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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4. 라마크리슈나의 깨달음

기자명 김정빈

“사람들은 자기 종교를 통해 신과 하나가 된다” 

라마크리슈나 “모든 종교는 하나”
불교의 무아와 달리 진아론 펼쳐
“무아 아닌 진아는 신이자 본성”

한국불교 선지식 중엔 무아·진아 
차이 모르는 분 있어 심각한 오류

그림=육순호
그림=육순호

힌두교 명상을 서구 세계에 처음으로 알린 것은 비베카난다(Vivekānanda, 1863~1902)가 자신의 스승인 라마크리슈나(Ramakrishna, 1836~1886)의 가르침을 전하면서부터이다. 라마크리슈나는 13세이던 어느 날 들판에서 검은 구름 속에서 불가사의한 빛을 보았는데, 그 순간 선 채로 사마디에 들어 이 세계 현상 전체가 신의 현현이라는 것을 깨달았다고 한다. 그후 그는 깔리 사원에서 지냈는데, 깔리 여신의 신상 앞에 앉아 울기도 하고 웃기도 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또다시 신을 체험했다.

“이 방과 사원 등 나를 둘러싸고 있는 모든 것이 시야로부터 사라져버렸다. 이 세상에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 대신 거기 끝없이 지즈냐나(지혜)의 바다가 빛나고 있었다. 어느 쪽으로 눈을 돌리든지 내 눈에 보이는 것은 나를 향하여 파도쳐오는 저 즈냐나뿐이었다. 잠시 후, 그 바다의 파도들은 나에게 몰려와서 내 속으로 흡수되어버렸다. 너무나 강렬한 이 충격으로 하여 나는 의식을 잃고 주저앉아버렸다.”

이 경험을 한뒤 그는 보통사람과는 달리 미친 사람과 흡사한 방식으로 행동했다. 지인들은 그를 고향으로 데려가서 결혼을 시켰는데 그때 그는 23살이었고 아내는 불과 6살이었다. 그러나 머지않아 그는 다시 깔리사원으로 돌아왔으며 다시 영적인 경험을 하게 되었다.

“내 몸과 마음이 경험한 영적인 세계의 4분의 1만 경험하더라도 보통사람 같으면 죽었을 것이다. 그러나 다행히도 내 날들의 대부분이 영원한 어머니(깔리 여신)의 성스러운 비전에 대한 법열로 지나가버렸다. 그로부터 6년 동안 졸음조차도 내 눈을 찾아오지 않았다. 아무리 애를 써도 도무지 눈을 감을 수 없었다. 시간에 대한 모든 감각이 나로부터 사라져갔다. 그리고 몸에 대한 생각이 완전히 없어져 버렸다. 영원한 어머니로부터 내 몸 쪽으로 마음이 거꾸로 돌아올 때마다 무시무시한 두려움이 나를 사로잡았다.”

그는 자신의 쿤달리니 각성을 이렇게 보고하고 있다.

“발에서 머리로 진동하는 감각과 함께 무엇인가가 상승했다. 이 감각이 대뇌에 이르기 전에는 아직 의식의 불꽃이 남아 있었다. 그러나 그것이 대뇌에 이르는 순간 나는 죽음을 경험했다. 시각과 청각은 정지해버렸고, 말하는 것조차 전혀 불가능했다. ‘나’와 ‘너’의 구별이 사라져버렸다. 이 신비로운 영력이 여기까지, 또는 여기까지(자신의 가슴과 목을 가리키며) 차올라 올 때의 느낌은 이야기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 신비로운 영력이 이곳을 넘어가자(목을 가리키며) 누군가가 나의 입을 막아버렸다. 마음과 느낌은 더 이상 그곳에 닿을 수 없었다. 일은 거기서 끝나버렸다. (미간의 반대쪽 여섯 번째 차크라를 가리키며) 마음이 이 지점에 이르렀을 때 나는 신의 비전을 경험하면서 사마디에 들어갔다. 여기 신과 나 사이는 오직 엷은 막이 쳐 있을 뿐이었다. 나는 그 엷은 막을 통해서 그 신을 느낄 수 있었다.”

라마크리슈나는 말년에 후두암을 앓다가 죽었다. 이때 한 학자가 그에게 왜 어머니께 병을 낫게 해달라고 기도하지 않는지를 묻자 그가 대답했다. 

“내가 어머니를 생각할 때면 이 육체를 완전히 잊게 된다. 그래서 육체에 관해서 기도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나는 목 어디엔가에 상처가 난, 인간 육체에 쌓인 무한한 영혼이다.”

어느 날, 그는 깔리 사원의 강으로 난 목욕통 돌계단에 서 있었다. 그때 두 개의 조각배가 강에서 물결을 따라 떠내려가고 있었는데, 무슨 이유에선지 한쪽 배에 탄 사공이 다른 쪽 배에 탄 사공의 등을 노로 후려쳤다. 그와 동시에 라마크리슈나는 등에 심한 통증을 느끼고 비명을 질렀다. 그의 비명을 듣고 그의 조카인 흐리다이가 달려가 보니 그의 등에는 심한 매 자국이 나 있었다고 한다.

라마크리슈나는 모든 종교는 하나이며 사람들은 자기가 믿는 종교를 통해 신과 하나가 된다고 설파했다. 그는 시대, 지역, 민족에 따라 신이 다른 가르침을 펴며 그를 위해 여러 가지 모습으로 현현하는 것으로 보았다.

인도 5파 철학의 권위자인 나라얀 샤스트리와 베단타와 니야야 철학의 권위자인 파드말로챤은 라마크리슈나를 신의 화신으로 인정했다. 동시대의 많은 철학자들이 그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많은 경전을 읽고 많은 성자들을 만났다. 그러나 라마크리슈나는 경전에 기록된 진리의 육화임에 틀림없다.”

불교인의 입장에서 라마크리슈나의 깨달음과 그의 가르침을 어떻게 보아야 할까? 분명한 것은 그가 강렬한 영적 체험을 했다는 것이다. 다만 그 체험의 내용은 불교가 설하는 교리에 맞는 부분도 있고, 맞지 않는 부분도 있다는 점에 유념할 필요가 있다.

영적 체험을 하게 되면 인성이 변하게 되는데, 그 변화의 요점은 ‘나’와 ‘너’의 구별이 희미해지거나 없어지는 것이다. 이때의 ‘너’는 자신을 제외한 세계 전체를 의미한다. 라마크리슈나의 경우 그 무분별은 뱃사공이 노로 맞는 것을 보고 고통을 느끼는 차원에까지 이르렀다.

나와 너의 분별 문제에 대해 부처님께서는 무아(無我)를 설하셨다. 그에 비해 힌두교 명상가(철학자)들은 무아가 아닌 진아(眞我, 참나)를 설한다. 그들에 따르면 보통사람이 ‘나’라고 여기는 것은 가아(假我)이며, 그 안(뒤)에 아트만(atman)이라 불리는 진아가 있다. 진아는 곧 신이며, 따라서 나의 본성은 신이다.

하지만 부처님께서는 신을 인정하지 않을 뿐 아니라 진아 또한 부정하신다. 부처님께서 설하신 무아의 빨리어는 안아따(anatta)인데, 안(an)은 뒤에 오는 말을 부정하는 비(非), 불(不), 무(無)를 의미하는 말이고, 아따(atta)는 산스크리트어 아트만의 빨리어 표현이다. 이로써 우리는 불교와 힌두교는 똑같이 자타불이(自他不二)를 설한다는 것, 다만 힌두교는 자타를 부정한 다음 진아라는 이름의 나를 세우지만 불교는 그 나까지도 부정하는 보다 철저한 자타불이를 설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현재 한국불교에는 이 차이를 이해하지 못하는 선지식들이 있는데 그분들은 본의 아니게 힌두교를 포교하고 있는 것이다. 당연하게도 힌두교 또한 불교와 같은 대접을 받아야만 하는 자격을 가진 종교 중 하나이다. 힌두교인이 자신의 종교를 포교하는 것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겠지만 불교계 안에서 실제로는 힌두교를 포교하는 것은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김정빈 소설가 jeongbin22@hanmail.net

 

[1501호 / 2019년 8월 21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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