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마가 끝났나 싶더니 숨 막히게 더운 무더위가 연일 계속되고 있다. 센터를 찾으시는 어르신들도 더위를 피해 오랫동안 머무르신다. 익숙한 것이 편안하기도 해서 그런지 긴 공사기간 동안 어디들 계셨는지 모르지만 문을 열고나니 익숙한 어르신들이 모두 다시 오시고 반갑게 인사를 건네신다. 익숙한 것, 편하고 좋은 것 같으나 정작 이것이 습관이 되고 업이 되는 것을 생각하면 잘살아야 할 것이다. 작은 것도 습관이 되면 무거운 업이 된다는 것을 알고 소소한 것부터 실천하는 것이 중요하다.
어제는 오전 내내 회의를 마치고 조금은 늦은 점심을 먹은 후 센터로 복귀하는 중에 낯익은 어르신이 센터 앞을 지나시길래 인사를 드렸다. 아는 척을 하고 인사를 건네주어 고맙다고 하신다. 별것도 아닌데 어르신을 오랜만에 뵈어 잘 지내시고 계시냐고 반갑게 인사를 건네었을 뿐인데 그게 무척이나 고맙다며 답례를 하신다. 작은 것, 별것도 아닌 것에 고마워하시는 마음이 도리어 고맙게 느껴진다.
평소엔 늘 가까이 있어 소중한 것을 잊고 산다. 그러다 어느 순간 곁에 없음을 알고는 그제야 고마움을 느끼는 게 우리의 삶이다. 기대와 욕심을 갖고 늘 부족하다 여기며 채우기만 하는 삶을 살다 보면 항상 부족함만 남게 될 터인데, 우리들은 더 많은 것에 욕심을 부리면서 살아간다. 상대방을 이해하고 배려하기보다는 기대와 오해를 하는 일이 더 많고 아홉을 가지면 열을 채우려고 하는 삶을 살아가고 있지 않은지 돌아봐야 한다.
작은 것에도 고마워하시는 어르신을 보면서 법정 스님의 ‘무소유’가 생각났다.
“소병소뇌(少病少惱) 소욕지족(少欲知足). 조금만 앓고 조금만 괴로워하며 적은 것으로 넉넉할 줄 알라.”
해인사 자운 스님이 법정 스님에게 보낸 글이다. 오늘날 우리들은 물질의 홍수에 떠밀리고 있다면서 물건이 너무 흔하기 때문에 아낄 줄을 모르고 고마워할 줄 모른다고, 옛날 같으면 깁거나 때우거나 고치면 말짱할 물건도 아낌없이 내다버린다면서 물건만 버리는 것이 아니라 아끼고 소중하게 아는 그 정신까지도 함께 버리고 있다고 일침을 가하신 바 있다.
물질이 흔해 작은 것에도 고마워하는 마음은 사라지고 더 못 가져 병이 난다. 우리들 마음속에 솟구치는 욕심을 덜어내는 마음을 갖고 매사에 고마운 마음을 더 갖게 된다면 작은 것에도 감사한 마음이 보태어질 것이다. 우리들이 건넨 인사 한마디에도 관심 가져주어서 고맙다고 인사하시는 어르신들을 보면서 작은 것이라도 늘 고맙고 감사해하는 마음 잃지 않기를 기도해본다.
오늘부터 하루를 마감하는 저녁시간에 오늘 하루 생활하면서 고맙고 감사한 일을 적어보면 어떨까. 모 방송에 나온 어느 기자는 ‘20대에 내 인생의 의미는 무엇일까’를 고민하면서 방황했던 시절을 겪었는데, 그때 30대의 어느 지인으로부터 ‘당신의 질문이 잘못되었다’는 지적을 받았다고 했다. ‘내 인생의 의미가 무엇일까가 아닌 내 인생에 어떤 의미를 부여해야 할까로 질문을 수정하라’는 소리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는 이야기였다.
그래, 살아가면서 자신에 대해 아니 인생의 의미에 대해 잘못된 질문을 갖고 있지는 않은지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오늘 이 시간부터 내 인생에 어떤 의미를 부여하면서 부처님 제자로 살아가고 있는지 고민하며 어제보다 나은 오늘의 내가 되겠다는 희망으로 수행의 끈을 놓지 않기를 기도해본다.
희유 스님 서울노인복지센터 시설장 mudra99@hanmail.net
[1501호 / 2019년 8월 21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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