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31. 나락(奈落)과 지옥(地獄)

기자명 현진 스님

나락, 지옥 뜻하는 범어 ‘나라까’의 소리 옮긴 말

땅속 감옥 의미하는 지옥은
절망적이고 고통 수반되는 곳
땅속에 고통의 공간 있다는 
지옥 개념은 불교에서 시작

불교에서 형상화시켜놓은 세계의 모습은, 허공에 거대한 바람바퀴[風輪]가 휘감아 돌고 있는 것을 기반으로 그 위에 물바퀴[水輪]와 쇠바퀴[金輪]와 땅바퀴[地輪]가 세로로 쌓여져있고, 땅바퀴 위에 가로로 9산(山)8해(海)가 펼쳐져있으며, 그 중앙에 있는 산이 수미산이다. 수미산 위로 욕계와 색계와 무색계의 하늘이 비상비비상천까지 세로로 펼쳐져있으니, 풍륜부터 비상비비상천까지를 하나의 수미세계라 일컫는다.

그렇다고 불교에서 말하는 세계모습이 바로 인도의 유일한 세계관인 것은 아니다. ‘위싀누뿌라나’란 책에 언급된 세계관에 의하면 인간이 사는 지상을 중심으로 그 위의 공간에 부와스(bhuvas)부터 싸뜨야(satya)까지 6겹의 천상세계가 존재하고, 땅 아래론 어딸라(atala)부터 빠딸라(pātāla)까지 7겹의 지하세계가 존재하며, 나중에 첨가된 관념으로 지하세계 아래에 지옥인 나라까(naraka)가 존재한다고 여긴다.

지옥은 산스끄리뜨어로 나라까(naraka)이며, 그 소리옮김이 ‘나락’이다. 도저히 벗어나기 힘든 절망적인 형편을 비유적으로 표현할 때 나락으로 떨어진다고 일컫는데, 땅속의 감옥인 지옥은 절망적이며 큰 고통이 수반되는 곳이라 여겼기 때문에 생긴 말일 것이다. 그런데 인도에서 끔찍한 곳으로서의 지옥, 특히 저 깊은 땅속이 그런 곳일 것이란 개념은 거의 불교에서 시작되었다고 해도 무방할 정도라고 한다.

그것은 아마도 죄를 지은 이들이 벌을 받기 위해 가는 곳으로서 감옥이나 끔찍한 곳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지금의 생을 마치면 그 다음 생에 상대적으로 열악한 아래 계급으로 떨어지는 것으로 여기는 인도의 계급제도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런 그들에겐 따로 지옥이 필요가 없었을 것이기 때문이리라. 인도신화에서 바다가 만들어진 이야기를 통해 ‘땅속’에 대한 인도인들의 생각이 어떤지 엿볼 수 있다.

옛날 아요드야 왕국의 왕 싸가라(sagara)는 후사가 없어 고민하다 늦게나마 왕비로부터 아스만을 얻었으며, 연이어 임신한 후비는 큰 바가지 하나를 낳았는데 그것이 쪼개져 6만명에 이르는 아들로 변했다. 나이가 든 왕자 아스만은 괴팍한 성격 때문에 자신의 아들 앙슈맛을 남긴 채 왕국에서 추방된다.

싸가라왕은 이미 99번의 말 희생제를 무사히 치르고 100번째 희생제를 행하다 중요한 말을 잃어버리게 된다. 한 왕이 100번의 말 희생제를 무사히 마치면 천상으로부터 인드라와 같은 권능이 주어지기 때문에 왕은 조바심에 6만의 왕자를 보내 말을 찾게 하였다. 온 천하를 뒤지던 6만의 왕자들은 최후로 땅을 파내려가기 시작하였다. 그들이 파놓은 땅에 물이 고여 지금의 바다가 되었다는데, 그래서 바다를 싸아가라(sāgara, 싸가라 왕이 만든 것)라 부른다고 한다.

그런데 그 땅속에는 비싀누신의 화신인 까삘라 성자가 있었는데, 그 곁에 있는 말을 본 왕자들은 그가 말을 훔친 것으로 오해하여 공격하였으나 도리어 성자의 신통력으로 일순간에 재로 변하게 된다. 왕손 앙슈맛이 다시 성자를 찾아가 공손히 자초지종을 말씀드리니, 말을 돌려준 성자는 6만 숙부들의 혼을 천국으로 보내려면 천상에 흐르는 강가강의 물로 공양을 해야 한다는 사실도 알려주었다. 그 후에 앙슈맛의 손자 바기라타는 고행을 통해 천상의 강물을 지상으로 끌어내리니, 그것이 지금의 강가강이다.

일부 지역을 제외하곤 1년 내내 무더위가 지속되는 인도에서 땅속은 그나마 열기를 피할 수 있는 곳으로 인식된다. 그들에겐 뜨거운 지옥과 차가운 지옥 가운데 어느 것을 선택하겠냐고 하면, 비록 가닿자마자 동사해버리더라도 차가운 지옥을 택한다고 한다. 당장에 지금 느끼고 있는 고통을 일순간이나마 피할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땅속의 감옥이라는 지옥도 자신이 처한 형편에 따라 그 느낌이 이렇게 달라질 수 있는 것이다.

현진 스님 봉선사 범어연구소장 sanskritsil@hotmail.com

 

[1501 / 2019년 8월 21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 이 기사를 응원해주세요 : 후원 ARS 060-707-1080, 한 통에 5000원

저작권자 © 불교언론 법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광고문의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하단영역

매체정보

  •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 19 르메이에르 종로타운 A동 1501호
  • 대표전화 : 02-725-7010
  • 팩스 : 02-725-7017
  • 법인명 : ㈜법보신문사
  • 제호 : 불교언론 법보신문
  • 등록번호 : 서울 다 07229
  • 등록일 : 2005-11-29
  • 발행일 : 2005-11-29
  • 발행인 : 이재형
  • 편집인 : 남수연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재형
불교언론 법보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ND소프트