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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를 더럽히는 사람들

쏟아지는 뉴스 속에서 차마 눈을 뗄 수 없는 나날이 계속되고 있다. 아베 정권의 도발적 수출규제로 시작된 두 나라의 갈등은 이제 무역전쟁을 넘어 ‘역사전쟁’이라는 또 다른 국면으로 접어들었다는 느낌마저 든다. 물론 우리는 이미 이런 다툼에 익숙해져 있다. 식민사관 극복의 과정을 겪으면서, 1980년대 초반 일본 역사교과서 왜곡 파동사건을 겪으면서 우리는 한편으로 상당한 내공을 쌓을 수도 있었다. 그런데 최근 한일 양국의 지식인들이 내뱉고 있는 역사 관련 망언들을 지켜보면, 이 싸움의 양상이나 성격이 다소 변했다는 사실이 발견된다. 이제 한일 양국의 역사전쟁은 단순히 국가 간의 문제가 아니라 역사를 더럽히려는 자들과 역사의 진실을 지켜내려는 사람들의 싸움이 되어버렸다는 사실이다. 결코 쉽게 끝날 것 같지 않은 이 싸움을 접하면서 필자는 참으로 오랜만에 심장의 고동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역사를 더럽히는 일에 가장 앞장서왔던 인물은 일부 정치인들이다. 그들은 자신의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역사 속에서 보고 싶은 것만 보고 이야기하고 싶은 것만 이야기 한다. 제국주의시대를 열었던 국가의 여러 정치인들이 그러했으며 나치독일과 일본의 정치인들 역시 그러했다. 지금 아베 정권을 둘러싸고 있는 상당수 정치인들과 일부 국내 정치인들에게서도 이러한 모습은 그대로 살펴볼 수 있다. 정치는 집단화할 때 비로소 힘을 지니게 된다. 그래서 역사를 더럽히는 정치인들은 자신을 믿고 따르는 집단에게 역사를 하나의 도구로 간주하도록 설득하고 회유하는 일을 자행한다. 안타깝게도 지금 이 시점의 한일 양국에서 이러한 일들이 또다시 펼쳐지고 있다. 

이들 정치인보다 더 무서운 존재들이 있다. 마치 전문 학자인 것처럼 활동하면서 역사를 더럽히는 일에 앞장서고 있는 일부 전문가 집단이다. 이들은 과거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지만 특정 정치인이나 정치집단을 향해 잘 포장된 연구결과를 제공해주는 일을 한다. 자신들의 연구가 마치 역사의 진실이나 되는 것처럼 그럴듯하게 포장해서 세상에 내놓는 일을 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적어도 역사학의 기본을 충실하게 닦은 학자라면 이러한 일들을 결코 수행하지 않는다. 역사학자들은 문명사관이나 황국신민사관처럼 그릇된 역사관이 우리 인류 역사에 얼마나 가혹한 결과를 초래했는지 너무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필자는 근현대사를 전공하지 않았다. 물론 경제사를 전공하지도 않았다. 하지만 이른바 식민지근대화론을 주창하는 사람들의 논설은 일본과 한국의 역사 모두를 더럽히고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그들의 학문은 역사학의 기본을 전혀 갖추고 있지 못하다는 판단 때문이다. 학부와 대학원에서 역사학을 배우는 학생들은 역사학개론을 반드시 공부한다. 이 교과목을 통해 학생들은 사료(史料)의 중요성과 사관의 위험성 등을 철저하게 익히기 마련이다. 자신의 주장을 위해 일방의 사료만 애써 제시하는 행위, 역사학도들은 이러한 행위는 학문이 아니라 역사를 더럽히는 ‘짓’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학문의 시작 단계에서부터 철저하게 배운다.  

사료는 마치 음식의 재료와도 같다는 비유를 종종 한다. 재료 없이 음식을 만들 수 없는 것처럼 사료 없는 역사 서술은 상상조차 할 수 없다. 하지만 사료와 음식의 재료는 근본적 측면에서 차이점이 있다. 음식의 재료는 만드는 이의 기호에 따라 혹은 음식을 먹는 사람의 입맛에 따라 얼마든지 가감이 가능하지만, 역사 서술에 있어 사료는 그러한 취사선택의 대상이 될 수 없다. 만약 자신이 쓰고 싶은 사료만을 가져다 쓰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역사학자가 아니라 분명 역사를 더럽히는 자로 평가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정치인이든 학자든 또는 특정 정치집단을 지지하는 대중이든 우리 모두는 역사 앞에서 보다 겸허한 마음을 지녀야 한다. 역사는 결코 더럽힐 수 있는 대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김상영 중앙승가대 교수 kimsea98@hanmail.net

 

[1501호 / 2019년 8월 21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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