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련(柱聯), 한글로 쓰면 안되나
주련(柱聯), 한글로 쓰면 안되나
  • 이창경 교수
  • 승인 2019.08.19 11:07
  • 호수 150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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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은 과거가 아니다. 현재의 사고방식과 생활양식에 작용하게 될 때 전통의 가치는 존재한다. 사유의 체계에 녹아들어 세월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가치가 전통이다. 이것은 강요해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며 향유 계층의 지속적 공감에서 이루어진다. 공감은 다시 계승으로 이어져 새로운 전통을 만들어가게 된다.

스님들의 수행과 포교의 공간이자 생활공간인 사찰은 유무형의 전통을 간직하고 있다. 가람의 배치와 전각의 구성 요소 등 외형적인 것은 물론, 오랜 세월 동안 주석한 스님과 사찰을 거쳐 간 많은 사람들의 사유 양식과 추구했던 가치가 역사가 되고 전통으로 나타난다. 사찰 건물의 기둥에 부착하는 주련도 그중의 하나이다. 주련은 기둥이나 벽에 세로로 써 붙이는 글이다. 사찰의 성격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선시, 게송, 오도송 등 깨달음의 노래, 수행자의 마음가짐, 용맹정진의 서원 등 다양한 내용을 담고 있다. 이렇듯 깊이 있는 좋은 글을 고승, 명필가의 정성으로 쓰고 새겨 기둥에 걸어둠으로써 사찰의 품격을 높이게 된다.

주련은 쓰는 사람, 새기는 사람이 누구냐도 중요하다. 화성 용주사의 주련은 실학자 이덕무(1741~1793)가 썼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경술년 9월에 화성의 용주사가 낙성되니 왕명을 받고 주련 16구를 지어 올리고 몸소 각자하는 것을 감독하여 달았다.” ‘청장관전서’에 나오는 내용이다. 해인사 극락전의 주련은 일타 스님이 썼는데 “지금 이 몸 불신이 되기까지 굳게 계율을 지켜 추호도 범하지 아니하리니, 바라옵건대 모든 부처님께서는 증명하옵소서. 차라리 목숨을 버릴지언정 끝내 물러나지 않겠습니다”라고 추상같은 계율 실천의 의지를 담고 있다.

주련을 다는 이유는 여러 가지 있을 것이다. 건축물의 조형미를 높이는 장식적인 경우도 있을 것이지만, 가장 큰 의미는 글의 내용에 공감하여 깨달음의 미적 경지를 공유하는 데 있다. 또한 경책의 내용을 다짐하고 또 다짐하여 자신을 다스리는 수행의 방편이 될 수 있다. 한편으로 사찰을 찾는 신도나 일반인 입장에서는 5언, 7언으로 응축된 불교의 핵심 교리나 가르침, 가치관에 크게 공감하는 기회를 주기도 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주련은 한문으로 되어 있고 서체도 예서, 해서, 행서 등 다양하여 전문가가 아니고서는 의미 파악이 어렵다는 것이 문제다. 의미 전달도 안 되는 상태에서 공감하기는 더욱 어렵게 된다. 아무리 좋은 내용의 주련이라도 읽지 못하고 뜻을 알지 못한다면 이는 글자가 아니라 하나의 그림으로 존재할 뿐이다. 공감이 없는 주련은 본질에서 멀어진 것이다.

이 점에서 주련을 한글로 쓰는 사찰도 있다. 실상사 천왕문 주련은 ‘가득함도 빛나고, 비움도 빛나라’로 사찰이 추구하는 가치를 한글로 표현하였다. 주련의 문화적 가치와 역사성에 기반을 둔 관련 도서가 간행되고 있음도 고무적인 일이다. ‘한국 사찰의 편액과 주련’ ‘한국 사찰의 주련’  ‘깨달음이 있는 산사’ 등 사찰의 주련을 정리하고 해설하는 도서가 간행되어 체계화와 정리의 차원에서 이해의 폭을 넓히고 있다. 지난해는 ‘사찰 편액과 현판 주련에 관한 고찰’이라는 학위논문도 발표되어 학문적 접근도 시도되고 있다.  

한자교육을 전혀 받지 않은 한글세대, 영상문화에 익숙한 젊은층에게 주련은 어떤 의미로 다가올까. 하나의 장식품으로 비출 수도 있고 불교를 어렵게 인식하는 부작용을 낳을 수도 있다. 주련이 자기 만족을 위한 것이 아니고 일반인과 소통하기 위한 것이었다면 디지털세대에 맞는 표현방법을 찾아야 할 것이다. 많은 사람과 공감하는 가운데 주련의 본질적 전통을 이어가기 위해서는 내용의 선정에서부터 전달 방법에 이르기까지 여러 면에서 진지한 논의가 필요한 시점이다.

이창경 신구대 미디어콘텐츠과 교수 ck56@shingu.ac.kr

 

[1501호 / 2019년 8월 21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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