든 쿠바의 수도 아바나에 입성한 것이다. 다음 날 혁명광장으로 가서 산업성 건물 외벽의 체 게바라 철제 구조물을 본 순간의 감동과 희열을 결코 잊을 수가 없다. 아바나 대성당의 부에나비스타 소셜클럽을 능가하는 할아버지 밴드와 100년 넘는 구식 카메라로 찍은 1달러짜리 기념사진도 압권이 아닐 수 없다.

저녁이면 말레꼰 해변에 나가 산책을 하며 아이들의 다이빙 장면을 구경하다가 카리브해로 지는 멋진 일몰과 장엄한 석양빛에 도취되곤 한다. 차라리 지금 이 순간, 이 곳에서 죽어도 좋다는 생각이 들 정도이다. 밤에는 미국의 대문호 인 헤밍웨이가 ‘노인과 바다’를 쓴 호텔과 그가 자주 찾아가 데낄라를 마신 주점을 돌아본다. 그리고는 거리의 밴드공연과 살사댄스 등을 즐기곤 한다. 다만 체 게바라의 유해가 있는 산타클라라를 못 간게 못내 한스러웠다. 

캐나다 벤쿠버에 도착해 로키산맥 익스프레스 열차로 제스퍼라는 아름다운 동네를 구경하고는 벤프로 향했다. 벤프 국립공원에는 빅토리아 산을 배경으로 세계 10대 절경의 하나인 ‘레이크 루이스’ 호수와 호텔이 환상적인 아름다움을 선사하는 곳이다. 빅토리아 산의 설경과 아름다운 숲이 루이스 호수에 비춰 마치 천국이나 정토의 모습을 보여주는 듯 하다. 그 너른 호수에 안기어 지금 죽어도 좋을 만큼 너무나 신비하고 아름답기만 하다. 또 다른 명소인 보우호수랑 콜럼비아 빙하의 장엄한 풍광 속에 내가 로키산맥이 된 그런 느낌이다. 그 곳에 내 청춘과 사랑과 이별을 묻은 채 그렇게 나는 다시 되돌아왔다.

내 여행의 화두는 언제나 새로운 길과 희망, 그리고 깨달음이다. 여행은 나를 찾아가는 과정이고, 자연과 사람을 통해 무언가 배우고 깨닫는 순간의 꽃들이며, 너무나 장엄하고 아름다운 축제의 장(場)이었다. 그러므로 오늘도 난 이 길위에 선채 매 순간, 매일 매일을 여행 중인 나그네이다. 그렇게 나는 불가능한 꿈을 꾸며 그 멀고도 긴 여행길에서 무언가를 찾아 다시금 이곳으로 되돌아 올 것이다. 그 순간까지 다만 가고 또한 갈 따름이다. 천상병의 시 ‘귀천’처럼 “이 세상 소풍 끝나는 날, 하늘로 돌아가 행복 했노라고 말하리라”라고 말할 수 있도록 나의 삶과 수행의 여정을 결코 멈추지 않으리라. 스티브 잡스의 말처럼 “여정(旅程). 그 자체로 보상이다”라고 했으니 배고픈 채로 우직하게(Stay Hungry Stay Foolish) 나의 여행길과 함께 하리라 다짐해 본다.

진광 스님 조계종 교육부장 vivachejk@hanmail.net

 

[1500호 / 2019년 8월 14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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