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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인총림 방장 원각 스님 기해년 하안거 해제법어

기자명 주영미
  • 교계
  • 입력 2019.08.14 22:07
  • 수정 2019.08.16 16:56
  • 호수 1501
  • 댓글 0

머리는 재로 덮이고 얼굴은 흙이 묻었느니라.

원각 스님.
원각 스님.

하늘과 땅이 갑자기 툭 터지고 해와 달 그리고 별들이 일시에 환해지며, 설령 비가 쏟아지는 것처럼 ‘방(捧)’을 휘두르고 천둥번개 소리처럼 벽력같은 ‘할(喝)’을 질러댄다고 해도 끝임 없이 향상(向上)하는 공부인(工夫人)을 당해낼 수는 없는 일입니다. 끊임없는 향상이란 결제와 해제를 구별하지 않는 정진력이요 세간과 출세간을 나누지 않는 수행력 입니다.

여산(廬山) 귀종사(歸宗寺) 회운(懷惲)선사에게 어떤 납자가 물었습니다.
“어떤 것이 해제 이후의 일입니까?”
“회두토면(灰頭土面)이니라. 머리는 재로 덮이고 얼굴은 흙이 묻었느니라.”
이 말을 듣자마자 동안(同安)선사가 말했습니다.
“털거나 닦아내지 않겠습니다.”

결제를 제대로 마친 향상인(向上人)이라고 한다면 세간이라는 불에 들어가도 절대로 제 몸을 태우지 않을 것이며, 해제라고 하는 물에 들어가더라도 빠져서 허우적거리지 않을 것입니다. 또 삼악도의 지옥에 떨어진다고 할지라도 여유 있게 유원지에서 노는 것처럼 자유로울 것입니다. 설사 아귀세계나 축생세계에서 과보를 받고 있다고 해도 그것은 괴로움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해제와 결제가 하나이며 수행과 만행이 둘이 아님을 알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대혜종고(大慧宗杲)선사는 유보학 언수(劉寶學 彦修)거사에게 보낸 편지글에서 “하나를 마치면 온갖 것을 마치게 되고, 하나를 깨달으면 온갖 것을 깨닫게 되며, 하나를 증득하면 온갖 것을 증득하게 됩니다. 대비심을 일으켜 역순(逆順)의 경계 가운데 타니대수(拖泥帶水), 즉 뻘을 안고서 흙탕물과 합해지더라도 몸과 목숨을 아끼지 않으며 구업(口業)을 두려워하지 말고 모든 것을 건져내야 부처님의 은혜를 갚는 일이요 이것이 바야흐로 대장부가 할 일입니다.”라고 하신 것입니다.

해제를 하지 않는다면 늘 푸른 산, 맑은 하늘 아래 살 수 있겠지만 해제를 한다면 더러운 재를 바르고 흙이 묻는 일을 마다할 수 없습니다. 푸른 산, 맑은 하늘 아래 산다는 것은 곧 만 길 되는 봉우리 위에 홀로 서있는 것이며 머리에 재를 바르고 얼굴에 흙이 묻는 것은 중생경계와 함께하는 일이라고 하겠습니다. 하지만 이 역시 둘이 아닙니다. 어느 때는 머리에 재를 바르고 얼굴에 흙이 묻은 채로 만 길 봉우리 위에 서있을 때도 있고, 또 어느 때는 만 길 봉우리에 선 것이 곧 머리에 재를 바르고 얼굴에 흙이 묻는 꼴이 되기도 하는 까닭입니다. 그래서 저자거리에 들어가서 방편을 사용한 것과 높은 봉우리에 고고하게 홀로 서있는 것은 알고 보면 서로 다를 바가 없는 것입니다.

고덕(古德)에게 어떤 납자가 물었습니다.
“어떤 것이 청정법신(淸淨法身)입니까?”
“회두토면(灰頭土面)이니라. 머리는 재로 덮이고 얼굴은 흙이 묻었느니라.”

노흉선족입전래(露胸跣足入廛來)터니
말토도회소만시(抹土塗灰笑滿腮)라

가슴을 풀어헤치고 맨발로 시중에 들어오니
흙먼지 묻은 얼굴이지만 웃음이 가득하네.
                                               
 

[1501호 / 2019년 8월 21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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